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_ 두번 째
이렇게 생경하고 자유로운 순간을 마주하고도 이걸 나눌 수 있는 이가 내 주변에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놀랄 것도 아닌데 놀라고 만다. 왜 이렇게 고독하게 살아온 거지?
그러니 그동안 웃는 게 힘들었던 거지.
나누며 사는 삶,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 작지만 존재한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삶. 다시 그려보는 나의 시간들.
이른 새벽, 아무 생각도 않고 그냥 길을 걸었다. 내 발자국이 선명히 남았다가 파도에 쓸려 흔적도 없이 지워지는 걸 바라보면서 무위의 시간을 갖는다. 모래밭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살아가면서 힘이 들 땐 가까운 산에 오른다. 그보다 더 힘이 들 때면 바다를 찾는다. 저토록 강하면서도 부드러울 수 있을까.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관자놀이의 지끈 한 압박이 느껴진다. 그냥 그 자체를 알아차릴 수 있다.
5월에 찾았던 궁평항이 그랬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바다가 그렇다. 그래도 지금 이 모래 위에선 짧은 명상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회복되었고 삶의 용기도 생겼다. 다만 살면서 마주칠 불운이나 시련 속에서 마음 나눌 이가 없다는 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도 남들이 받을 상처 생각하지 않고 콧물 눈물 쏟듯이 내 마음을 쏟아낼 사람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건강하게 슬픔을 나누며 살아왔더라면 어땠을까 곱씹으며 _ 파도에 쓸려 흔적도 없이 지워지는 내 발자국처럼 아팠던 지난 봄날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믿는다. 아픔은 잊혀지진 않겠지만 치유될 수 있으니까.
남편이 새롭게 출근한 월요일, 나는 다시 아이들과 자기 전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양쪽에 아이들 팔베개를 해주며 열시가 되기 전에 기절하듯 잠든다.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