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나쁜 지지배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내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한마디로 정리 되었다. 나쁜 지지배.
주말이면 솔이는 낮잠을 건너뛰거나 늦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기절하듯 쓰러진다. 엄마아빠와 노는 시간이 즐거운 탓도 있겠고, 아직까지 이 또래 아이들에게 잠을 잔다는 것은 무엇과의 단절, 그리고 흐린 공포를 동반한다고 한다. 그러니 솔이가 졸린데도 안 자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귀엽기도 하다.
어제는 낮에 잔디밭에서 뛰어놀다 세시쯤 잠이 들었다. 보통 이 시간에 잠이 들면 세시간을 내리잔다. 원래부터 솔이는 잠을 푹, 오래 자는 편이였다. 어린이집에 간 이후로 낮잠 시간이 규칙적으로 줄었지만 가정보육을 할 때는 기본이 두 시간이였다. 솔이는 세시간을 자고 아주 개운하고 활기찬 얼굴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 듯 보였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기 바빴고 남편은 솔이 씻길 준비를 하는데, 솔이는 얼른 챙겨입고 놀이터 나갈 생각에 신이 난다고 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흘렀고 11시까지 부지런히도 놀았다.
토요일이였으면 마음이 덜 무거웠을텐데, 일요일 저녁이 되니 월요일 걱정이 된 우리 부부는 급하게 잠자리를 준비했다. 그래도 11시 넘어서야 겨우 솔이를 이부자리로 데리고 왔는데, 그것도 싫은지 솔이는 내내 불을 안끄고 자겠다, 나는 절대 안 자겠다, 장난감 놀이를 하겠다는 등 투정을 부리다 혼이 좀 나고 서러운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었다. 머리맡에는 토끼, 소, 돼지, 강아지 인형에 자동차, 오리도 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밝았다.
밤 11시에 잤으니 당연히 늦게 일어나겠지. 오전 9시가 되어도 일어나질 않는다. 솔이 잠을 깨우는 일은 나도 내키지 않고 솔이도 싫어해 겨우겨우 버틴게 아홉시. 그런데 등원 시간이 9시 반이다. 내 운동수업 시간도 9시 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어도 9시 20분에는 집에서 나서야 하는데 ... 할 일이 태산이다. 옷도 입혀야 하고, 아침도 챙겨야 하고 어린이집에 가려면 아직도 달콤한 사탕발림도 해야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다. 근데 그게 채 20분도 안되는 시간 안에 될까 ㅠㅠ
급한 마음에 좀 서둘렀더니 솔이가 눈치를 챘다. 그러면 보채기가 시작된다. 메론을 먹다 과즙이 뭍었으니 옷을 또 갈아입겠다, 양말은 자기가 꼭 골라서 신겠다, 뭐 하겠다, 뭐 하겠다 참 솔이도 개구지다. 그 개구진 모습이 마냥 귀엽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 촉박하다. 그래서 빨리 좀 하라고 재촉했더니 신발을 신으며 솔이가 말했다.
" 뭔가 불편한데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
그리고는 어린이집에 가서 내 인사도 안 받고 언제 저렇게 빠릿빠릿했나 싶게 신발을 벗더니 신발장에 탁, 후다닥 교실로 들어가버렸다. 발뒷꿈치는 봤던가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 솔이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다. 평소엔 열린 문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 마음이 아리게 하더니만 오늘은 이렇게 찬바람이 분다.
뭔가 불편한데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니, 시간이 없어서 재촉 좀 했을 뿐인데, 짜증을 냈다지 않나, 다 내 탓을 하지를 않나, 그럼 자기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여유를 좀 부리던가 이게 어디서 다 엄마탓이야 !!! 생각하면 할 수록 열이 났다. 운동을 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토록 무방비 상태로 나를 골탕먹이고 나를 몰아부치는 여자는 솔이가 처음이다. 그런데도 어쩔 수가 없어서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나쁜 지지배.
나는 외동딸이고 엄마랑도 무탈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리고 가까운 여자 친구 한 둘 정도, 동성간의 관계에서 많은 걸 경험해 보지 않아서인지 이렇게 나를 몰아부치는 여자아이가 너무 얄밉다.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도 그 쌀쌀맞은 솔이의 뒷꿈치가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아 남편한테 고자질도 했다. 쟤 좀 혼내달라고, 나한테 이렇게 했다고 !
그런 솔이가 오늘도 어린이 집에서 낮잠을 건너뛰고 와 한참을 헤롱거리다 아홉시쯤 쓰러져 잠이 들었다.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절대 안잘거라는 솔이의 모습이 너무나 끔찍히도 귀여워 더 일찍 재울 수도 있었는데 정신없이 쫑알거리는 모습 좀 보느라 이제야 눕혔다.
솔이는 나를 정말 쥐락펴락 하는 아이다. 나쁜 지지배. 다 내 탓 아니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