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쁨이가 행복하니 좋을 수밖에

펫동반 콘도로 여행을 다녀오며

by 정석진

가족여행을 가려고 하면 기본적인 사안에 고려해야 할 사항 한 가지가 더 있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서다. 사람들만 움직이면 간편할 일이 반려견이 있을 때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소설 돈키호테에서 산초가 읊조린 이야기가 생각난다. '다음 날 그는 사천 에스쿠도를 받았는데 그것은 마치 사천 가지 고민거리를 받은 것과 같았다.' 소유가 늘면 고민거리도 늘어난다. 소유물로 둘러싸인 곳에서는 참다운 자유로움을 느끼기 어렵다. 몸만 가지고 훌쩍 떠나서 만나는 자연을 마주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감각한다.


마찬가지로 강아지와 함께 살면 많은 기쁨들을 맛보며 누리지만 그로 인한 번거로움과 수고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일은 없다.


금번 여행은 펫동반 콘도로 갔다. 그런 숙소가 제한적이어서 선택의 폭이 좁았다. 홍천과 속초 두 군데를 예약했다. 쁨이는 여행을 좋아해서 케이지를 내놓으면 말하지 않아도 그 즉시 그 안에 들어가 앉는다. 그리고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보는 사람마다 시선을 따라다닌다. 어서 가자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애절한 눈빛을 발사한다.

쁨이

산책이 그 녀석에게는 가장 즐거운 일이다. 옷을 갈아입는 것만 봐도 방방 날뛴다. 좋아서 죽는 것이다. 너무 좋아하다 보니 '가자' 혹은 '산책'이라는 단어를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그런 단어가 등장하기만 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산책을 하지 못할 때 실망시키지 않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런 녀석을 데리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여행이니 얼마나 좋을까!


광견병 예방 접종 증명서를 챙겨야 했는데 여행에 정신이 없어 잊어버렸다. 다행히 얼마가지 않아 생각이 나서 다시 왔다 되돌아가는 해프닝을 겪고 출발했다. 미세먼지 가득한 가슴 답답한 날이었지만 여행을 떠나는 우리들의 마음만은 아주 맑고 쾌청한 푸른 하늘이었다.


차를 타고 도착한 홍천 소노벨비발디파크는 기대 이상이었다. 반려견에 맞춰진 숙소의 섬세한 배려가 감동 수준이었기에 사람보다 강아지가 더 우대를 받는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강아지 체취를 커버하는 방향제가 진하게 풍겨 왔다.


저마다 독특한 용모와 귀여움으로 무장한 강아지들을 프런트에서 만났다. 타인들에게 개로 인해 구태여 긴장하고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는 자유로움이 밀려왔다. 투숙객 모두 다 반려견을 사랑하는 동지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 배정을 받으며 목줄도 새로 받고 게임도 안내받았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이벤트로 간단한 과업을 완수하면 코인을 지급받고 그 코인으로 선물을 교환받는 것이었다. 아기자기한 정성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했다.


숙소에 짐을 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너무 어두워서 조명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견공들의 눈 건강을 위한 부드러운 조명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바닥에도 강아지 자리까지 아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방에도 역시나 은은한 간접 조명이었다. 바닥은 단단한 콘 크리트로 되었는데 이 또한 견공들의 관절을 위한 배려였다. 강아지를 위한 웰컴 간식과 장난감 그리고 작은 가방 선물도 마련되어 감명이 일었다. 당연히 견공을 위한 쿠션과 배변 패드가 너른 장소에 여유롭게 놓여있었고 밥과 물그릇도 따로 있었다. 한마디로 개를 위한 개에 의한 완벽한 숙소였다. 쁨이가 1 순위인 딸의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고 입도 다물어지지 않는 눈치다. 딸이 기뻐하니 우리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대강 정리하고 강아지와 함께 노는 시간을 가졌다. 재미있는 게임 종목은 반려견과 멍푸치노를 마시기였다. 커피잔에 강아지를 수놓은 강아지 음료는 우리에게는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으로 최고로 생각되었지만 쁨이에게는 별로였는지 시큰둥해서 우리만 애가 탔다. 도무지 먹으려는 생각이 없었고 거품만 핥더니 그게 끝이었다. 제발 드시라고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평양 감사라도 제가 싫으면 그만인 것을 어쩌랴! 우리 견공은 기호가 우아하지 않은 것을..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의 주인공을 모시고 잔디 놀이터로 갔다.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함께 뛰노는 녀석들도 좋은지 다툼이 없이 잘 어울린다. 견주들과는 스스럼없이 친해진다. 반려견이라는 공통의 화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뛰어다니더니 피곤했는지 주저앉아 버린다. 피곤하니 안고 가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강아지 집사인 딸은 눈치 빠르게 알아서 모신다.

그 외에 강아지 아로마테라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지만 생각보다 비용이 비싸서 하지 못했고 다음 날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콘도 주변을 오르내리며 다른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하게 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특히 트레이너에게 평소 강아지에 대한 궁금한 사항에 대해 조언을 받을 수 있었고 대안도 얻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트레킹 코스에서 만나는 봄이었다. 먼저 산책 길 연도에 우아한 돌단풍이 소담스럽게 피어나 고운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포장된 길을 벗어나 산길에 들어서니 메마르고 단조로운 산에 단비를 내리듯 진분홍 진달래도 한껏 치장을 하고 고운 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말라버린 갈색 풀들로 가득한 산기슭 비탈진 둔덕에도 야생화가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노랑괴불주머니가 노란 꽃송이를 포도송이 마냥 줄지어 달고 우산처럼 피어 빛이 났다. 작은 봄꽃들도 무리 지어 땅을 물들인다. 꽃다지가 깨알같이 작은 꽃을 피웠지만 떼 지어 피어있으니 노란빛이 주변을 채운다.

산길을 돌아 내려가는 길에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따스한 아침 볕에 부드러운 바람 따라 매혹적인 매화향기가 흘러나온다. 만개한 매화가 눈송이처럼 하늘거리며 꽃잎을 떨구고 있다. 동시에 진한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온 세상을 봄기운으로 정화시킨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봄이다. 봄을 즐기다 보니 일행과 떨어져 홀로 뒤처져 길을 잃어버렸다.

돌단풍
진달래 꽃다지
노랑괴불주머니

반려견을 위한 여행을 경험해 보니 많이 신기했고 신선했다. 더불어 봄도 실컷 누렸다는 마음에 부자가 된 느낌이다. 예전에는 나도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을 보며 좀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강아지를 키워 보니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들을 생각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언제나 바른 생각일 수 없음을 깊이 깨닫게 된다.

매화

강아지를 키우는 입장에서 강아지를 우선하는 여행도 때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눈에 들지 않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려견과 함께 사는 이들이 일천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이 미성숙한 모습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반려견 키우는 이들을 백안시하고 드러내놓고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변화에 발맞추어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함께 더불어 살며 성숙하게 배려하고 폭넓게 수용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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