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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Feb 09. 2017

나이팅게일, 뜻밖의 선물


안데르센의 창작활동은 그 자체가 동화의 탄생으로 불려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가 동화를 처음 쓰던 시기 아동을 위한 글들은 계도 목적의 가정 교육서 범주에 속했다. 쉽고 아름다운 일상 언어로 부조된 안데르센의 독특한 판타지들은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초기작들은 기존 민담을 모티브로 재구성 한 친밀한 이야기들로 꾸려졌다. 독자적 화법이 인기를 얻으며 스타일로 정착되자 소재 또한 새, 나무, 들꽃, 눈사람 같은 일상적 개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낭만적 분위기의 우화 <나이팅게일>이 대표적이다.

#공주와 완두콩, 짐작과는 다른 안데르센 https://brunch.co.kr/@flatb201/73





모든 것을 가진 중국의 어느 황제가 정원을 만든다. 완성도를 위한 욕심에 황제는 나이팅게일을 생포 해오라 명한다. 과연! 숲 속에서 자유롭게 노래해 온 새는 인위적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감동을 준다. 나이팅게일은 새장 속 생활이 싫었지만 자신의 노래에 진심으로 감동해준 황제의 곁에 머물기로 한다. 그날 이후 나이팅게일의 아름다운 노래는 황제만이 누릴 수 있게 된다.


어느 날 일본의 천황이 으쓱대며 선물을 보내온다. 태엽을 감아주면 정확한 음으로 노래하는 온갖 보석으로 휘황한 장난감 나이팅게일이었다. 황제는 두 새의 이중창을 보고 싶었지만 자유롭게 노래하는 진짜 새와 정확한 음만 내는 장난감 새의 노래는 조화되지 않았다. 신기한 장난감에 매료된 사람들은 행방마저 묘연해진 진짜 나이팅게일의 존재를 잊는다. 무리하게 노래를 반복하던 장난감 나이팅게일은 망가져버린다.


모든 것 위에 군림하던 황제도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중병으로 앓아누운 황제 앞에 황금 관을 쓰고 검을 든 저승사자와 화려한 깃발을 든 도깨비들이 번갈아 나타나 선행과 악행을 되새기게 한다. 악령에 짓눌린 황제가 괴로워하던 그때 기적처럼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제게 멋진 검을 주신다면 노래 부르죠! 제게 멋진 황금 관을 주신다면 노래 부르죠! 제게 화려한 깃발들을 주신다면 노래 부르죠!”


나이팅게일의 아름다운 노래가 신비로운 꽃을 피우자 사자들은 사라지고 황제는 고통에서 구해진다.

진짜 노래가 가진 가치를 깨달은 황제는 더 이상 나이팅게일을 속박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자유로운 새는 세상 누구에게나 기쁘고 슬픈, 온갖 이야기를 지저귄다.





연인의 새

서양문학에 빈번히 등장하는 ‘나이팅게일’은 연인을 상징하는 새다. 밤새 노래하다 절정의 순간에 죽는 것으로 설정되기에 열정과 연심을 대표하곤 한다.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은 자신의 노래를 알아봐 주는 황제에 대한 애정으로 자유를 포기한다. 진짜 노래를 구사하는 새의 변함없는 애정은 황제를 구원하고 집착에서 벗어난 사랑을 얻는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던 안데르센은 이성에 대한 두려움만큼 욕망을 품었다. 존중을 배운 황제와 달리 자신에게 다정한 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유아적 집착을 보였다.

예술가이자 뮤즈인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은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리며 글로벌한 인기를 구가한 소프라노 성악가 예니 린드 Jenny Lind가 모델이다. 안데르센에게 연심을 품었다기엔 당대의 슈퍼 스타였던 예니 린드는 다수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반면 안데르센에겐 그녀를 흠모하는 마음이 있었다. 안데르센의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평가되는 <미운 오리 새끼>, <나이팅게일>, <눈의 여왕>, <전나무>는 모두 예니 린드와의 교제에서 영감 받은 작품들이다. 극 중 나이팅게일이 황금 열쇠를 하사 받는 에피소드도 뛰어난 기량으로 국왕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 받은 예니 린드의 경험을 치환했다.

예니 린드의 초상이 실린 스웨덴 크로나 (http://spinnet.eu/wiki-banknotes/index.php/Lind,_Jenny)




예술가의 새

두 가지 종류의 나이팅게일은 자연에서 발화되는 절대 예술에 대한 경외와 대중의 변덕을 풍자한다. 기계식 나이팅게일이 대중의 요구에 끌려다니다 종말을 맞는다면 진짜 나이팅게일은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지켜낸 예술가이다.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은 예니 린드뿐 아니라 그가 살던 시대의 구체적인 유행을 모티브 삼았다. 작품의 배경이 중국인 것은 18세기부터 대유행 한 동양풍 Chinoiserie의 영향이다. 서양인들의 막연한 오리엔탈리즘은 종종 야단법석스러운 컬러로 구현된다. 때문에 한층 투명한 담채화를 선택한 리즈벳 츠베르커의 일러스트는 화려함이 아닌 여백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장기인 고적한 이미지들은 종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다소 부정확한 고증도 관대하게 넘어가 줄 수 있는 서정성이 존재하는 일러스트이다.


보석으로 장식된 장난감 나이팅게일은 실제로 유행했던 사치품이었다. 각종 탐구가 탐험만큼 독려되던 19, 20세기 산업화의 열기는 예술품에도 몰아친다. ‘노래하는 새 Boîte à oiseau chanteur (Singing Bird Box)’처럼 아름다울 뿐 아니라 최신의 기술이 도입된 발명품들이 주목받았다. 시계 공학의 나라이 스위스의 엔지니어 피에르 자케 드로 Pierre Jaquet-Droz가 미니 파이프오르간 박스를 만들면서 본격 유행된 Song Box는 여타 장인들에게 파생되며 다양한 디자인이 시도된다. 

최신 기술 위에 전문 기법을 요구하는 보석 세공, 희귀한 깃털 수집까지 결합된 수제품이기에 화려함과 희소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공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최상위 상류층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었기에 타 분야의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이 분야의 가장 성공한 엔지니어 샤를 브루게 Charles Bruguier는 평생 27개의 제품만 생산하는 한정판 전략으로 브랜드 명성과 수집욕을 쌓는 데 성공했다.

초기의 Song Box. 황제의 나이팅게일처럼 새장까지 갖춘 공예품이 우세했다.


Freres Rochat / Charles Bruguier, 1850 (@Sothebys)


Frères Rochat, 후반기 Bird Box (https://youtu.be/xaugFk7MbCg)




비평과 우정이 엇갈리다.

예술가로서 나이팅게일의 고뇌는 안데르센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문학적 고민뿐 아니라 여러 콤플렉스를 안고 있던 안데르센은 타인의 평가에 전전긍긍했다. 비록 집필 초기에는 인지도로 굴욕을 겪었지만 아름다운 판타지는 금세 유럽 각국 명사와 왕족들의 ‘트렌드’가 된다. 디킨스, 그림 형제, 발자크 등 당대의 작가들도 안데르센의 독창성에 주목했다. 특히 안데르센 작품의 영문 출판을 주도한 디킨스는 열렬한 지지자였다. 강박적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안데르센에게 디킨스는 비평에 무관심해지라고 조언한다.


“신문 때문에 화내지 마세요. 그런 것들은 일주일이면 모두 잊혀지지만, 당신 책은 영원할 것입니다! 신은 당신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는 모래에다 발로 '비평이란 그런 겁니다!'라고 쓴 다음에 문질러 없애버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라지는 겁니다.”


디킨스의 예언대로 곧 대중이 반응하고 안데르센은 여러 차례 영국을 방문했다. 이 우정은 대부분 디킨스의 호의에 의해 유지되었다.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구어체를 구사한 모국어와 달리 안데르센은 영어에 서툴렀고 사교술은 더 형편없었다. <리틀 도릿 Little Dorrit, Charles Dickens, 1857> 집필 시 디킨스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가뜩이나 방대한 분량의 집필은 지지부진했고, 황망한 사고로 절친한 지인을 잃었으며, 결혼 생활은 파경에 치닫고 있었다. 이 와중에 또 찾아온 안데르센에겐 여전히 눈치란 게 없었다! 수년간 우정 어린 지지를 보여준 디킨스도 안데르센의 유아적 행태에 질려버린다. 마지막 방문이 된 만남에서 안데르센이 머물다 떠난 방에 그가 붙여둔 쪽지는 이 우정이 소멸되었음을 공표한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이 방에서 5주간 머물렀다. 우리 가족에게는 '일평생' 같았다!'


그러나 귀국 후에도 여전했던 안데르센은 그 후로도 한동안 해맑게 ‘디킨스가 왜 내 편지에 답장 안 하지?’라며 궁금해했다고 한다.




창작자라면 비평 또한 작품의 동력으로 안고 가야 할 때도 있다. 뜻하지 않은 순간 날아든 비평은 뜻밖의 선물이 될 수도, 치명적 일격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창작자가 아니라도 타인의 평가에 초연 해지는 것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그런 시기에 집중할 것은 소음과 견해를 구분하고 자기 검열을 통해 세운 지침을 상기하는 것이다. 외부의 태엽에 뱅글뱅글 돌게 될지라도 자신의 노래를 간직해야 한다.

모든 창작에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개인의 삶 또한 선택적 차단을 통해서라도 고수해야 할 지침들이 있다. 스스로가 단단하게 가꿔나갈 방향성이야말로 항상 신경 써야 할 비평이지 않을까?





@출처/ 

나이팅게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Nightingale, Hans Christian Andersen, 1843)

Nightingale (North South Books, 1999, 일러스트 리즈벳 츠베르거 Lisbeth Zwerger)


안데르센 평전, 재키 울슐라거 (Hans Christian Andersen: The Life of a Storyteller, Jackie Wullschlager, 미래M&B, 2006, 번역 전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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