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회공포증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운동을 마치고 늦은 아침을 먹을 때 종종 유튜브를 보곤 한다. 아니 매일 본다. 예전에는 유튜브 인스타 페이스북 이런 소셜미디어에 대한 막연히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는데 (그건 아마, 이런 큰 흐름에 내가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과 시대 흐름을 잘못 타고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내 고집때문이겠지) 언젠가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인스타 그램을 깔았다 지웠다 하는 나를 보고


'' 그냥 보고 싶은 만큼 봐,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고 애를 쓰고 있는지 그냥 보고 싶은 만큼 봐"







유레카! 남편이 이런 말을 하다니!

맞다, 분명 소셜미디어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것 자체가 보여주는 지금의 세상 모습,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정말 놀랄만큼 자기 자신을 현명하게 사랑하는 이들도 있고, 자기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감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넘처나고 있다. 나처럼 집에서, 침대에서, 손 안에서만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늘 꿈꾸기만 하는데 그 꿈을 위해 한 걸음씩 걷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건 남편의 말 한마디로 바뀐 소셜미디어에 대한 나의 확고한 견해이다. : )







하지만 소셜 미디어는 문제가 아닌데, 정작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얼마전 유튜브 세바시 '권율의 내 안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영상을 봤다. 영상 속 주인공은 미국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에서 우승한 최초의 동양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인종차별로 인한 심리적 장애를 겪으며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했고,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경험하며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내적인 갈등을 이겨낸 인물이라고 한다. 스펙도 좋고 소위 앨리트에 엄친아라는 주인공이 '우리는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며 강연하면서 자신이 겪은 사회공포증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부분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순간 머리가 번쩍였다. 사회공포증. 그 단어를 처음 들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내가 순간 순간 경험하는 불편한 감정들이 저거였구나 알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과 특히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얼굴이 빨개져있다. 부끄럼을 탄다. 대중 앞 연설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동네 엄마랑 이야기 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지고 초조하고 어떻게 대화를 해야하는지 전혀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금방 그 자리를 마무리하고 피한다. 예전에는 이걸 그냥 촌년병이라 하고 웃으며 넘겼는데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 감을 느낀다.



특히 솔이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조금만 길게 이야기를 할 때면 금방 얼굴이 붉어지고 그런 모습이 창피해 대화를 대충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카페나 은행, 일반 생활을 하면서도 낯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그렇다. 처음엔 이게 내가 좀 쭈글이라서 자신감이 없어서 또는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건가 생각했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언제 부턴가 이런 일의 횟수와 강도가 심각해지면서 혹시 병은 아닐까 잠시 생각한 적도 있다. 아, 특히 작은 거짓말, 또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할 때면 어김없이 얼굴 색이 변해서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도 또 얼굴이 붉어지고 창피할까봐 관심없는척, 친해지지 못한 경우도 정말 많다. 그래서 타지로 옮겨다닐 때 마다 외로움만 커져가기도 했었지 ... 씁쓸하다.









그런데 이게 사회공포증이였던 거다. 다른 말로는 사회 불안 장애.

[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바보스러워 보일 것 같은 사회 불안을 경험한 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정신과적 질환 ]


아, 용어의 정의는 어쩜 이토록 날카롭게 나를 잘 표현하고 있는지. 그래 맞다 나는 지금 사회적 기능이 정말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라 사회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이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신적인 질환을 겪고 있고 그게 악화되어 더욱 심각한 문제에 이르기도 하겠지. 지금 내가 남 걱정할 때는 아니지만 육아맘으로 지내면서 만난 몇몇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나와 같은 모습을 하면서, 또 제각기 다른 자기방어 기제로 더욱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다시 내 코 석자로 돌아와, 일단 내가 겪는 상황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또 그런 경험을 한 누군가는 그걸 극복하고 많은 대중들 앞에서 모든 이의 행복권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구나, 그 사실에 작은 위로를 받는 듯 했다. 그러기 위해 수없이 부딪히고 버티고 이루어낸 그 사람의 강인한 삶의 흔적도 볼 수 있어 정말이지 감동적이였다.




그리고 나도 그 감동을 느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들 속에서 있고 싶고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싶은데, 그게 매번 어렵고 힘들었다. 어느 순간, 내 생각을 말하는 것 조차 용기를 내야 할 지경에 이르자 하는 수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그래야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매일 이렇게 내 마음을, 내 생각을 기록한다는 것조차 버겹게 느껴지곤 한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하고 안전한 상황에 머무르려 하니까.








아마 사회 불안 장애를 경험하며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런 시간들은 너무 고요하고 자극이 없어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나 보다. 그렇게 머물러있는 것이 나를 얼마나 약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말이다. 내 삶에 작은 변화만 일어나도 나는 공포스러워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데 늘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로서, 솔이에게는 늘 용기를 가지라고 새로운 시도를 하라고 그렇게 세상을 알아가며 자라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박제된 부엉이처럼 집안에 있으면서 눈만 떼구르르 굴려 솔이에게 세상을 보여주려고 했다.





내 마음과 말, 즉 언행의 불일치 그 괴리감이 힘들었다. 솔이의 순수한 눈이, 엄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솔이의 눈이 떠오를 때마다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잘 안됐는데 솔이는 언제나 힘을 가졌다. 솔이에게라도 진정한 엄마, 진정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용기를 낸다. 나도 세바시의 주인공처럼 내가 겪는 이 시련을 이겨내고 싶다. 그래서 대중 앞이 아닌 솔이에게 말해주고 보여주고 싶다. 성장이란 이런 거라고, 엄마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고.


문득, 내 삶의 굴곡이 그리고 높고 낮음이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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