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신디 / 전설의 별 시리우스
‘순정만화’라는 명칭에 담긴 폄하는 여러 종류를 꼽을 수 있지만 ‘여성이 그리는 비현실적 사랑 타령’이 대표적이다. 1세대 작가들이 대놓고 모사해야 했던 일본 순정물의 흔적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순정만화의 부흥기인 1980,9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을 특정 장르로 묶어두기에는 훨씬 다채롭다. 일본 시장과 비교하면 미미할지 모르지만 역으로 당시 출판계와 도제 시스템 속 여성 창작자들의 분투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일궈낸 결과는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배설 서사로 부수를 갱신하는 남성 작가들이 압도적인 당시, 내러티브에 대한 여성 작가들의 고민은 그들이 속한 미디어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한국 사회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가부장 서사와 여성 혐오도 비치지만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 중 이런 구시대 관념에 함몰된 이가 적은 이유도 이 시기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2세대 작가들의 분투 아래 등장한 다음 세대의 작가들-유시진, 권교정, 이강주, 박희정, 김은희, 천계영, 문흥미, 심혜진, 지혜안, 한혜연 등은 또렷하게 진보한 세계관으로 인기몰이를 한다. 킬링타임으로 소비되던 만화가 문화로 편입되는 과정에 순정물의 기여는 적지 않았고 창작 주체는 대부분 여성 작가들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순정이란 단어에 품는 흔한 오해들-분홍분홍 소녀, 꽃다발과 레이스, 대상화된 판타지, 때로는 과도한 감상성을 상업성까지 얹어 구현한 이로는 남성 작가인 김동화가 먼저 떠오른다. 당시 소녀 만화는 이케다 리요코를 위시한 일본 만화의 열풍이 거셌지만 정부 규제로 인해 해적판 열람 외에는 판로가 없었다. 폭발적인 수요에 비해 공급은 한미 하던 국내 순정만화계에서 김동화의 폭풍 인기는 예정된 것이었다.
발표작 대부분이 인기를 얻은 김동화의 작품 세계는 장르 면에서 꽤 폭넓다. 시대극 <멜로디와 하모니>, <사랑의 에반제린>, <비운의 사파이어>, 전설을 차용한 오컬트 미스터리 <레오파드>, <아카시아>, 신파이긴 해도 섬세한 감성의 현대물 <목마의 시>, <영어 선생님>, <내 이름은 신디>, <요정 핑크>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김동화 특유의 동화적 감수성은 장르적 특징보다 소녀 만화로서의 인상이 먼저 각인된다. 팬들이 내내 아쉬워하는 시그니처 화풍을 버리면서까지 작화를 변화시킨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에반제린, 소년이 그린 소녀 감성 https://brunch.co.kr/@flatb201/49
#요정 핑크, 김동화가 찾아낸 서울 https://brunch.co.kr/@flatb201/62
<전설의 별 시리우스>는 <비운의 사파이어>, <빨간 머리 앤> 등과 더불어 메르헨을 차용한 작품이다. 희생과 화합이란 계도적 결말에 로미오와 줄리엣 식 러브라인을 입힌 단순한 서사지만 극강의 정교한 이미지들이 신화적 신비함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동시대 일본에 비해 열악했던 재료의 한계는 노동집약형 펜 터치로 극복하는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김동화의 시그니처 화풍이 절정에 접어든 때이기에 페이지마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때문에 대본소 단행본의 경우 신일숙, 김혜린의 작품과 더불어 페이지를 뜯긴 파본이 유독 많았다.
물의 아이 마르타와 불의 아이 시리우스의 운명적 사랑은 또 다른 인기작 <내 이름은 신디>에 차용된다.
연재 시 연장을 거듭한 <내 이름은 신디>는 주인공답게 우연히 잠재성을 발산한 여고생 준희가 왕자 역 은우에 대한 마음과 연극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가는 학원물이다. 십 년에 한 번 공연되는 연극 속 신데렐라 커플이 맺어지지 못하면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 ‘신디’가 된다. 애조 띤 전설에 입혀진 첫사랑의 조마조마함은 우연에 기댄 서사의 한계에도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다. <시리우스>는 액자 형식의 연극 콘티로 사용된다.
사실 이 작품 속 연극들을 볼 때면 <유리가면 ガラスの 假面, 美內 すずえ>의 변주라기보다 그저 예쁜 그림이 그리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주요 메타포인 ‘신디’는 그저 커플링을 위한 도구로 쓰인다. 준희와 은우가 보내는 학창 시절이나 그들이 공연하는 연극은 지나치게 현실감 없는 관상용 청춘 드라마다. 평범함이 강조되는 준희는 전혀 평범하지 않다. 재능에 있어서는 유전적 정통성을 부여받고 외모에 있어서는 전형적으로 대상화된 여고생 판타지 그 자체다. 이런 비현실감은 역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그림과 만나 시너지를 낸다. (그렇다 해도 장발의 가냘픈 남자 고등학생이 세일러복을 입고 등장할 때면.. 휴우..)
준희가 신디인가, 신데렐라인가에 대한 관심은 사뭇 대단했고 작가도 부담을 느꼈는지 결말은 살짝 애매하게 묘사된다. 운명에 의지로 맞선 준희가 유학을 떠나며 남긴 편지가 읊어진다. 이 마지막 장면을 두고 준희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유학으로 헤어져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애틋한 연애편지다.. 등 의외의 열린 결말 논쟁이 벌어졌던 기억이 난다.
순정물의 클리셰들이 고스란히 구현된 김동화의 작품은 이 장르에 대한 오해를 확장시켰을까?
앞서 말했듯 국내 순정물에 관한 오해는 외부의 선입견이 보태진 폄하라 생각된다. 김동화의 작품은 장르적 특징을 정교하게 구현해낸 ‘순정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내 이름은 신디> 속 <시리우스> 같은 장르 속의 장르로 말이다.
@출처/
내 이름은 신디, 김동화 (어문각, 1986)
전설의 별 시리우스, 김동화 (프린스,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