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지난 주 목요일 내가 솔이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짧고 굵은 문장이다. 가장 임팩트 있는 문장. 솔이가 34개월이 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말. 드디어 포문이 열린 기분이 들어 이 글을 적는다.
목요일. 수요일에 출장을 갔던 남편이 6시쯤 기차역에 도착한다며 전화가 왔다. 저녁 먹고 들어가자고.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내가 외식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솔이를 하원시키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오늘은 햇살이 너무 좋은지 솔이가 낮잠을 안잤다고. 아하 _ 그렇구나 일단은 낮잠 없이 잘 놀고 저녁에 일찍 자겠구나 생각하고 놀이터에서 열심히 그네를 탔다. 평소 낮잠을 안 잔 날과 다르게 여전히 컨디션이 좋고 저녁까지 끄덕없을 듯한 솔이를 보고 나는 솔이가 낮잠을 안 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시간 맞춰 남편을 데리러 기차역으로 가는 차 안. 절반쯤 왔을 때만 해도 솔이는 먹던 젤리는 나한테 아닌척 주는 등 장난을 치며 뒤에서 깔깔거리고 잘 놀았는데, 차선 바꾸고 고속도로 빠진다고 잠깐 운전에 집중한 사이 뒷자리가 조용하다. 그렇다. 솔이는 그대로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기절해 버렸다. 5시 반.
조용히 기차역에서 남편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낮잠을 너무 오래 재우면 저녁잠도 자기 힘들까봐 우리 부부는 평소대로 아니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수다도 떨고 솔이가 좋아하는 영상 노래도 부르면서 집에 왔는데 솔이는 깰 생각이 없다. 7시가 다 되어가는 상황. 한시간 반쯤 잤으니 잘 잤겠지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솔이는 깨워 집으로 데려오는데, 솔이의 짜증이 보통이 아니다.
어릴 때 부터 잠 잘 재우는 게 내 육아 목표 1호였기 때문에, 자는 애를 일부러 깨운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게 습관이 된 탓인지 단잠에서 깬 솔이는 정말 짐승처럼 울어댄다. 눈을 뜨자마자 그네 놀이터에 가야한다는 둥, 아빠는 절대 싫다는 둥 말도 안되는 떼를 부리며 우는데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집에 데려왔는데도 무슨 서러운 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엉덩이를 씻고 손을 씻어야 하는데도 몸을 뻣뻣하게 하고 안아달라고 보채고 뭐 그 상황을 묘사하긴 어렵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달래고 달래고 또 달래는데 내가 그렇게 달래기만 하는 엄마는 아닌가보다. 순간 나도 짜증이 확 올라오는데, 표정도 굳고 목소리도 깔린다.
엄마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먼저 씻고 솔이가 원하는 걸 들어줄테니 지금은 그만 울어라 이렇게 말하고는 씻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렇게 마무리가 됐는데 딸은 아니였나 보다. 엄마의 그런 일방적인 끝맺음에 더 폭발한 듯 서럽게 우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와버렸다.
" 당장 나가 !!!! "
엄마는 솔이가 울면서 말하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지금 씻기 싫으면 엄마는 씻어야 하니 당장 나가 !! 뭐 이런 의미의 당장 나가였는데, 사실 이전에 한번도 해 본적 없는 말, 그리고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상황이다. 당연히 솔이는 더 눈물 콧물을 흘리고 겨우 울음을 그치니 콧물이 흐르는게 아니라 침이랑 같이 터져나오며 겨우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는 꼭 안고서 감정을 추스르고 저녁을 보냈는데.
자기 전 솔이가 2차전이 또 시작됐다. 자기는 불을 안 끄고 자겠단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겠단다. 그게 12시쯤이였나. 7시 넘어 낮잠에서 깼으니 그 때까지 잠이 안 온건 어쩔 수 없지만 나와 남편은 사정이 또 달랐다. 12시라니... 일단 잠이 안와도 불을 끄고 누워있어봐라, 아니면 거실에 나가서 좀 놀다들어와라 어르고 달래고 수없이 하는데도 먹히질 않는다. 또 어르고 달래고 또 어르고 달래고, 근데 내가 그렇게 어르고 달래고만 하는 엄마가 아닌가 보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 이 생떼를 부리는 4살자리 아이에게 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당장 나가 !!!! "
그리고는 나도 나몰라라 하고는 이불을 덮어쓰고 잠들어 버렸다. 솔이는 깜깜한 방 안에서 한 참을 서서 울더니 내 다리춤에 누워 울면서 잠들었다. 그리고는 새 날이 밝았는데 기억력 좋은 솔이는 어제는 잊지 않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솔이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하루를 반성하며 보냈다.
아무리 욕실 밖에서 나가, 안방에서 나가의 의미였지만 사실은 그게 아님은 나는 안다. 어디서 이런 생떼를 부려 이노무 자슥이, 당장 나가!
뭐 이런 뜻이였는데, 솔이가 나갈데가 어디있으며 그게 얼마나 무섭고 싫은 말이였을까. 기댈곳이라고는 엄마아빠가 전부인데 말도 안통하고 고집도 눈물도 안통하고 답답해 죽겠는데 나가란 말을 들으며 얼마나 절망했을까 ㅠㅠ
급 후회가 밀려오는 다음날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들은 라디오 사연이 생각났다. 여섯살 아이와 아빠의 대립. 그 집 아빠와 아이도 자주 부딪히고 갈등이 잦은데 그때마다 그 아빠가 하는 말이 '나가' 라는 말이라고 했다. 상담자가 말하길, 아이에게 세상이란 가정, 부모가 전부인데 나가란 말을 왜 그렇게 쉽게 하냐며, 그렇다고 나가면 나간다고 또 혼날거면서 그럼 아이는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큰 불안을 느끼는지 아냐고 ... 뭐 그런 상담 내용이였다. 그 사연을 들으며 나도 공감했다. 무슨 부모가 저러냐며 생각했는데 그 사연을 듣고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내가 솔이에게 당장나가라고 두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후
상담이 필요한 건가. 나도 솔이가 저렇게 감정적으로 몰아칠 때면 한 번씩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솔이가 요즘 하고싶은거, 입고 싶은거, 모든 행동 하나 하나에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있어 한 편으로는 대견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 기준으로, 내 잣대로 솔이랑 더 부딪힐 상황이 많으니 갈등도 잦다. 그래도 나가라고 할 일은 아니였는데 ...
며칠이 지났는데도 후회 말고는 다른 생각이 안든다. 그냥 다음 부터는 좀 더 참아봐야지 이정도 ? 육아서적을 찾아봐야겠다. 모든 육아에는 아는게 힘이라는 말을 믿으며 이 글을 급하게 마무리 짓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