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_ 두 번째
솔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물었다. 엄마, 이혼이 뭐야?
이혼 : 부부가 합의 또는 재판에 의하여 혼인관계를 인위적으로 소멸시키는 일.
이걸 어떻게 딸아이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혼이라는 한자어를 하나씩 풀어가며 담담히 설명해주고 있을 때 솔이가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가져왔다. '아빠는 허수아비'라는 책이다. 재동이는 이혼한 아빠 대신 가족사진에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를 그려 넣는다. 그걸 보고 놀려대는 아이들 속에서 재동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는데.
선생님은 반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 아빠가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친구와 싸우듯 엄마 아빠도 싸울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거랍니다.
아빠가 없는 것은 쓸쓸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창피한 일은 아니에요.’
솔이와 소파에 누워 이 책을 읽는데 마지막 책장에서 솔이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짧은, 아주 짧은 이혼이 있다고.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남편의 부산 이직을 말하는 거였다. 엄마 아빠가 곧 헤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혼할 거라는 생각에 혼자 속앓이를 얼마나 했는지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고 만다. 하 _
그동안 정말 숨이 막히게 힘든 시간이었다. 두 발로 제대로 서 있을 힘조차 없었지만 무엇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독하게 남편과 싸웠다. 밤새 싸우고 퉁퉁 부운 눈으로 아이들을 보며 웃었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고 요가 수업을 했다. 그렇게 오전 일과를 끝내면 가까운 절에 올라가 울부짖으며 제발 물 흐르듯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3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에겐 어떠한 상처도 주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부모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마음으로 자식은 부모를 사랑한다. 그러니 어찌 모르겠는가 부모의 아픔을. 그러니 솔이도 저렇게 깊은 슬픔으로 혼자 끙끙거렸을 테지. 원망보다는 부끄러움이 남는다.
육아서적에서 배운 대로 부모도 건강하게 싸울 수 있다고, 의견이 맞지 않을 땐 서로 다투기도 한다고 침착하게 말했지만 뒤돌아서면 눈물부터 쏟아졌다. 남편과의 대부분 대화에서 서로에게 상처주기 바빴고 비아냥거렸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더럽다고 비난했고 부모자격에 대해 운운했고, 다시 집에 돌아가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영영 자라지 말라며 비꼬았다. 이런 대화를 듣지 않았더라도 부부가 서로를 대하는 냉기가 온 집안에 가득했고 아이들은 그 분위기 속에서 더 크게 떠들거나 더 사이좋게 지냈다. 그렇게 싸워도 제자리인데 말이다. 원망보다는 부끄러움이 남는다.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울고 있는 솔이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엄마가 아빠가 좀 오래 다퉜지? 엄마 아빠도 이럴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싸움이 깊고 길었다고, 그동안 너희들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젠 정말 화해했고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엄마 아빠도 배웠다고. 그리고 너희를 달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다시 우리 가족이 따뜻하게 모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이 조금 달라서 잠시 떨어져 있는 거라고 말했다. 내 말이 솔이 마음에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했다.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하며 솔이 등을 쓰다듬었다. 잦아지는 솔이 울음을 감싸 안으며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어찌 모르겠는가 내 자식의 아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