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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이 입금되었습니다.

by 고정문


2천만 원이 미처 안 되는 돈이 입금되었다. 퇴직금이다. 이렇게 천만 원이 넘는 돈이 불쑥 통장에 입금되는 일은 처음인지라, 처음엔 기분이 좋았다. ‘와! 많다!’

그러나 내 4년 간의 시간에 대한 마지막 보상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씁쓸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작년 내 연봉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이라 적은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정년퇴직을 했다면 얼마쯤 되었을지 대충 계산해 본다. ‘몇 억 쯤 되려나...’ 이내 나는 이미 퇴사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퇴직금과 함께 날아온 경력증명서를 보며 지난 시간들에 대한 추억을 혼자 열심히 팔아본다.

2019년 인턴시절부터, 팀 이동, 부서 이동, 그러면서 경기도로, 경상도로, 이사도 여러 번 했다. 팀장님도 매년 바뀌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이 회사에서 좋은 짝도 만났었지. 아련한 지난날들이여.. 순수했던 내 청춘의 소중한 추억이여...

인사발령이 나던 날과 달리, 퇴직금을 받은 오늘에서야 진정한 끝이라는 기분이 든다. 마치 헤어진 연인과의 커플통장을 정산하는 기분이랄까. 서로 남은 감정과 추억을 배제해 두고 ‘돈’ 하나로 사이를 정리하는 것. 제일 깔끔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것.

다행히도 회사와 나의 관계에는 근로법이 있어준 덕에, 절차에 따라 깔끔하게 해결할 수가 있다. 웬만해서는 지저분한 꼴을 서로 볼 일 없으니 다행이라 할까. 사람과의 이별도 이렇게 법으로 정해주면 좀 좋을까. 하하.

어쨌거나 퇴직금까지 모두 정산함으로써, 우리는 정말 끝이다. 끝. 아쉬워도 끝. 지겨워도 끝. 어쨌든 끝!

즐거웠고, 고마웠고, 꽤 자주 거지 같았어. 다신 보지 말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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