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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산 Dec 16. 2023

스키핑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호연의 왼쪽 엄지손가락은 그가 여섯 살 될 무렵에 잘려나갔다. 겨울철 저수지에서 빙상 낚시를 즐기다 일어난 사고였다. 호연은 낚싯줄 자를 때 쓰는 전동 전지가위를 가지고 놀던 중에 그만 철컥, 하고 손가락을 잘랐다. 정작 호연은 의연했으나 그의 아버지가 좁은 텐트에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 탓에 호연의 엄지손가락은 밀가루를 묻힌 튀김용 빙어에 섞여 지리산자락 어느 저수지에 잠겨 들었다.


  그날 일에 대해 호연은 별다른 기억이 없다. 다만 응급실 한구석에 앉아 붕대에 둘러싸인 자신의 뭉툭한 손가락을 바라보던 장면만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종종 그때를 이상하게 기억했다. 호연이 병실에서 자신의 손을 보며 멍하니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저 홀아비가 죄책감에 애먼 소리를 한다고 넘겨짚을 뿐이었다. 사고로 인한 후유증도 별다르게 없었기에 그의 잘린 손가락은 유년기에 한 번씩 거치곤 하는 성장통 정도로 여겨졌다.


  호연의 의연한 태도와는 관계없이 그의 네 손가락은 늘 또래 아이들의 주의를 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하지도 않는 엄지손가락에 대한 관심이었다. 호연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저수지에서 벌어진 참사를 반복해서 설명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엄지손가락을 유머 소재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는데, 바로 잘린 엄지손가락 이야기였다. 호연의 어휘력이 성장함에 따라 이야기에는 점점 살이 붙었고, 심지어 호연이 3학년이 되었을 무렵엔 그의 엄지손가락이 빙어 먹이가 된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밀가루를 털어낸 빙어들이 자신의 손가락을 쪼아먹는 것을 지켜봤다고 호연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또 그는 환상통 때문에 엄지손가락 쪽이 가끔 저려온다는 말도 보탰다. 이야기의 시작은 매번 조금씩 달랐지만 끝은 한결 같았다. 이 참사에 있어서 유일한 위안은 자신이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것이었다.


  호연은 친구들이 엄지손가락에 흥미를 느끼는 게 즐거웠다. 그는 미술시간이면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스케치북에 찍고는 그것을 휘날렸고, 백 미터 달리기에서 일등을 한 후 관중석을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이는 제스처를 취해 반 아이들을 웃겼다. 반장 선거 날엔 교탁에 서서 손가락을 자른 결연한 독립투사 흉내를 냈는데 그 일로 선생한테 하루 종일 혼나야 했지만 선거에는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때로는 호기심에, 때로는 동정과 위안의 눈빛을 한 채 호연에게 다가갔다. 남들은 버거워하는 새 학기의 교우관계도 호연은 손가락에 의지해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호연이 5학년이 되었을 무렵 그에겐 습관 하나가 생겼다. 수업이 지루해질 때쯤이면 가만히 왼손을 바라봤는데 특히 수학시간에 자주 그랬다. 그는 나눗셈을 응용하는 퍼센트 문제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특정 점수에 가산점을 더하는 문항이 나올 때면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호연의 단짝이었던 반장은 수학책을 넘겨가며 나눗셈과 가산점을 친절히 설명했다. 그러나 뚱한 표정으로 손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호연을 보자 반장은 화가 치미는 듯 얼굴이 붉어졌다.


  “넌 손가락이 부족해서 산수가 약하니?”


  반장은 제가 뱉은 말에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반장은 애써 숨을 고르고 다시 나눗셈 강의를 이어갔다. 호연은 의아했다. 화를 낼 법한 상황인데도 오히려 친구의 말에 스스로 수긍하고 있었다. 어쩌면, 호연은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 손가락 때문일지도 몰라. 그 순간 호연은 엄지손가락은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온몸을 가릴 정도로 기형적으로 자라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언젠간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반장은 수학책을 덮고서 다독이듯 말했다. 호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로도 그런 상황이 오면 자주 고개를 끄덕였다. 덩치가 커질수록 덩달아 더욱 짓궂어지는 아이들의 놀림에도 호연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가며 나눗셈과 가산점을 이해하는 어른이 됐다. 


  호연이 본격적으로 잘린 엄지손가락의 혜택을 받은 건 성인이 된 후였다. 취업시장에서 호연의 엄지손가락은 그 자체로 가산점이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5퍼센트에 달하는 추가점수를 부여했다. 호연이 애용하던 취준생 사이트에선 그런 고용정책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곤 했다. 한쪽은 취업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냉혹한 경쟁장에서 특정 계층에 우대가 주어지는 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그것이야말로 이 비합리적 과열 경쟁의 사회적 모순을 약자의 탓으로 돌리는 캐치프라이즈라고 반박했다. 토론의 양상은 제법 팽팽했지만 주요 공기업의 채용결과가 발표되는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균형은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러다 예비합격자의 당락이 결정될 쯤엔 장애인 우대 전형 합격자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그 무렵 호연에게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괄시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스물여섯 살, 호연은 ‘금턴’이라고 불리는 6개월짜리 전환형 공기업 인턴에 합격했다. 이는 최종직무수행평가에 따라서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호연은 대학에 취업계를 내고 업무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호연은 자신의 직무가 무엇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따금 걸려오는 전화를 담당자에게 돌리고, 요청에 따라 종이를 파쇄하는 것 외엔 특별히 배정된 업무가 없었다. 단순히 계약기간만 채워선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취준생 사이트에선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 채용 인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공공연한 사실로 취급되고 있었다. 다들 올해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호연은 사무실 내 최고관리자인 최 부장을 직무과제로 삼았다. 최 부장이 곧 직무수행의 평가자이자 평가요소이며, 자신의 직무역량을 쏟을 민원인이라고 믿었다. 호연은 최 부장에게 남겨진 문의 메시지를 꼼꼼히 기록하고, 최 부장이 좋아하는 과자를 비품목록에 올려두고, 최 부장의 프린트 카트리지를 최우선적으로 점검했다. 그렇게 온종일 최 부장에게 열과 성을 쏟아내면 퇴근 후에 몰려오는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었다.


  호연이 퇴근길에 한강 서래섬 낚시터를 들르기 시작한 건 인턴근무가 한 달 남짓 남았을 무렵이었다. 최 부장의 취미가 퇴근 후 잠깐 즐기는 짬낚시였던 탓에 호연도 눈치를 보며 그를 따라 출조를 나선 게 발단이었다.

그날 한강 산책로는 나무뿌리가 얼지 않도록 짚단이 깔려 있었다. 호연은 여느 때처럼 돌로 만들어진 좌대 위에 섰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서 낚시를 공부했는데 실전에선 물고기를 한 번도 낚아본 적이 없었다. 늘 한 마리라도 잡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쉐이킹이니 드래깅이니 하는 온갖 낚시 기술을 시도해봤지만 그저 한강 산책을 나온 이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할 뿐이었다.


  호연은 심호흡한 뒤 지렁이 모양의 루어를 캐스팅했다. 베이트릴에서 뻗어나간 합사 낚시줄이 노을에 반짝였다. 쌀쌀한 늦가을의 평일 오후였다.


  “호연 씨, 먹고 합시다.”


  최 부장이 즉석조리기로 끓인 라면을 내오며 말했다. 호연은 얼른 일어나 은박접시를 받았다. 최 부장은 좌대에 걸터앉은 채 낚싯대를 집었다. 그는 기다란 철제 낚시가방에서 채비통을 꺼내고 라면을 한 입 먹었다.


  “미안한데 호연 씨, 내 채비 좀 봐줄래요?”


  호연은 접시를 내려놓고 최 부장의 낚싯대를 받아들었다. 호연은 자세를 고쳐 앉고 바늘 고리에 줄을 밀어 넣었다. 바늘을 왼쪽 손바닥으로 무릎 위에 고정시킨 뒤 오른손으로 매듭을 지었다.


  “은근 불편하네. 그거.”


  최부장이 호연의 손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최 부장은 국물을 들이켜고는 열을 식히려는 듯 입김을 불었다. 낚시터 반대편에는 라면을 끓여먹는 커플들이 편의점 노상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최 부장은 그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팔에 힘을 주어 캐스팅했다.


  “요즘 애들 참 힘들겠네.”


  “네?”


  “취직은 안 되지. 꼰대들은 넘치지. 하기야 통기타 치면서 대학 생활한 인간들이 요즘 젊은 애들 취업 힘든 걸 공감이나 하겠어?”


  호연은 릴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말로 내 동네 선배 중에 한 사람은 말이야. 공고 졸업해서 이리저리 공장을 떠돌다가 화장실에 똥 싸러 갔대. 그 변소 옆에서 신문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그게 대기업 구인공고였더라는 거야. 그길로 원서 넣고 면접보고 합격해서 지금은 부장 달았거든. 곧이듣지 않겠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어.”


  최 부장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한 커플을 가리켰다.


  “사실 저 나이면 다 제 직업 찾아서 경력 쌓고 역량 키울 나이잖아. 근데 일자리가 없으니 평일에 이 모양이지. 호연 씨, 회사에서는 이런 말 못하지만 나 중도좌파거든. 특히 이 시국에는 말야. 일자리 문제도 과감한 복지 개입이 필요하다고 봐. 그런 면에서 나는 호연 씨가 참 맘에 들어.”


  최 부장은 호연을 슬쩍 흘겨봤다.


  “일반전형 아니지?”


  호연은 낚싯대를 비스듬히 눕힌 채 스키핑했다. 루어가 물수제비를 뜨며 수면을 거칠게 치고 나아가자 통통통, 서너 개의 파문이 일었다. 만약 물고기가 있었다면 수명을 다한 날벌레가 물 위로 추락한 줄 알고 덥석 물었을 것이다.


  “네.”


  “그래. 요즘엔 그런 게 다 무기야. 내 손에 들린 건 일단 다 휘두르고 봐야 된다고.”


  최 부장은 릴을 감아 채비를 재정비했다. 루어에 수초가 지저분하게 얽혀 있었다. 호연은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루어낚시에 대해 생각했다. 딱딱한 가짜 미끼를 통해 살아있는 물고기를 꼬아내는 이 기묘한 사냥법에 대해서, 미끼에 약간의 생동감을 부여해 물고기의 구미를 당기게 만드는 이 악질적인 전략에 대해 말이다. 너무 약한 사냥감은 흥미를 돋우지 못하니 조금 약한 사냥감인 척, 그렇게 이상스런 연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호연 쪽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최 부장은 물 위에 안착시킨 찌만 가만히 들여다봤다. 호연은 조금 약한 사냥감이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슬며시 웃어보였다.


  “부장님,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제 별명이 꿀벌입니다.”


  "꿀벌?”


  호연의 맞장구에 최 부장은 귀를 쫑긋 세웠다.


  “꿀 빠느라 바쁘다고요. 휴대폰요금 할인, 톨게이트비 반값에, 공영주차비도 반값입니다.”


  "장애 혜택이 그래?”


  “실은 군대도 면제였습니다.”


  “군대도? 이야, 말로만 듣던 신의 아들이 호연 씨였네.”


  최 부장은 자리에 앉은 채 호연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옛날에 손가락 잘리거나 이런 건 산업역군들의 증표였는데 말이야. 정작 그 양반들은 아무런 혜택도 못 받았을 텐데. 참……. 세상 좋아졌네.”


  “그렇죠. 세상이.”


  호연은 전략을 바꿔 추를 강바닥에 완전히 가라앉혔다. 날이 추워지면서 물고기들이 수초에 붙어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바늘이 바닥에 걸려 채비를 통째로 날려먹기만 할 뿐이었다. 이번엔 최 부장 낚시바늘이 수초에 걸렸다. 최 부장은 낚싯대를 천천히 당기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호연은 자연스레 최 부장의 낚싯대를 넘겨받았다. 호연은 한순간 힘을 주어 낚싯대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팽팽하던 줄이 끊기며 수면 위로 맥없이 내려앉았다. 호연은 릴을 감아 줄을 거둬들인 뒤, 낚시가방에 집어넣었다.


  “호연 씨, 한강 장어가 민물 장어 중엔 최고로 쳐줘. 왠 줄 알아?”


  호연은 말끄러미 최 부장을 바라봤다. 최 부장은 양팔을 쭉 벌렸다. 그는 왼손으로는 동작대교를, 오른손으로는 반포대교를 가리켰다.


  “사람 시체 먹고 크잖아. 한강 장어가.”


  호연은 농담 말라는 뜻으로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진짜야. 노량진 고시생 중엔 한 마리에 50만원 주고 사가는 사람도 있다니까. 이번에 울 딸내미가 수능치거든? 와이프가 한 마리 잡아오라고 얼마나 보채는지 몰라.”


  최 부장은 담뱃불을 꺼뜨린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호연은 양쪽에 있는 대교를 번갈아 바라봤다. 동작대교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호연 씨, 혹시 한 마리 잡으면 모른 척 하면 안 돼. 보답은 꼭 할 테니까.”


  최 부장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호연은 속으로 남은 계약날짜를 헤아렸다. 실질적으론 2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 후엔 평가자가 누구인지도, 평가요소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블라인드 직무수행평가가 있을 예정이었다. 


  다음날 호연은 최 부장이 말한 보답의 주인공이 되고자 홀로 한강 낚시터 좌대에 섰다. 호연은 코를 훌쩍거리며 강바람에 맞섰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썼다. 주말까지 반납했으니 정규직 전환의 열쇠가 덥석 바늘을 물어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스키핑을 했다. 이번엔 무게감 있는 루어를 써서 파문이 더 컸다.


  호연이 수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옆 좌대에 누군가 털썩 주저앉았다. 동남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스포츠용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낚시채비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5미터 남짓한 장대 낚싯대를 길게 늘여놓고 지렁이를 섬세하게 골랐다. 살이 가장 통통하게 오른 지렁이를 집어 바늘에 꿴 후 능숙하게 찌를 던졌다. 그는 곧 가방에서 책을 우수수 떨어뜨리고는 한 권을 집어 읽었다. 호연은 호기심에 그가 읽는 책을 곁눈질로 살폈다.


  ‘유신의 추억.’ 온화한 표정의 박정희 전 대통령 초상이 정중앙에 박혀 있고 그 주변이 연분홍빛으로 채색된 표지였다. 호연은 다른 책들로 시선을 옮겼다. 포탄과 총으로 점철된 기이한 표지의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와 책등이 잔뜩 닳아있는 ‘보수의 몰락’이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책장을 넘겼다. 가끔 낚시에 방해가 될 만큼 큰소리로 한숨을 쉬는 탓에 근처 좌대에 나란히 앉아있던 노인들이 흘겨봤다. 남자는 아랑곳 않고 꾸준히 페이지를 넘겼고 이따금 찌를 거둬들여 지렁이를 갈아 끼웠다. 두어 시간 지났을 무렵 남자의 초릿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내는 슬그머니 낚싯대에 손을 올렸다. 찌가 물 아래로 모습을 감추자마자 그는 낚싯대를 강하게 챘다. 순식간에 장어 한 마리가 육지로 끌어올려졌다. 어림잡아 60cm가 넘는 대물이었다. 주변 좌대에서 함성이 터졌다. 노인들이 한마디씩 거들려는 듯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작 사내는 기쁜 내색 없이 장어 아가리에 박힌 바늘을 무신경하게 떼어낸 후 어망에 툭 던져 넣었다. 그는 좌대에 어망을 단단히 묶은 뒤 통째로 강물에 내던졌다.


  그때 거대한 트럭 한 대가 낚시터 반대편으로 들어섰다. 트럭 정면엔 ‘보안’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차량 옆면에는 ‘보안기록물 현장파쇄 전문업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잠시 후 트럭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보안’이라는 단어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낚시터 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장어를 낚은 사내가 복면을 벗은 뒤 반대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노인이 강둑으로 걸어오자 사내는 어망을 붙잡아 끌어올렸다. 장어가 다시 몸부림쳤다. 노인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너는 완전 투잡이네 투잡. 내 말이 맞지? 주말에 놀면 뭐해. 사장 일 도와서 잔업도 하고, 장어 값도 벌고 좋잖아. 장어 값은 내가 일 끝나는 대로 쳐줄 테니까 아들 장난감이라도 사줘.”


  노인의 말에 사내가 살며시 웃었다. 습관적인 반응처럼 보였고 노인의 말을 모두 알아듣는 눈치는 아니었다. 노인이 어망을 받아들자 물방울이 떨어졌다. 바닥에 있던 ‘유신의 추억’과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의 표지가 젖었다. 사내는 책을 들어 낚시 가방에 넣었다.


  “그 책 재밌지? 한국사회 이해하려면 이만한 게 없어. 사진이 많아서 읽기도 좋고.”


  노인은 대견하다는 듯 사내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내 두 사람은 어망을 물에 넣어둔 채 강둑으로 올라섰다. 호연은 두 사람이 트럭으로 다가가 회색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그들은 편의점 뒤편에 자리한 보트면허 시험장으로 향했다. 한강수상택시와 관광보트가 정박해 있는 곳이었다. 곧 두 사람의 손을 통해 박스를 옮기고 서류를 들어서 파쇄기에 우겨넣는 작업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호연 발치에 놓인 어망에서 장어가 날뛰었다. 장어에서 나온 점액이 기름처럼 수면 위를 둥둥 떠다녔다.


  해가 저물자 낚시꾼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날이 추워지기도 했고 반대편에서 울리는 파쇄기 소리가 점점 시끄러워지는 탓이었다. 야간작업이 한창인 모양이었다. 어망 속 장어는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 이따금 장어의 물장구로 인해 호연의 신발이 물에 젖었다. 호연은 소음이나 신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장장 육십 센티미터에 이르는 장어를 직접 보지 않았던가. 중요한 건 이 낚시터에 장어가 실존한다는 것, 그리고 요령만 있다면 충분히 낚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호연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장어를 바라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스키핑을 통해 날아간 루어가 수면을 강타하며 나아간다. 이윽고 루어가 가라앉으며 잠시간 꿈틀거리고, 이를 가만히 주시하던 장어는 어느 순간 루어를 덥석 문다. 순간 낚싯대를 쳐올려서 장어의 아가리에 바늘을 확실하게 쑤셔 박는다. 확실하게. 호연은 그 말을 되새기며 있는 힘껏 캐스팅했다.


  무언가 툭, 하고 루어를 건드렸다. 호연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는 살며시 릴을 감았다. 초릿대가 바닥을 바라봤다. 묵직한 무게감에 호연은 낚싯대를 꽉 움켜쥐었다. 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챔질을 했다. 그리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낚싯대가 너무 가벼웠다. 호연은 빠르게 낚싯줄을 거둬들였다. 루어의 끝이 무언가에 긁힌 듯 닳아 있었다. 그는 낚싯대를 옆으로 내던지고 휴대폰을 들었다. 추위에 손끝이 곱아서 미세하게 떨렸다. 주먹을 꽉 쥐어 열기로 손을 덥혔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부장님.”


  호연은 기쁨에 목소리가 떨렸다.


  “해낼 거 같습니다.”


  “뭐를?”


  “방금 입질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엄청 억센 입질이요.”


  “낚시 중이라고? 이 날씨에?”


  최 부장은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참 동안 허허허, 하고 웃었다.


  “그렇게 하다가 한 마리 잡는 거지. 한 마리 잡으면 더 재미 붙여서 푹 빠지는 거고.”


  “네, 오늘 한 마리 잡을 거 같습니다. 바로 옆자리 사람은 큰 걸 하나 낚더라고요.”


  “주말에 간 김에 사고 한 번 쳐봐.”


  최 부장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 파쇄기 소리는 사위가 어두워지고서야 그쳤다. 장어도 기력을 다했는지 잠잠했다. 파쇄업체 일행은 마무리 작업에 돌입하는 듯 트럭 뒤편에 한가득 쌓인 파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호연은 그동안 쉼 없이 캐스팅했다. 그가 그토록 낚시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건 방금 느낀 단 한 번의 입질 때문이었다. 어떤 물고기였는지도 모르고, 손으로 잡아보기는커녕 물 위로 끌어올리지도 못한 채 놓쳐버린 물고기였다. 어쩌면 물고기가 아니라 그저 바늘이 돌에 살짝 걸린 것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호연은 그 미세한 감각, 그 기억 하나 때문에 낚시터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주변이 고요해졌다. 간간이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호연의 조과를 살피려고 다가왔으나 호연은 그 후로 입질 한번 느껴보지 못하고 있었다. 호연은 자신의 빈 어망이 민망해져 한강 너머로 눈을 돌렸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 너머로 남산타워가 보였다. 어둑해진 하늘에 시선이 머무르자 잊고 있던 현실이 떠올랐다. 만약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력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4개월 인턴 이력을 자소서에 집어넣고 다시 취업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었다. 호연은 대학교 강의실에 앉아 한쪽 귀로 강의를 흘려들으며 채용공고 사이트를 뒤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고개를 똑바로 치켜들었다. 한강 건너의 도심 야경을 바라봤다. 만약 기회가 온다면 물러서지 않고 저곳 어딘가에 터를 잡을 수 있도록 발악하리라, 호연은 다짐했다. 그러자 가진 건 다 휘두르고 봐야 한다던 최 부장의 말이 떠올랐다.


  호연이 가진 건 여느 취준생보다 자신이 취업활동에 불리한 입장이라는 객관적 지표였고, 이는 오히려 자신을 돋보이게 할 주요한 무기였다. 호연은 그 사실에 안심이 됐다. 존재하지도 않던 엄지손가락이 지금은 그 어느 것보다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도구가 된 기분이었다. 이제 필요한 건 최 부장을 사로잡을 결정타 한 방이었다. 호연은 반드시 기회를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으로 수초가 몰린 곳을 향해 스키핑 했다. 릴에서 낚싯줄이 힘차게 뻗어나갔다. 무언가 바늘에 걸린 느낌이 드는 순간 호연은 있는 힘껏 낚싯대를 쳐올렸다. 그 순간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낚싯대가 반토막이 났고 그 관성에 호연은 좌대 위로 쓰러졌다. 호연은 망연자실한 채 부러진 낚싯대를 바라봤다. 이내 그는 정신을 퍼뜩 차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달력을 살폈다. 붉은색으로 표시해둔 계약종료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승부를 봐야한다는 취준생 사이트의 게시글이 호연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승부. 호연은 입안에서 옹알거렸다. 그는 차분히 주변을 살폈다. 낚시꾼들은 모두 떠나고 호연 홀로 남아 있었다. 호연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옆자리 좌대로 걸음을 옮겼다. 호연의 그림자가 어망 위를 드리우자 낌새를 차린 장어가 다시 발버둥 치며 거센 파문이 일었다. 호연의 얼굴이 검은 물결에 일렁였다. 


  아파트 단지 입구는 때 이른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요란했다. 키 작은 나무에는 전기선이 펼쳐져 꼬마전구가 걸렸고 상가 주차장 한구석엔 선물장식이 된 커다란 빨간 박스가 놓여 있었다. 호연은 축축한 어망을 몸으로부터 멀찍이 떨어뜨린 채 서 있었다. 밤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호연은 잠옷 차림으로 걸어오는 최 부장을 보고 손을 번쩍 들었다. 최 부장은 과장된 몸짓으로 호연 손에 들린 어망을 가리켰다. 그는 웃음이 주체가 되지 않는지 입을 가리며 다가왔다.


  “진짜야?”


  최 부장은 무릎을 굽혀 어망에 눈높이를 맞췄다. 장어는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죽어 있었다. 최 부장이 어망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점액이 들러붙어 실처럼 늘어졌다. 그가 장어 크기에 감탄하는 동안 호연은 아파트 단지를 가만히 둘러봤다.


  “호연 씨, 나 오늘 기분이 정말 좋네.”


  최 부장이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호연은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따님분 장어 먹고 수능 잘 치길 기도하겠습니다.”


  호연은 짐짓 너스레를 떨며 어망을 넘겨주었다.


  “아니, 장어도 장어지만 말이야.” 최 부장이 말했다. “후배한테 좋은 취미 하나 물려주고 가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단 거야.”


  “네?”


  호연은 침을 꼴깍 삼켰다.


  “호연 씨 모르나? 나 다음 달부터 전라남도로 가요. 순환근무.”


  최 부장은 전근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혼 중년남성한테는 너무 가혹한 처사라든지, 영화관을 가려면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 한다든지 하는 하소연이었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런 처사가 합당하냐는 문제 제기에 닿았을 때쯤, 호연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최 부장 역시 누군가의 진급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으며, 오지근무 발령에도 볼멘소리 한 번 못 내고 거처를 옮겨야 하는 조직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호연은 한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고 자조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웃음기가 사라졌다. 호연은 얼른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에 최 부장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최 부장은 호연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다 알아. 호연 씨.”


  최 부장은 호연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사회생활 하다보면 친해진 사람이랑 금방 헤어지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호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대신 선물 하나 줄게.”


  “선물이요?”


  호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쩌면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보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 부장은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바닥을 내보이고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타난 최 부장의 손에 들린 건 철제 낚시가방이었다. 지퍼를 열어 낚싯대부터 기본 채비까지 일일이 그 내역을 설명하는 최 부장의 표정은 주요 업무 인수인계라도 하듯 진지했다. 그는 두 손으로 낚시가방을 호연에게 건넸다. 호연이 가방을 받아들자 최 부장은 임무를 끝마친 노병처럼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다시 호연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호연은 낚시가방을 바닥에 둔 채 아파트 단지 입구에 멍하니 섰다. 호연은 부끄러웠다. 최 부장의 간소한 보답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던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어리숙함이 미치도록 부끄러웠다. 호연은 남에게, 아니 다른 누구보다 자신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호연은 낚시가방을 집어들었다. 한강 짬낚시를 온전히 자신의 취미로 위장시키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호연이 좌대에 다시 섰을 때 파쇄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서래섬 낚시터는 밤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호연은 파쇄업체 일행을 다시 만날까 걱정이 되어 포인트를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장어가 올라온 장소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호연은 가만히 좌대를 둘러보았다. 풀벌레 우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했다. 호연은 철제가방의 지퍼를 열어 낚싯대를 꺼냈다. 누군가는 호연의 낚시가 아무 의미 없어진 행위이며 되지도 않을 고집이라고 할 법했지만 호연의 머릿속엔 이거라도 낚으면, 아니 이거라도 낚지 못하면, 하는 어떤 맹목적인 신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제 성취라는 수식을 붙일 만큼 대단한 결과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장어 한 마리.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낚아 올려 두 손에 꽉 쥐고 싶을 뿐이었다.


  호연은 결연히 낚싯대를 쥐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스키핑을 했다. 루어가 수면을 치며 나아가는 소리가 안개 낀 낚시터에 울려 퍼졌다. 낚싯줄이 릴에서 풀리며 최대 길이까지 뻗어 나갔다. 루어가 끝까지 날아간 후에는 움직임을 주지 않고 가만히 두어 수면 아래에 안착시켰다. 호연은 루어를 바닥에 끌며 드래깅 했다. 안개에 가려 낚싯줄이 보이지 않았다. 호연은 손끝의 감각에만 의존했다. 강바닥의 굴곡을 루어로 훑고 그 진동을 손으로 느끼면서 장어가 있을 법한 포인트를 수색했다. 호연은 팔이 저릴 때까지 캐스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좌대 주변을 서성이는 흐릿한 움직임이 호연의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질 때쯤 호연은 움직임을 멈췄다. 호연은 안개 속을 살피기 위해 시선을 집중했다. 그 동남아시아 사내였다. 그는 사라진 어망을 찾는 듯 수풀을 헤치며 낚시터 이곳저곳을 훑고 있었다. 호연은 개의치 않은 척 초릿대로 시선을 돌렸다. 사내는 한동안 낚시터를 살피다가 이내 포기하고 호연의 옆 좌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내는 망연자실한 채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호연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캐스팅을 이어갔다. 그때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내가 안주 값을 제대로 못 치른 거 같아서 말야.”


  최 부장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취한 듯 한껏 상기돼 있었다.


  “따끈한 뉴스 하나 전해줄게. 대신 지금부터 말하는 건 무조건 비밀이야.”


  호연은 거의 본능적으로 전화기를 귀에 바짝 갖다 댔다. 낚싯대 손잡이를 왼쪽 겨드랑이에 넣어 고정하고 네 손가락으로 대를 받쳤다.


  “이번 직무평가 최종 면접에서 호연 씨랑 맞붙을 사람이 정해졌다네. 타 부서 사람이라 나도 정확히는 몰라. 듣기로는 그쪽이 경력이며 직무평가며 다 우세한데,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고 하더라고.”


  최 부장은 호연의 대답을 닦달하듯 말을 이었다.


  “어차피 가산점은 똑같이 받는 거고, 그러면 호연 씨가 더 가능성 있지 않겠어? 내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나도 잘 아는데, 지금 호연 씨가 딱 그런 시기에 닿은 거야. 둘 중 하나만 붙는데 어쩌겠어. 결과 좋으면 전남에서 같이 출조 가자고.”


  호연이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최 부장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문득 익숙한 감정이 호연의 가슴 한편에 다시금 피어올랐다. 그건 분노나 모욕감처럼 들끓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고개만 끄덕이면 넘어갈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오랜 시간 훈련된 의연함이었다.


  호연은 낚싯대를 부여잡고 습관처럼 스키핑 했다. 루어가 수면에 닿는 순간 초릿대의 끝이 바닥으로 쳐박혔다. 호연은 재빨리 낚싯대를 다잡았다. 낚싯대가 심하게 요동치면서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낚싯대는 순식간에 안개 속으로 끌려갔다. 순간 옆자리에서 달려온 사내가 잽싸게 몸을 내던져 간신히 낚싯대를 부여잡았다. 그는 줄다리기하듯 낚싯대를 호연 쪽으로 끌었다. 호연은 엉겁결에 낚싯대를 받아들었다. 안개 속에서 기다란 장어가 요란하게 발버둥 치며 올라왔다. 사내가 잡았던 장어와 비슷한 크기였다. 장어는 좌대로 떨어진 후 흙바닥에서 몸을 옴죽거렸다. 호연은 장어를 두 손으로 쥐었다. 장어는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로 몸을 꼬아댔다. 호연은 발버둥 치는 장어를 꽉 끌어안았다. 장어는 호연의 품에서 흙범벅이 된 채 점액을 내뿜었다. 호연은 두 팔을 가슴팍에 바짝 붙이고 장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다. 그리고 사내에게 다가가 아기를 건네듯 조심스레 장어를 넘겼다. 사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어를 받아들었다.


  호연은 달아나듯 낚시터를 빠져나왔다. 축축한 장어의 점액이 호연의 손바닥에서 흘러내렸다. 문득 잊은 지 오래된 엄지손가락의 감각이 무서울 정도로 생생히 느껴졌다. 호연은 왼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삼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피칠갑된 자신의 손을 보며 웃고 있었다는 그 이상한 이야기가 말이다. 호연은 손가락이 섬뜩하게 느껴져서 왼손의 주먹을 꽉 쥐고는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안개 너머 동작대교에서 지하철 구동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쇠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묵직한 차체가 승강장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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