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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Dec 12. 2018

모그의 크리스마스

Mog's Christmas


너무 바빴다. 다정함이 필요했다. 이럴 때 가장 절실해지는 것은 강아지의 발바닥이다.

마주 비벼대면 꼬순내가 나는 사랑스러운 촉감, 코 찡긋 귀찮아하면서도 순순히 내어주던 권태로운 애정.

한때는 그런 호사를 매일 누렸건만 함께하던 강아지가 떠난 후론 그저 쓸쓸한 복기로만 남았다.

동물들이 주는 온기의 완전무결함은 오래도록 우리를 지배한다.

#혼자 가야 해, 행복의 퍼센티지 https://brunch.co.kr/@flatb201/84


주디스 커의 작품들은 그림책이라는 단어가 주는 온기를 재현한다.

나치 집권 당시 유대인이면서 공개적으로 나치를 비판한 아버지가 감찰 명단에 들자 주디스 커의 가족들은 도피한다. 난민 생활을 거쳐 영국에 안착한 커는 노년까지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각인된 유년 시절이 바탕이 된 <히틀러가 분홍 토끼를 훔쳤을 때 Heiler Stole Pink Rabbit, 1936>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주디스 커의 장기는 역시 그림책이다. 어느 오후 뜬금없이 찾아와 간식에 수돗물까지 싹쓸이 후 사라진 아름다운 호랑이에 관한 동화 <차 마시러 온 호랑이 The Tiger Who Came to Tea, 1968>는 어느 세대에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차 마시러 온 호랑이>는 게슈타포의 급습을 동화적으로 은유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부차적인 감상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자신도 부인했음을 떠나 이 동화의 엉뚱함은 어두운 기억을 극복하는 데 있지 않다. 어린이들, 어린 시절의 우리만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온전히 이해한다. 머리도 꼬리도 없는 개연성과 무관한 순도 높은 명랑함에 열광한다.

#그러나 난 행복할 이유가 무척 많아요. https://www.bbc.com/news/magazine-25027090

뜬금없이 찾아온 정체 모를 호랑이는 간식에 수돗물까지 싹쓸이하고 사라진다


주디스 커의 오리지널 스토리 <고양이 모그> 시리즈는 좀 더 친절하다. 뭐든 깜박깜박 잊어버리는 모그의 낙천성은 우당탕탕 소동을 불러일으킨다. 모두들 성가셔 하지만 사실 모그는 지루한 게 싫을 뿐이다.

 <Mog's Christmas, 1976>는 시리즈의 두 번째로 고양이 모그가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의 스케치이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완역분은 1편뿐이라 아쉽다.

모그의 낭창낭창함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이들의 시니컬한 애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넘치게 이해시켜준다.

고양이가, 혹은 강아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평생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땡겨 받은 것 아닐까? 정말 부럽다, 훌쩍!

고양이와 함께 살지 않는 이도 너무 익숙한 망충 포즈





어느 날 아침, 모그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갸우뚱한다.

모두가 바쁜 가운데 창턱에서 졸던 모그는 화들짝 놀란다. 나무가.. 나무가 걸어오고 있어!


“.. 나무는 걸을 수 없어. 나무는 한 곳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

나무 따위에 놀라는 저 하찮음.. 귀요워서 미춰버리겠다!


호다닥- 지붕 위로 도망친 모그의 콧잔등 위에 하얗고 차가운 것이 나풀거린다.

저녁이 되어 상냥한 데비가 식사를 가져다주어도 모그는 내려올 생각이 없다.

어쩐지 높은 곳이 마음에 든 모그는 사랑스러운 꿈을 꾼다.

구름 위에서 모그는 떨어지는 하얀 것들을 잡으려 하며 행복해한다. 그때 갑자기 구름이 녹아내린다.


우당탕탕! 집안에서 모그를 걱정하던 가족들은 요란한 소리에 달려간다.


“산타클로스다!” 

“산타클로스는 꼬리가 없어.”


졸다가 굴뚝으로 굴러 떨어져 검댕이가 된 모그는 목욕을 하게 된다.

그러나 괜찮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걷기를 멈춘 트리마저도.

모그는 선물로 달걀에 칠면조 고기까지 받았다. 모그가 가장 좋아하는 데비가 속삭인다.


“Happy Christmas, Mog”






누군가의 고양이도 길 위의 고양이도 한결같이 사랑스럽지만 삶의 혹한은 같지 않다. 눈송이의 보드라운 촉감에 구름 위를 꿈꾸는 귀요미보다는 냉기가 보태지는 걸 느끼며 떠나는 고양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바람 소리 거친 밤이면 무수한 길고양이들이 어디에서 자는 걸까 새삼 궁금해진다. 너무 흔한 죽음은 작은 봉사에 무력감만 더한다.

길 위의 생명들이야 그저 태어났으니 살아지는 삶일 테다.

불투명한 호의에 기대어 연명한 하루일 뿐이래도 부질없이 바라본다.

내가 모르는 너의 하루, 어떤 즐거움에 나의 호의도 작은 조각으로 보태지길.

크리스마스가 없는 날들 이어도 또 한 번 이 겨울을 잘 버텨내길.





@출처/ 

Mog's Christmas, Judith Kerr, 1976

Mog's Christmas (Harpercollins Pub, 2004 일러스트 주디스 커 Judith Ke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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