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생퇴사'를 한다고 알리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응원, 그리고 걱정.
'진짜 멋있다. 너라면 뭘 해도 잘할 수 있을 거야. 성공해도 나 잊지 마.' 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고 대리, 밖은 겨울이야. 추워. 뭘 할진 제대로 정한 거야?' 하며 걱정해 주는 친구들도 있다.
어떤 동기는 '너 내가 진즉 알아봤다. 너 금수저구나?' 한다. 그렇다. 사실 나는 사실 금수저다.(!!)
나에겐 그 흔한 마이너스 통장 하나 없다. 집도 월세라 전세대출 통장도 없다. 분양받을 집도 없으니 주택대출도 없다. 대학교는 장학금 받고 학교 다녀서 학자금 대출도 없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빚 같은 무엇도 없다.
게다가 내겐 지킬 가정이 없다. 눈치 봐야 할 남편도 시댁도 없고, 보살펴야 할 아이도 없으며, 부양해야 할 부모님도 아직 경제생활을 하신다.(사실 은근슬쩍 용돈을 안 드리기 시작했다. 죄송해요ㅠㅠ)
그뿐인가? 통장엔 1년 치 급여 정도는 있다. 그 흔한 해외여행, 자가용, 호캉스, 명품, 소고기, 오마카세에 대한 필요를 그다지 못 느끼는 집순이인 덕이다.
심지어 나이도 고작 서른,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니 이 얼마나 큰 자산인가!
이런 내가 금수저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그래, 나는 금수저다.
하지만 진정 내가 금수저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만큼은 얼마든지 다시 일궈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를테면, 갑자기 회사원으로서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큼은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내겐 있다.
비록 공공기관에서의 경력은 물경력이라 하지만, 나는 어디에서든지 내 쓰임이 있음을 잘 알고 믿고 있다. 이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무엇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조직의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퇴사하는 순간까지도 책임을 다하며 지켜온 스스로에 대한 믿음.
물론 퇴사 이전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확신 또한 있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어느 때보다도 잠재력을 뿜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회사에서 노력한 그 이상을 노력할 수 있음을, 그 이상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음을 믿는다. 내겐 그런 자신감이 있다.
내가 이런 금수저, 젊수저, 자신감수저라, 걱정 없이 퇴사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