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 장인 정신
10/17 금요일
저녁에 갑자기 얼큰한 뼈해장국이 먹고 싶어서 학원 근처에 있는 해장국집에 갔다. 지척에 두고도 처음 가본 곳이었다. 한창 저녁 시간이었는데 홀에 손님이 한 명뿐이었다(나 포함 두 명).
어린 남자아이가 주방에 있었다. 연신 엄마를 불렀다. ‘부부가 하는 집인가 보다.’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뼈해장국을 주문했다. 해장국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장사가 무진장 안 되는 곳이네. 맛이 나쁘지 않은데..’
한창 먹고 있는데 배달기사분이 들어오셔서 문 옆에 놓인 하얀색 박스에서 뭔가를 꺼내시고는 사장님께 ’ 두유 하나만 가져갈게요~‘ 하시며 방긋 웃으셨다.
사장님께서는 배달기사분들을 위해 마실 것을 구비해 놓으신 거였다. 그런 식당은 처음 봐서 해장국 먹다가 혼자 감격했다.
걱정이 될 정도로 손님이 없는 가게.
그럼에도 배달기사님들을 위해 음료를 준비해 두는 사장님. 앞으로 해장국을 먹으러 자주 그 식당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이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하게,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장인’인 거 같다. ‘일상의 장인’.
옆방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내가 이토록 분개하는 이유는 자기 전에 잠깐이라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지려 했는데 이를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니와 (말 뿐인 사람은 더 싫어함) 이미 이웃이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음을 인지하였음에도 이를 고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마 옆방 사람은 자신의 인생 자체를 그렇게 시끄럽게 사는 사람이겠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채로 평생을 살다가 죽겠지. 이 정도에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이제는 내가 나 스스로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침대 위치를 바꾸고 귀마개를 하고 자는 것. 더 이상은 임대인에게 말하지 않고 화내지도 말고 그냥 원래 내 페이스대로 남은 기간을 보낼 것이다. 타인으로 인해 비롯된 불필요한 감정의 파동이 나를 너무 피곤하게 만든다. 정말이지 몸이 피곤해진다.
내일 부모님이 오신다.
추석 때 봤기 때문에 오랜만에 보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묵언 수행을 안 해도 되는 날이라서 기쁘다. 부모님과 점심으로 뭘 먹을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학원 - 집을 오가며 밥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잘 때가 되면 잠을 자는 일상. 그 안에 인간적인 교류는 전혀 없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요동은 그 어느 때보다 큰 거 같다. 조금 더 침착해지고, 담대해지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그냥 조용하게, 묵묵하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나에게도 웃을 날이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