아는 형님이 늦은 나이에 서울에서 경남 함양으로 일자리를 얻게 되어 그곳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블로그 이웃을 통해 함양에 있는 상림 숲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빌어 형님도 뵐 겸, 상림도 가볼 겸 날을 잡았다.
형님은 홀로 부임을 해서 서울에서 계시는 형수님과 함께 차를 몰고 새벽 이른 시각에 출발했다. 금요일에는 조금만 늦어져도 고속도로 정체가 심해진다. 먼 거리로 여행을 떠날 때에는 이렇게 서둘러 나서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 쓸데없이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지 않아도 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는 한 부부가 더 동행했다. 가끔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세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다니곤 하였다. 부부만 여행을 해도 좋지만 친한 몇 사람이 어울려 가게 되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 같다. 훨씬 더 많이 웃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지겨울 틈이 없어 좋다.
이번 여행에는 특별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평소 오지랖이 넓은 덕을 보게 된 것이다. 블로그 이웃인 인플루언서 한 분이 함양에 살면서 상림숲을 자주 포스팅을 하고 있었다. 그분의 블로그 이름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다. 그분에게 방문 사실을 알리고 시간이 있는지 문의를 했다. 당황스럽기도 했겠지만 그분은 기쁘게도 차 한잔은 나눌 수 있다는 답을 주었다. 얼굴도 본 적이 없지만 그간 글을 통해 많은 교류를 했었다. 그분은 주로 식물에 대해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시와 함께 포스팅을 하곤 했었는데 감사하게도 내가 쓴 시도 본인의 포스팅에 인용해 주었다. 그런 인연이 있어서 다소 무모한 연락을 하게 된 것이다.
세 시간 반을 달려 함양 상림에 도착했다. 첫인상은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너른 광장에 특이한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함양 산삼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마치 나물로 먹는 고비의 새순이 돋아나는 것 같은 이미지였다. 입구에 있는 박물관과 문화회관을 둘러보고 블로그 이웃을 만나게 되었다. 형님은 근무 중이어서 저녁에 만나기로 해서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블로그 이웃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처음 대면했지만 글을 통해 알게 된 이미지와 쏙 닮은 분으로 거리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막연한 기대감으로 혹시나 하고 연락을 했던 것이 만남으로 이어진 사실이 약간 흥분이 되었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분을 직접 만나는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하게도 근무 중인데도 일부러 시간을 할애하여 일일 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이곳을 잘 아는 분의 안내로 더욱 기대가 커졌다.
함양 상림은 신라말기에 고운 최치원이 지방 수령으로 재직 시 위천의 범람으로 인한 홍수 예방 차원으로 인공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1,000여 년을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에 조성된 인공숲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원래 하림도 있었는데 개발로 인해 거의 사라지고 상림만 남았다. 상림이라는 말에 깊은 의미가 담긴 줄 알았는데 너무 단순한 이름이어서 살짝 의외였다. 숲은 세심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숲 사이에 오솔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숲길은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부드러운 흙이 깔려있다.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푸른 숲길을 맨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바로 지근에는 위천 물가를 따라 물가 50리 벚꽃길이 있다고 했다. 정말로 다양한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곳이었다. 실제로 맨발로 걷는 이들의 여유가 보기 좋았다.
숲에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숲이 울창했다. 활엽수 위주로 새싹이 자라나 지금은 하늘이 잘 보이지만 녹음이 우거지면 숲 터널이 될 것 같았다. 수종은 갈참나무 같은 참나무 종류에 개서어나무, 느티나무가 주류를 이루었다. 유구한 역사를 지녀 좀 더 큰 고목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러질 못한 것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길가에는 꽃무릇이 자란다. 가을이면 한꺼번에 붉은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잘 다듬어진 길은 걷기에 최상이었고 숲이 건네는 분위기도 너무 푸근해서 정겨웠다. 숲길 옆으로 개울물도 힘차게 훌러 자연의 음악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중간중간에 숲과 조화를 이룬 정자도 있었다.
싱그런 초록빛이 물든 숲길을 담소를 나누며 걷는 길은 더없이 좋았다. 긴 역사를 담고 잘 가꿔진 숲을 보고 직접 걷는 즐거움은 참으로 신선했다. 거리도 짧지 않아서 온전한 숲을 누릴 수 있었다. 잘 지키고 보호된 자연은 실로 귀한 우리의 자산이다. 역사를 느끼며 심신을 돌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함양군민들의 자부심이 절로 느껴졌다.
사계절이 뚜렷한 날씨를 지닌 함양의 특별함이 상림의 사계를 더욱 빛나게 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벚꽃이 만개했을 때 찾았다면 눈부신 봄의 상림을 맛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러질 못해 조금은 유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봄의 싱그러움을 마음껏 배부르게 즐길 수 있었다. 자연보다 우리를 고양시키고 진정한 쉼을 주는 것은 없다. 귀한 숲이 보전되어 후대까지 잘 이어진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 소중한 기쁨을 오늘 만나 만끽했다. 거기에 더하여 글벗을 만나게 되어 교류하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더한층 의미가 있는 봄날의 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