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들 : "어때? 나 타이밍 굿? >_ < 잇힝! 화이팅!"
오늘은 일찌감치 오전에 얼굴보고 헤어졌고(어무이한테 데려다줌) 일좀 하라고 발로 차서 출근시켰는데 갑자기 또 어디가자고 하는 딸기씨.
갑자기 왠 강화도인가 싶긴 하지만 뭐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니 따라가기로 합니다.
중간에 잠시 후배밀미리뽕이랑 놀다가 서너시쯤 동네에서 픽업당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또 약속이 생깁미다.
강화도는 사실.....
........많이 가봤다^^
초등학교 4학년때 봄소풍을 스타트로 가족들이랑도 곧잘 갔고, 대학때 동아리엠티도 가고 그외 기타등등 다 합치면 10번은 갔을 듯 합니다만. 갈 때마다 새로운 바로 그 곳.
본래 딸기의 목적은 바닷가 위주로 낙조를 보는거였다는데 그건모르겠다 패쓰하고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절들을 구경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잡고 있다던 딸기의 과거 언급을 고려하여 전등사로 이끌었다.
특히 전등사의 경우 이번이 3번째 방문인가? 근데 어째 갈때마다 새롭다? 어릴때 보던 전등사와는 달리 뭔가 굉장히 정비된 느낌.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가장 생생한 전등사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때 즈음, 이모네 식구들과 방문했던 때이다. 뭔가 숲속에 있다는 느낌에 조금은 어두운 배경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건물 한채. 처마 밑에서 지붕을 머리에 지고 있는 여인네를 설명하던 누군가-아빠였는지 이모부였는지는 모르겠음-가 생각난다.
전등사에 대한 정보 몇자 적고 넘어가자. 이러면서 공부하는거지뭐 ㅎ_ ㅎ
처음 지어진건 고구려 소수림왕때라고 함. 기억나지? 불교를 국교로 정한 소수림왕ㅋ응응 그때인가봄ㅋㅋ글구나서 거의 우리나라의 모든 절들이 그러하듯이 부셔지고 새로 싯고 부셔지고 새로 짓고 그래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나름 대웅전도 보물이고 범종도 보물이고 여튼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공간임.
알고보니 입구가 동문 남문 두군데였고 나는 항상 남문으로 갔던 모양. 왜냐면 그날은 동문으로 입장했고 올라가는 길에 굳건히 서있던 삼랑성(정족산성)을 처음 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
비교적 평탄한 언덕산길을 꽤 올라서 문화재구역(?)으로 들어선다. 은행x2배를 공물로 바치라는 탐관오리의 횡포가 발생하자 부처님의 은덕으로 그때 이후 은행이 1도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도 지나고, 새삥한 건물에 들어가서 그림도 보고 구석에 있던 정수기에서 꿀맛 냉수도 들이키고, 정족산서고(x) 정족산사고(o)도 (문이 닫혀있어서 문틈사이로) 구경하고 했다.
그리고 본게임이었던 전등사 구경 시작.
꽃에 물을 주는 관리인을 피해 대웅전 사진도 찍어주고 이곳저곳 입장료가 아깝지 않게 약사전이니 삼성각이니 구석구석 누비고 돌아다니다 대웅전이 보이는 곳으로 다시 돌아와 부근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해가 질것 같긴 하다. 일요일 해질 무렵의 늦은 시간에는 관람객들이 거의 없다. 출근들하시려면 후딱들 집에 돌아가셔야죠. 네네 우리는 조용히 더 보다가 가겠습니다.
사실 원래 오렌지는 이런짓 참 좋아라한다. 주인공 건물 인증샷 찍듯이 훅 한번 보고 바로 하산하는 그런 관람행태는 그닥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왠만하면 그 부근에 앉아서 단 5분이라도 과거 조상님들이 남겨놓은 유산들을 감상하며 멍때리는 시간을 갖는 편이다.
뭔가 하나가 된 느낌. 그들의 혼을 최대한 오래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상관없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들어와라! 들어와라! 처음 이 건물이 지어질때부터 현재까지 이 곳을 지나쳐간 모든 흔적의 느낌아!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여기 이렇게 나를 위해 어떻게 존재 할 수 있는지 어서 대답해봐라. 오늘은 내가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이 이 공간을 채우겠지? 내일의 누군가는 내일 여기서 추가로 나의 흔적을 느끼겠지? 주변의 나무들이 성장하고 계절이 바뀌어 잎 색깔이 바뀌어도, 그렇게 배경이 바뀌어도, 오고가는 사람들이 바뀌어도 이 건물만은 그대로 남아있겠지? 근데 왜 이렇게 졸리냐? 이 절을 짓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누군가의 피곤함을 대신 느끼고 있는 것이냐? 아이고 졸립고나. 아 맞다 내 옆에 딸기가 있었지?
"딸기야 나 졸려."
"응?"
"개졸려 우에에에에"
어찌할까 하다가.. 뭐 이정도는 해도 되겠지? 충분히 친해졌으니까...나도 모르게 어깨에 살짜콩 기대본다.
딸기가 바로 말을 잇는다.
"좀 잘래?"
그러면서.... 갑자기 딸기의 손이 오렌지의 어깨에 걸쳐진다. 아니 걸쳐지는게 아니라 이건 거의 끌어안는 수준이다. 일전의 그 마장호수에서의 그 소심함이 아니다.
그리고는 자기 어깨에 기댄 오렌지의 머리위로 본인도 머리를 걸쳐놓는다.
오렌지는 말을 잇지 못한다. 뭔가 움직이기엔 본인의 머리 위에 걸쳐져 있는 딸기의 머리가 너무 무거웠-_-던건 아니지만 '이게 미친나?' 하면서 확 빼버리기는 것도 그래서 잠시 있기로 했다.
'아 완전 민망하다. 눈 뜨지 말자. 얘는 뭐 이렇게 폭 안고 난리야. 숨막힌다 꾸에엑. 어떡하지? 계속 이대로 있어야 하나? 하 모르겠다. 일단 졸립다고 했으니 자는 척을 해야겠지? 고개들지 말자.'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졸리긴 개뿔 정신은 말짱해졌음에도 불구 잠든 척을 한다고 일부러 숨소리를 크게 내고 있던 오렌지. 서로의 머리가 겹쳐져 있다보니 딸기의 숨소리도 가까이에서 들린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딸기도 눈을 감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겉보기에는 평온하였으나 오만가지 생각을 마음속으로 하고 있는 오렌지. 딸기도 마찬가지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는 점점 지나보다. 시야가 어두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귓가에 북소리를 동반한 종소리가 들려온다.
"둥둥둥~~~ 대앵~~~~~~~~둥둥둥"
"대앵~~~~~~~~~~~"
"대앵~~~~~~둥둥둥~~~~~"
사실 종소리야 뭐 흔하게 듣는다지만 북소리까지 이렇게 듣는 것은 처음이다. 마침 일요일 늦은시간이라 보는 사람 혹은 듣는 사람도 없는데 스님들은 무슨 공연이라도 하시는 듯 열심히 북을 두드리시고 또 종을 치신다. 생각해보면 관광객들을 위한 공연이 아닌, 부처님께 바치기 위한 공연이었겠지.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지만 왠지 이대로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움직이는 것은 스님이 애써 설정해놓은 완벽한 배경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았다.
여기 우리, 오렌지와 딸기는 서로 기대고 앉아 그렇게 아름다운 배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해질녘 선사에 울려퍼지는 종소리와 북소리가 더 아름다워지도록.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느낄 수 있었다. 부처님에게 더 잘 닿을 수 있도록 우리도 일조하고 있었다.
사실 이 장면에서 당시에 오렌지는 우리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했지만, 딸기는 큰 요동침을 느꼈다고 했다. 앞으로 전진하라는 경쾌한 북소리와 발딛음을 축하하기 위한 종소리. 무언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산하는 길은 경사가 좀 있는 흙길이다. 딸기가 붙잡아준다고 자꾸 손을 내민다. 얼떨결에 손을 붙잡히고 일정시간 동안은 잡힌 채로 그냥 있는다. 자꾸 딸기씨 왜 손을 잡는거죠? 여긴 평지인데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막혔다. 사실 좀 피곤하기도 했고.. 더 큰 목적은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오렌지는 눈을 감고 시트에 기댔다. 잠은 절대 오지 않았지만 그렇게 계속 눈을 감으며 자는척을 했다고 한다. 왠지 분위기상 뭔가 일어날 것 같지 않냐능? 한두번도 아니고 그렇게 손까지 덥썩 잡은 마당에! 다음 단계는 뻔하지 않니? 하지만 딸기는 그렇게 기회를 줬지만 뽀뽀 안함. 흥. 너 두번째다 벌써? 그때 한강갔다 올 때도 내 친히 기회를 줬건만 그렇게 버리더니. 우야된동 뭐 싫음 냅두덩가!
그래서 마음이 상했는지 어쨌는지 저녁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 그닥 먹고 싶지가 않아서 그냥 집에 간다고 했다. 하지만 딸기는 너무나도 간절히 무언가를 먹고 싶...아니..나랑 더 있고 싶었던 것일까...할튼 계속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우겼고 결국 가볍게 맥주한잔을 하고 들어가기로 함.
실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밖에서 술먹은 날임. 네네. 우리 술 별로 아니 거의 안 먹습니다. 먹어도 그냥 놀러가면 맥주 1캔 나눠먹는정도?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딸기는 오렌지를 붙잡고 드디어 얘기...
...를 한게 아니라
쓰러져 있는 취객을 발견하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기염을 토했다.
덕분에 집에 돌아가는 내내 취객 얘기뿐이다.
오렌지
왠지 불평이 늘었다.
오늘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나요?
꾸잉꾸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