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만보걷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할 수 없었지만 퇴직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건강을 위해 만보걷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산에 갈 때도, 혼자일 때도 무조건 만보걷기. 가끔 친구들과 정보교환. 서로 오늘 얼마나 걸었는가를 전화로 확인하기도 하고 조금 걸은 친구에게는 열심히 걸으라고 독려도 하고 만보를 걸은 친구에게는 격려도 하면서 열심히 만보걷기를 했다. 나도 뒤지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만보를 걷고 나면 시원하고 개운한 것이 아니라 손이 붓기도 하고 좀 피곤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6천보 또는 7천보 정도를 걷게 되었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한 친구는 계속 만보를 걷고 있었다. 그 친구는 워낙 건강한 편이라 하루에 보통 만보를 걷고 혹시 만보를 다 못 걸었을 때는 집에서 꼭 만보를 채웠다고 한다. 만보를 채우지 못하면 그날 하루는 잘 지내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건강을 위해 걷더니 어느 날 다리에 퍼런 줄이 생기고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왈, 너무 많이 걸어서 그렇게 되었으니 당분간 걷기를 중단하고 치료를 받은 후에 6천보 정도를 걸으라고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과유불급(過猶不及). 나이에 맞게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자신의 건강만 믿고 행동하다가 큰 화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보라는 숫자보다는 올바른 자세로 걷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무엇이든지 그 목적에 따라 올바른 방법과 자세가 기본인 것이다.
나는 6천보, 7천보 정도를 걸으면서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침 순간 허리가 삐끗. 파스를 붙이고 병원에서 준 진통제를 먹으면서 조심조심 지내고 있다. 옛날 같으면 3일치 약을 먹으면 금방 나았는데 요즘은 오래 간다. 일주일 넘게 낫지를 않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있는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괜찮다가도 아프게 콕 찌르는 통증은 참기가 힘들다. 의사 왈, 나이가 있으시니까 나았다고 해도 평생 조심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했다. 걸을 때의 속도도 느려지고 허리도 약간 구부정하게... 모든 행동들이 한 템포 늦춰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도 이제 노인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니 매사에 자신이 없어졌다. 항상 걸었던 6천보도 힘들어 의자에 잠시 쉬었다 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이번 허리 통증도 평상시 나의 잘못된 자세로 나타난 결과라고 하니, 70평생 살면서 몸에 밴 좋지 않은 자세를 들여다 보며 '미안하다, 주인을 잘못 만나 네가 고생하는구나.' 라며 위로와 함께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근 한 달 동안 허리 아픔과 씨름하면서 나이 들면서는 정말로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건강에 자부(自負)를 느꼈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고 생활했는데, 어느 한 순간의 일로 인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에 속상하면서 나 스스로를 책망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병을 친구삼아 다독이면서, 가끔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서 지내야 하는 노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