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날개짓으로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_ 두 번째

by 뚜솔윤베씨

남편의 이직은 생각보다 빨랐다. 같은 회사 동료였던 사람의 추천으로 한 회사에 지원했고 곧 면접을 봤다. 누구보다 남편의 이직을 원했던 사람으로써 응원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남편은 면접을 보러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직에 성공한다면 남편의 직장은 부산이고 우리의 집과 나의 요가원은 서울이다. 부산과 서울이라. 이건 무얼 의미할까.






그 동안 남편과 다투면서도 결국에는 '같이' 살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라 생각했다. 내가 담은 이 미움과 원망, 슬픔을 쏟아내지 않고서는 다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참고 사는 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다만 머리로는 아는데 이상한 근성처럼 나도 모르게 꾹꾹 누르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걸 깨고 싶었다. 이 일이 무슨 이유로 나에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더 나은 삶으로 이끌거라 믿었고, 그러기 위해선 조금 미친년처럼 보이겠지만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붓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남편에 대한 분노든, 내 삶에 대한 비애든, 사랑이든, 뭐든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


그런데 남편이 합격 통보를 받아온 날, 온 몸에 힘이 풀렸다. 그렇게 까랑까랑하게 열정을 다해 남편과 싸우던 지난 날들이 파도에 밀려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산과 서울이라. 결국에는 헤어짐이 답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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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정관수술을 하고 돌아온 날 정오, 햇살 좋은 쇼파에 앉아 남편과 어김없이 다툼을 이어갔다. 남편과의 대화는 침묵 또는 부정으로 결론이 난다. 내가 묻는 말엔 침묵하거나 아니라는 말만하면서도 미안하다고 하는 남편을 보고 있으니 '서서히 미쳐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복되는 고루한 대화에 지쳐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묻기 전에 마치 명상하듯 크게 한 숨을 내쉬고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남편을 바라보았다. 정말 손과장과 무슨 사이냐고. 남편은 수술 때문에 앉기가 불편한 지 바지를 한 번 당겨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했다. 정말 아무사이가 아니라고.



나는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알았다고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남편과의 대화는 끝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부서진 유리 조각을 다 모은다고 해서 깨진 거울을 다시 붙여낼 수 없는 것처럼 이 대화의 끝을 찾는다고 해서 남편과 다시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마지막 말이 그걸 알려줬다. 이미 우리 부부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혼없는 이별. 그렇게 담담하게 정리하고 솔이 하교 시간 맞춰 차를 몰고 가는데, 세상은 너무 평온하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구름조차 나 보란 듯 태평하다. 인생이란 종종 지나치게 잔인하다. 그 때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사람들이 너무 괴로워 죽음을 생각할 때 수면제를 먹는다고 하는데,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으면 바로 죽는 걸까? 아니면 죽는지도 모르고 그냥 잠들어 버리는걸까. 이 끔찍한 생각을 '딸을 데리러 가는 길'에 하게 된다.








딸. 그래 나는 엄마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정신이 번쩍 든다. 평온한 세상이든 태평한 구름이든 잔인한 인생이든 뭐든 다 상관없다. 나는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에 불과하다. 내 몫은 변함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내 인생은 변함이 없다. 죽음을 생각하는 엄마로 살고 싶지 않는다는 게 나의 결론이였다. 모든 걸 다 덮어두겠다 마음먹었다. 남편의 정서적 외도, 부너진 신뢰, 나를 기만하는 그의 마지막 말까지 모두 다 덮어두겠다고. 그리고 다시는 수면제 따위 생각하지 않고 내가 꿈꾸는 삶을 다시 꿋꿋이 살겠다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삶을 절대 살지 않을것이다.



이렇게 남편의 정서적 외도는 내 다짐으로, 남편의 이직으로 끝이 났다. 남편은 이 달 말에 부산으로 내려갈 것이고,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사랑하며 나를 사랑하며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나비의 날개 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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