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무엇인가?
컬렉터 입장에서도 돈에 대한 욕망과 작품성에 대한 탐닉을 구분하기가 힘들어지듯이, 작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욕망의 기반 위에서 살면서, 인정하기 싫으니 부정하고 그 욕망을 최대한 아름답게 포장하며 사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자존심 강한 예술가인 척하고 있지만, 나는 결국 부자들에게 선택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미술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들에 의해 선택되어 성공하는 예술가들은 결국 체스 판의 말일 뿐이다.
그것의 이면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충분히 회의적인 부분을 발설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일의 핵심적인 제조부문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무엇일까?
어떻게 자기 합리화를 해야 할까? 예술적으로다가 한 번 해봐야 할 텐데…
예술이라는 것이 실체 안으로 파고들면 아름답지 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과도한 연기로 가리고 있는 알고 보면 별 거 없는 인간의 욕망만 남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아름답지 못하고 매우 추한 부분과 모순이 많고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술만 먹고 폐인이 되거나 자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 속물적인 존재이고 삶이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소중히 여기고 생이 다 하는 데까지 치열하게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다 갈 때 되면 가는 것이 인간의 삶 아닌가?
나 역시 그 욕망의 일부일 뿐이며 꿈틀거리고 발버둥 치다 가는 일원일 뿐이다.
우리 모두 대부분 다 그런 존재들 아닌가?
예술의 최종 목적과 기준
그는 무엇에 끌리고,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 것일까? 작품의 금전적 가치를 선망하고 좋아하는 것일까? 작품의 유명세와 권위에 압도당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안에 내재돼 있는 예술혼과 미학적 가치를 좋아하는 것일까?
이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사람에게 질문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답변도 아니고, 답변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이 사실 그대로라고 볼 수도 없다. 마치 “당신은 이성을 볼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보나요?” 하고 질문했을 때, “저는 마음과 눈을 봅니다.”라고 하는 대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한 것과도 비슷하다.
그 안에 있는 예술성에 끌리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해도, 과연 진짜 그런 걸까?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에 그 작품이 그렇게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아니었어도, 그렇게 비싼 작품이 아니었어도, 그 작품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있을까?
결국 인간은 돈이라는 권위에 굴복하는 존재이다.
드라마 <돈의 화신>대사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 만약에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액수가 부족한 것일 뿐이다.”
명대사이다. 마찬가지로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권위가 부족할 뿐인 것이다. 권위는 곧 돈이고 돈은 곧 권위이다.
예술은 자본에게 1초 만에 무릎 꿇는다
대한민국 최고의 노장 예술가가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회장을 찬양하고 문학적 감성 가득한 최고의 표현으로 칭송하는 모습에서는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해서 숨고 싶었다. 그래도 한국 최고의 예술가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나에게 최고의 자본과 맞장 뜨겠냐고 하면 당연히 나는 그럴 용기가 없음을 자백한다. 나는 더 빨리, 양말도 안 신고 뛰쳐나가서 슬라이딩으로 0.5초 만에 꿇을 것이다. 다른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도 그럴 수밖에 없고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최고의 예술가라면 그럴 수 없다. 내가 그의 위치라면 나는 자본 앞에 그렇게 대놓고 엎드리지는 못하겠다. 그것은 나의 자존심만이 아니라 전체 예술가들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안 보는 데라면 넘어지는 척하면서 어쩔 수 없이 숙일지언정, 최고의 예술가라는 타이틀과 체면이 있는데 사람들에게 보라고 대놓고 그리할 수는 없다.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당당하다. 가식적인 아부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정이자 충심이기에 그런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그가 그런 큰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본의 도움이 필수였을 테고, 큰 은혜를 잊고 배신하는 것은 금수만도 못한 인간일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체면보다 자신을 키워준 이에 대한 은혜와 의리를 더 소중히 여기는 참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
이해를 하려 하면 이해가 된다. 여기에 예술가의 딜레마가 있다. 자본의 성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자존심을 세우려하면 배신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것이지 뭐. 뭘 그렇게 예술이, 예술가가 대단한 것이라고. 예술은, 예술가는 자본에게 종속되고 자본에 의해 선택되고 세워지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