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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나씨 Aug 02. 2019

#11 딸기씨의 여자 손 잡는 방법

너네 지금 뭐하냐? 아쥬기냥 참으로 가관이어라.


한강 산책이 도보로 가능한 곳으로 이사를 왔으나 실제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시행한 적은 5번 정도뿐이다. 이사 초기만 해도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 결심을 하였지만. 그 다짐은 광속보다 더 빠르게 태양계 건너 저 멀리 날아가버린지 오래.


우야된동 5번 중에 3번은 딸기와 방문. 첫 방문때는 그냥 입구에 있는 전망데크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갔고(거미 물렸던 바로 그 곳, https://brunch.co.kr/@fivesunflower/105)



그리고 두 번째 한강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꽤 멀리까지 걸어나갔던 그날. 눈누난나 오늘도 즐거운 수다타임. 그리고 목표했던 지점에 다다른 유턴하여 다시 돌아오는 길. 둘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딸기야 난 버스타면 가끔 그런거 하는데. 일부러 눈감고 이런 상상을 해. "


"응? 무슨?"


"버스가 이동하는 길을 머릿속에서 계속 그려보는거야. 그러면서 지금은 어디쯤을 지나가고 있겠다. 이런 상상. 그렇게 버스노선을 따라 그리다가 이제 여기쯤 왔겠다 생각하고 눈을 확 떠봐. 그리고 진짜 맞는지 확인하는 거지."


"결과는?"

"거의 맞지는 않아. 항상 다니던 길인데 신기하지? 사실 맞춘 한번도 없어."

"그렇구나."

"근데 그럴때 기분이 뭐랄까 이상해. 갑자기 공간이동그런 느낌이 들어."

"그렇겠네. 상상했던 것과 완전 다른 배경이 펼쳐지면 신기하겠다."


 "역시 오렌지는 참 특이한 아이야. 근데 오렌지야."

"응?"

"그거 지금도 할 수 있어,"

"응?"

"눈 감고 걸으면 되지."

"응? 무슨소리야?"


"내가 잡아줄게. 눈 감고 걸어봐."


"응?"


"여긴 차도 안 다니고 그냥 사람다니는 길인데 뭐 어때."





그러면서 갑자기 딸기는 본인의 팔을 가리킨다. 붙잡고 걸으라는 듯 하다.

오렌지는 잠시 망설이다 딸기의 팔(은 개뿔 그냥 옷자락)을 잡았고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오렌지야, 눈 감았어?"

"응. 진짜 근데 맡겨도 되는거지? 한강으로 인도하는 거 아니지?"

"나한테 죄진게 많나보군. 걱정마."



눈을 감고 걷다보니 중심이 흔들려서 뭔가 팔(은 개뿔 그냥 옷자락)을 잡고 있는 손이 부자연스럽다. 꿈질거리는 것을 딸기가 봤는지 본인이 인도하는데에 어려움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럴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갑자기 본인 팔을 재조립 하기 시작한다.


그냥 1자로 늘어뜨리고 있었던 딸기의 팔은 ㄴ(니은)자로 접혀 선반처럼 변했다.

바로 요렇게


ㅇ   

□ㄴ

11  



뭔소린지 모르겠다고?


바로 요렇게

어제 찍어왔음ㅋㅋ 다시해보라고 시킴




그리고 딸기 오렌지의 팔을 그 선반 위로 걸쳐놓는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손이 맞닿아 촉감이 느껴진다. 꺅!



그리고

딸기오렌지의 손을 감싸쥔다.


뜨헉


드디어 손을 잡네요?




바로 요렇게


이것도 어제 찍어왔다.



아호 이게 뭐지? 이 손을 빼기도 뭐하고 안 빼기도 뭐한 상황. 빼면 왠지 의식하는 것 같아 보이잖아. 친구사이라도 손은 잡을 수도 있는 거니까 빼면 오바하는 것 같아 보이겠지? 연인들 하는 것 마냥 깍지 낀것도 아니니까. 그냥 있어야 하나? 근데 또 그런다고 해서 안 빼는 것도 이상하다. 아니 얘는 뭔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잡는거지? 사귀자는 말을 한것도 아닌데 내가 만만해 보이는 건가? 허허허 미춰버리겠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데 또 아무렇지 않게 대화는 이어가야 한다. 절대 어색해하면 안된다. 마인드컨트롤 하세요 오렌지씨.


일단 좀 많이.. 짧지 않은 시간동안 손을 잡-_-고 걸었다. 그나저나 내가 버스에서 경험한 것, 그 공간이동 어쩌고 하는 것을 걸으면서 할 수 있을거라고? 사실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 몇 번 와보지도 못한 길인데 여기 뭐가 있는줄 알고... 눈을 감고 여기가 어디쯤인 것인지 예측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 아닙니까?

 


"딸기이대로 집까지 가? 나 언제 눈떠?"

"아직 집 멀었어. 눈 뜨지마."



나중에 딸기말을 들어보니 당초 그냥 한강 보행로까지만 그런식으로 걸을 작정이었으나,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손잡고 있는게 좋아서 그랬던 것인지 그냥 오렌지네 집 앞까지 그렇게 가는 것으로 급변경했다는 이야기.



"딸기야 여기 어딘데?"

"응? 아직 한강이야. 눈뜨지마."

"아닌데 막 우회전 좌회전 하고 그랬는데?"

"일부러 오렌지 헷갈리게 그렇게 한거야. 아직 한강 맞아."

"내가 바보냐? 차 빵빵소리 들리는데ㅋㅋㅋ"



사실 한강을 벗어나니까 좀 더 재미있어지기는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직선도로가 아니니까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야 했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기도 해야했고 일부 장애물도 피해야 했으니까. 뭔가 변화가 있어 훨씬 재미있었던 길. 그리고 점점 익숙해져서 어색함도 조금 덜해졌다.



"오렌지야 또 거미 물리고 싶어? 그쪽으로 가지마 "

"응"

"오렌지야 여기 내리막이야. 조심히 내려가야해."

"웅"

"오렌지우리는 지금 우회전을 할거야."

"앙"

"오렌지야 앞에 사람오니까 왼쪽으로 붙을거야."

"옙"

"오렌지야 저 사람들 먼저 보내자. 속도 늦춰."

"넹"

"오렌지야 횡단보도야. 잠시 대기."

"오키동"





그러다 느낌상 집에 가까워져오자 오렌지 마음 속에서는 급 엄한 생각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하.. 얘 집 앞에 도착하면 뽀뽀하는 거아님?'




정신차려 이 오렌지야. 이런생각 그만하라구ㅜㅜ


'그건 너무 이르지 않나? 근데 타이밍 딱 왠지 그럴것 같은데ㅠ 꺅꺅 그려진다. 계속 눈을 감고있는 나.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얼굴을 들이미는 . 뽀뽀하기 위해 집 앞이 아니라 근처 일부러 으슥한 사람이 안 다니는 곳으로 데려가는 거 아닐까? 꺅꺅 ㅠㅠ 이거 백퍼다 백퍼ㅠㅠ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한마디로 혼자 상상속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다는 이야기. 바보 오렌지야 뽀뽀하는게 두려우면 눈을 뜨면 되는거 아니었을까? 강제로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었던 것도 아니고 대체 왜 계속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냐? 너도 은근 기대하고 있었던거 아님?



그리고 목적지 부근이다.

 느낌상 백퍼 지금 집 근처 다왔다. 횡단보도 건너서 경비실 지나서 왼쪽으로 꺾으면 아파트 우리동 앞이 맞거든. 그 정도는 안다.



아 어떡하지? 그냥 눈을 떠버려? 근데 어느 시점에서 떠야하는 걸까? 이제 집 앞이니까 뜰까? 아니면 문앞까지 가는건가? 아파트 현관문? 아니면 집앞 현관문? 응? 집에까지 올라가는건가? 그럼 엘리베이터를 탈건데 거기서도 눈을 안 뜬다는건? 허락한다는? 꺅꺅 난몰라 어떡하지? 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아 몰라몰라몰라 나는 아직 백퍼 확신도 없는데 이렇게 밍기적대다가 얘한테 뽀뽀 당하면 안되는데ㅠㅠ 나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좀.. 남들처럼 선 제안 후 뽀뽀하면 안될까? 딸기야 하지마 이런거 하면 안대ㅠ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에라 모르겠다. 그냥 눈 뜨자.


"오렌지야 이제 집에 거의 다왔어. 이제 계단을 올라갈....."

"........나 눈 떴는데? ⊙_⊙"


딸기는 깜짝 놀라 잡고 있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조금 민망해 하는 것 같더니



도망쳤다.


응?

딸기야 뽀뽀는?



왜 그냥감?

응?

나 뭐한거임?



후배밀미리뽕도 여전하다.


사귄다뇨?

아니거든요?

아직 때가 아닌것 같으니

더 기다릴지어다


꾸잉꾸잉








끝난줄 알았지?

급 생각나서 방금 딸기씨한테 카톡 보내봤음



오렌지는 뻘생각을 했던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꾸잉꾸잉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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