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포세의 장편소설
요즘 새로 나온 책은 무엇이 있나, 서점가의 흐름은 어떻게 변하고 있나를 보고 느끼기 위해서 가끔 동네 서점에 들러 천천히 둘러 보면서 눈에 띄고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구매하기도 한다. 이번에 눈에 띈 책은 <아침 그리고 저녁>. 제목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아침'이라는 단어에서는 파란색과 상큼함,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저녁'이라고 하는데 뭔가 모를 묵직함이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게 읽고 싶어졌다. 하루, 아니 몇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더 자세히 보니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란다. 더 망설일 것도 없이 책을 샀다.
글을 쓸 때 대부분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주제를 먼저 생각하고 쓰는데, 나는 제목을 먼저 생각한다. 괜찮은 제목이나 멋진 제목이 떠오르면 거기에 따라 내용이 자연스럽게 써진다. 한참 쓰다가 제목이 바뀌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책을 살 때도 제목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책의 제목이 책 구매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평범한 늙은 어부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순간과 그리고 이제 다가오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내용.
"그리고 그는 일어난다. 그리고 문득 몸이 너무 가볍다. 무게가 거의 없는 듯하다.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이거 이상한걸, 뼈마디와 근육 어디 아프고 뻐근한 데도 없이, 그는 가뿐하게 일어나 앉는다, 이거 완전히 풋내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군, 요한네스는 침대 한쪽에 앉아 생각한다."(p35) 이 부분을 읽을 때도 그가 죽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이 몸 상태가 불편하고 안 좋은 것을 그렇게 표현을 했다고 생각하며 계속 읽었다.
그러면서 친구 페테르를 만나 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 부분에서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면 아프거나 안 좋은 상황이 될 것 같아 마음 졸이면서 읽었다. 죽은 친구를 꿈에서 만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며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읽는 도중에 친구가 죽은 것 같은데 살았나, 주인공이 죽었나 하는 생각을 잠깐잠깐 하면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아침에 죽어 발견될 저녁까지 돌아 다니면서 가고 싶은 곳, 만날 사람 등 만나는 장면이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제 자네도 죽었다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오늘 아침 일찍 숨을 거뒀어, 그가 말한다.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여서 나를 이리로 보낸 거라네, 자네를 데려오라고 말이야, 그가 말한다."(p130)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상을 떠난 아내, 친구 페테르, 딸 싱네가 자신에게 의미가 큰 사람들인데 그들을 만나는 장면도 어떤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지나온 삶을 사랑하고 행복했음을 느끼게 했다.
태어날 때의 기쁨이나 죽었을 때의 슬픔, 아픔 등이 요란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고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사랑하고 죽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죽음을 표현하는 책들이나 공포를 유발하는 호러(horror)물들은 읽으면서 무섭거나 소름이 돋거나 섬뜩한 느낌이 들거나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은 그런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제목에 끌려 보게 된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오랜만에 읽은 삶의 아침과 죽음의 저녁에 관한 책으로, 전개되는 사건 등이 요란스럽게 표현되지 않고 잔잔하면서 조용하고 담담하게 펼쳐지는 작품이다. 마지막 책을 덮으면서 '아, 주인공 요한네스가 홀로 조용히 죽은 거구나. 그래도 아내도 보고 친구도 보고 외롭지 않았겠구나.' 한 사람의 죽음에서 슬픔보다는 따뜻함을 느끼면서 가슴이 뭉쿨해졌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나 무서움보다 삶을 좀 더 깊게 성찰하면서 나의 마지막 모습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은 웰 다잉(well-dying) 또는 웰 엔딩(well-ending)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품위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그러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웰빙(well-being)을 해야 한다고들 한다. 어쨌거나 내 생각은 잠 자는 듯 떠나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좋은 모습이라고 여겨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