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욕망을 예쁘게 포장해 주는 것
무엇을 추구하고 사는가? 돈이라고 한다면 좀 폼이 안 나고 천박해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욕망이라고 바꿔 불러 봐도 진부할뿐더러 썩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뭔가 탐욕스러워 보이고 저속하게 느껴진다. 우아해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아주 세련되고 우아해 보이도록 변환해 주고 포장해 주는 것이 있다. 바로 미술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범접불가의 영역이다. 감상하고 즐기는 것까지는 다 함께 할 수가 있지만, 작품을 사는 사람들은 아주 추려지기 때문이다.
소위 가진 자들만의 과시재 경쟁이고 더 가지기 쟁탈전이다. 돈에 대한 욕망을 예술에 대한 고상한 취향으로 치환, 포장해서 우아하게 돋보이고 싶은 것이다. 많이 가진 자들의 과시욕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천박해 보이지 않고 기품 있어 보이며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은 단연코 미술이 최고이다.
이것은 세상을 비판하거나 가진 자들에게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다. 못 가진 자들은 그것이 속물적이거나 도덕성이 높아서 안 그러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럴 돈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있다면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욕망을 가진, 전체 욕망의 일부일 뿐이다. 나에게도 그곳으로의 진입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 가지 복잡하고 모순적인 생각들이 든다. 내가 미술 작품을 만들어내서 그 용도로 쓰여지고 간택받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서글퍼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다듬어짐인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지, 그 서글픔이라는 것이 현실 파악 못하는 몽상가의 나약하고 감상적인 생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안 그런 것이 어디 있나?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 (아주 조금 있기는 하다.) 결국은 대부분 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다른 거짓 이유로 자신을 기망하며 사는 것이지.
그렇게 세속적인 욕망을 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바꾸기 위해 예술로 피신하고, 무엇을 위해 예술을 하는지 집요하게 추궁하다 보면 결국 세속적인 욕망과 만나게 되고. 돌고 돌아 결국 같은 곳이다.
컬렉팅과 투자
미술에 있어서 컬렉팅이나 투자(두 개념은 엄밀히 따지면 다른 개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동의어로 봐도 된다.)와 상관없는 감상이라면 남들 기준 따라갈 필요 없다. 그저 자기 식대로 풀이하고 받아들여도 아무 상관없다. 그런데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투자하는 컬렉터라면 남들의 의견과 객관적인 평을 무시할 수는 없다.
미술은 원래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작품을 큰 돈을 주고 사고 가치저장수단으로 삼고 나중에 되팔 것을 생각하면, 다시 말해서 미술 향유에 돈이 개입되면 주관적 미감은 거의 중요해지지 않게 된다. 객관적 데이터와 외부의 평가만이 중요해질 뿐이고 내 기준을 거기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미술은 주관적인 것이고 주체적일 수도 있지만, 큰 돈을 지불해 가면서 주체성을 반납해야 하는 필연적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큰 경제적 이익이 따를 수 있고, 겉에서 보기엔 지적으로 고등해 보이고 주체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 꽤 매력이 있는 일일 것이다. 돈이 많이 들고 아무나 접근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컬렉팅의 본질
우선 여기서 말하는 ‘미술작품 컬렉터’라는 개념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미술작품을 구매하는 이유와 기준은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저 작품이 좋아서 몇백만 원의 작품을 사는 사람과 투자 목적으로 수억 원의 작품을 사는 사람의 목적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는 최대한 간단한 기준으로 대략 삼천만 원 이상의 작품을 사는 사람들로 규정하기로 하자. 그 기준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 그 정도를 기준으로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 지점을 넘어서면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취향과 소신만으로 작품을 구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컬렉터의 철칙 중에, “자신의 눈을 믿지 마라. 니가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다 표면과 실질이 다르다. 미술시장은 공식적인 자격 제한은 없지만 실제로는 가장 진입 장벽이 높고 극소수의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만이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는 곳이다. 선택된 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는 미술작품 수집은 세련되고 지적으로 보이고 남들로부터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적합하다.
많이 가진 사람은 그것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인데,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명품 시계와 가방, 그들끼리만 알아보는 명품 옷, 값 비싼 외제차, 사는 지역, 집, 누리고 있는 문화생활 수준 등을 통해 그것들을 드러낸다.
그것들을 막 의식하고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그런 것들에 스며들고 동화가 되어 있어서 과시하려는 특별한 의식이 없어도 과시가 되는 사람도 있다. 티 내지 않으려는 사람도 돈이 많은 것이 죄도 아니고 숨겨야 될 일도 아닌데 그것을 애써 감출 필요까지는 없다. 그런 사람도 그저 자신의 기준과 방식대로 살뿐인데, 어쩔 수 없이 부티는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과시재의 끝판왕은 미술작품이다.
우아하게 포장된 ‘머니게임’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결국 욕망을 추구하는 일이며, 인생의 많은 시간을 그 욕망을 예쁘게 포장하는 데 쓴다. 그 욕망의 세부적인 부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예술을 추구하고, 어떤 이는 쾌락을 추구하고, 어떤 이는 지식을 추구하고, 어떤 이는 물질을 추구하고… 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한 것을 비교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중간 번역 매체인 돈이다. 한 번의 변환과정만 거치면 인간의 욕망은 통합된다.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욕망, 나보다 많이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추월당하기 싫은 승부욕, 이익분배 파티에서 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날 것 그대로가 드러나면 추하기도 하고 자존심 상해서 감추고 싶은 욕망을 숨겨주고 세련되게 포장해 주는 것 중에 미술만 한 것이 있을까? 단연코 없다. 그것이 최고이다. 그것들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예술의 아름다움과 사유의 깊이를 찬양하는 것이다.
물론 돈과 상관없이 예술이 가지는 마법과도 같은 신비한 힘과 매력이 분명히 있다. 그런 순수한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가격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았거나 저렴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또는 돈 내지 않고 감상하는 밤하늘의 별들과 사계절의 자연, 그리고 끝이 없는 우주에서.
결국 자본의 압도적인 힘과 인간들의 욕망 앞에서 그런 순수한 감정들은 대부분 명분이나 포장지로 사용되기 십상이다. 엄청난 감동을 주지만 내게 금전적 보상을 주지 못하는 작품과, 아무런 감동이 없지만 내게 큰 이익을 안겨줄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전자를 택할 사람이 있을까? (간혹 있기는 하다.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
그저 순수하게 작품이 좋아서 샀는데 가격이 반으로 떨어지거나 되팔 수가 없어 그것의 금전적 가치가 사라져서 보기도 싫어지는 경험과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작품이 가격이 올라서 예뻐지는 경험을 컬렉터들은 누구나 한다고 한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컬렉터도 미술상도 처음엔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했을지 몰라도(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결국 돈으로 귀결되게 돼 있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예술에 대한 순수한 동경과 가슴 뜨거운 그 무언가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결국 돈으로 도착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추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사람도 위선의 추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대부분 그런 존재이다. 얼마나 살겠다고 조금이라도 더 가지겠다고 악다구니를 쓰다가 가는 존재들 아닌가?
고가의 미술작품을 사서 모으는 것의 본질은 결국 자랑과 자본경쟁과 수익성이다. 다른 고상한 이유로 아무리 포장을 해도 결국에는 그것이다. 가장 좋은 작품은 결국 가장 비싼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