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회사에 가?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임신 9개월 차, 남편이 말했다. 2주간 유럽 출장이 있다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며, 정말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렇게 했는데도 뒤돌아서니 눈물이 나왔다. 나는 잘 우는 편이다. 딴 데서는 잘 안 우는데 남편이랑 대화를 하다 보면 그렇게 눈물이 헤프다. 연애 때도 안 먹히던 눈물 공략을 결혼 5년 차, 곧 두 아이 부모가 되는 이 시점에 이렇게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안 그래도 폴더도 안되고 뒤뚱뒤뚱 걷는 것도 힘들어 솔이랑 보내는 몇 시간조차 버거울 때가 있는데, 2주간. 그것도 곧 솔이 어린이집 졸업, 온종일 솔이와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그게 내 일일 텐데도 가슴이 답답해온다. 평소 같으면 박물관도 가고 전시회도 가고 키즈카페도 가고 공원도 가고 동네 놀이터도 가고 신나게 놀텐데 임신 9개월 차 나는 가끔 안방에서 거실 화장실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몸으로 그렇지 않은 척 솔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양가도 멀리 있고, 요즘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더더욱 외출이 힘드니 주로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할 텐데 솔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할까. 안 그래도 둘째 핑계를 너무 자주 써먹어 미안한 마음이 큰데 남편 없는 2주 간 얼마나 자주 배가 뭉쳤다, 허리가 아프다, 숨이 찬다, 엄마는 임산부라서... 이런 말로 솔이의 흐름을 끊게 될지 그 미안함과 걱정에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오늘은 나도 다행히 컨디션이 좋고, 솔이도 하원 후 킥보드를 타서인지 기분이 좋다. 이 추위를 뚫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기분 좋게 집에 오는 길,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이번 출장이 취소됐다고. 처음 남편의 출장 소식을 듣고 너무 힘든 내색을 했나, 거실에서 혼자 울면서 코푸는 소리를 들었나, 아니면 아닌 척 찬바람 좀 풍겼는데 그게 남편의 마음을 시리게 했나 ㅋㅋㅋ 등을 생각하며 혹시 나 때문에 출장을 취소한 건가? 생각 들었다. 그렇다면 그러지 말라고, 나 놀이터에서 솔이랑 좀 놀아서 인지 기분전환이 됐다고 힘들 뿐이지, 잘 해낼 수 있다고 답했다.


일정이 정리가 안되기도 했고, 요즘 코로나 때문에 취소된 거라 신경 쓰지 말라는 남편의 카톡을 마지막으로 나는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솔이와 한글 공부 '나'도 했고 숫자 공부 '2'까지 했다. 그리고 책도 몇 권 같이 읽었고 낮에 끓여둔 미역국으로 솔이와 맛있게 저녁식사도 마쳤다. 아마 남편의 출장이 취소된 것이 그 이유겠지. 모든 일이 즐거운 게 마음이 가벼워져서겠지.


그렇게 남편도 퇴근을 하고 따듯한 저녁을 먹었다. 출장 취소됐다고 당장에 너무 방방 뜨기가 민망했지만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하며 요 며칠 없던 웃음기가 돌아와 다 같이 즐거운 금요일 저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는 설거지, 솔이는 아빠랑 짐볼 점프를 하며 거실을 오가는데, 갑자기 솔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여자도 회사에 가?


뒤통수 넘어 들려오는 솔이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자도 회사에 가냐고? 아마 집에서 내내 듣는 중국어 시디에 가족 소개를 하는 부분을 들었나 보다. 짱위라는 남자아이가 자기 엄마는 50세에 무역회사를 다니시고 어쩌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솔이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그 부분을 듣자마자 내게 질문한 것이다. 여자도 회사에 가?



솔이는 매일 저녁 묻는다. 엄마, 아빠 내일 회사 가? 엄마, 엄마 내일 요가 가? 그럼 나도 내일 어린이집에 가?

아마 아빠가 회사 가고 엄마가 요가 가는 날은 자기도 어린이집에 꼭 가는 날이라고 여기고 있나 보다. 아직 주중과 주말의 개념이 없으니 자기 나름의 규칙성을 부여한 거겠지. 그리고 매일 아침 묻는다. 아빠 회사 갔어? 엄마 요가 가? 그럼 나도 어린이집에 가? 그리고 매주 금요일 나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솔이에게 선물이라도 하듯, 내일은 아빠도 회사에 안 가고 엄마도 요가 안 가고 솔이도 어린이집 안간다아아아앙 내일 우리 셋이서 신나게 놀자!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솔이에게 세상의 모든 아빠는 회사를 가고 세상의 모든 엄마는 요가를 가는 거라고 굳혀졌나 보다. 그런데 상위 엄마는 무역회사를 간다니? 세상에나 여자는 무조건 요가를 가는 게 아녔던가? 내가 요가 강사나 되어서 출근을 하는 거라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나는 육아 스트레스를 벗어던지기 위해 솔이 어린이집 등원하는 달부터 요가를 나간 게 전부인 요가가 취미인 '회원'인데 솔이에게는 그게 아니었던 거다.



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싱크대 물을 잠그고 잠시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말을 해 줘야 할까? 엄마는 왜 회사에 안 가는지 그 이유를 말해야 하나 _ 음, 경력단절 여성으로서, 그것도 비전문직 종사자 경력단절 여성으로서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거쳐 나는 그냥 외벌이 가정에 전업맘, 육아맘, 그리고 요가학원 회원으로서...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응, 여자도 회사에 가. 누구나 자기가 원하면 회사에 갈 수도 안 갈 수도 있어. 그랬더니 솔이가 다시 한번 묻는다. 그럼 남자도 요가하러 가?

나는 '그럼~' 이렇게만 말하고 다시 뒤돌아 설거지를 마쳤다. 솔이도 그냥 그렇구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아빠에게로 가 다시 짐볼 점프를 하며 신나게 놀았는데 나는 남편 출장 취소로 신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막이 내렸음을 직감했다. 그 순간 이 후로, 내 머릿속에는 솔이의 질문이 소용돌이친다.




앞으로 회사에 다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지 확신할 수 없는데, 아니 그런 모습의 엄마는 볼 수 없을 듯한데 솔이에게 오늘의 일을 언젠가는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싶었다. 지금 솔이 곁에 있는 엄마로서 나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말하고 싶었다. 당황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 짓지 않고,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말해주고 싶었다. 회사에 가지 않는 엄마 이야기, 늘 솔이 곁에 있는 엄마의 이야기를.








마음이 조급 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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