넨디의 크리스마스
상상의 친구에게 의지하던 시기를 지나면 어린이들은 작은 창조자가 된다.
멋진 초록색 팬츠를 입은 분홍분홍 ‘넨디’는 토샤가 미술시간에 만든 찰흙인형이다. 모든 찰흙인형이 그렇듯 코가 뭉그러지거나 귀가 짜부라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 넨디는 자신이 사는 필통과 상냥한 토샤가 너무나 좋다.
다정한 소녀 ‘토샤’의 필통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필통 뚜껑이 열릴 때면 펜대나 연필들은 서로 뽑혀가길 바라며 두근거린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토샤이건만 잉크병은 언제나 말썽이다. 친구에게 빌려진 연필들은 끝이 잘근잘근 씹혀 돌아올 때도 있고 앞 뒤 없이 달려드는 강아지와 개구쟁이 야체크는 모두에게 요주의 대상이다.
오렌지 껍질 배를 덮쳐오는 이불 파도도, 압지들의 일사불란한 유능함도, 선인장에 엉겨 붙은 수다쟁이 털실 인형들의 곤경도 모두 즐겁다. 토샤의 색종이를 잘라 만든 일기장은 넨디의 신나는 모험들로 빼곡하다.
쉽고 말랑말랑한 <메르헨 전집>은 교훈과 무관하게 재미있는 점이 좋았다. 일러스트로 유명세를 얻은 전집들만큼 월등하진 않지만 단색임에도 귀여운 일러스트가 심심치 않았다. 원전을 찾아보니 오리지널 스케치인 경우가 많았다. <호첸플로츠> 같은 스테디셀러들은 다른 판본도 많았고 더 훌륭한 완역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메르헨 전집>의 아기자기한 작품들 대부분이 절판 후 기억 속에서만 떠돈다.
필통 속에 사는 작은 찰흙인형의 일상다반사 <넨디의 크리스마스>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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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넨디의 크리스마스>는 원전을 찾아보려 했을 때 도무지 검색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메르헨 전집> 수록분의 일러스트가 딱 봐도 야마와키 유리코의 작품 같았다. <싫어 싫어 유치원>, <나무 딸기의 임금님>, <구라구라 시리즈>에서 보아온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느낌이 묻어있었다.
야마와키 유리코의 일서를 검색해 알아낸 원전은 무려 폴란드의 국민동화였다. 구글이의 도움으로 원제를 검색하자 비록 폴란드어이긴 하지만 다양한 판본과 팬아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넨디의 크리스마스>는 1931년부터 아동잡지 <Płomyczek>에 연재한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원제는 <찰흙인형의 일기 Plastusiowy Pamiętnik>로 <찰흙인형의 모험 Przygody Plastusia, 1957>이라는 속편이 있다.
작가 마리아 코브나가가 교사로 일하던 당시 폴란드는 가장 직접적으로 나치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고립이 다가올수록 연대와 의식개선 목적의 출판물과 지하 방송이 성행했다. 정치상황과 무관해 보이는 이 찰흙인형 이야기도 그런 계몽운동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폴란드 어를 몰라 정확하진 않지만 주인공의 이름 ‘넨디’는 일서 발행 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학습연구사에서 <나는 넨디 ぼくは ネンディ, 1968>와 <넨디의 모험 ネンディのぼうけん, 1976>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되었다. <메르헨 전집>에선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제목으로 선택한 듯싶다.
원전인 폴란드 판본의 일러스트는 Zbigniew Rychlicki의 일러스트가 발전된 것이다. (폴란드어 읽지 못하는 고통.. 흑흑) 인기만큼 다양한 개정판이 나왔기에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화풍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빈티지한 분위기의 1960년대 스타일의 원서는 직접 보고 싶다.
극 중 지우개 쥐는 최초 연재 시에는 ‘쥐 Myszka’라는 상표의 일반 지우개였던 걸로 유추된다. 이것이 점차 생쥐 비슷한 모양의 지우개로 바뀌더니 일서 판본에선 완전히 생쥐 모양으로 그려졌다.
어느 날 토샤와 학교 친구들이 더없이 바빠진다. 색색의 종이 사슬과 황홀한 장식.. 무엇보다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불리는 멋진 나무에 넨디는 넋을 읽는다. 게다가 토샤는 넨디에게만 예쁜 옷을 만들어 주었다. 고깔모자에 달린 고리 덕분에 넨디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릴 수 있게 된다. 필통 속 친구들의 부러움은 넨디의 뿌듯함을 돋우어준다.
흥겨움이 찰랑거리던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넨디는 여전히 나무에 매달려 있다. 토샤는 나를 잊은 걸까? 친구들에게 뽐내던 마음은 이미 지루해졌다. 토샤를 기다리던 넨디를 난폭한 손길에 나꿔챈다. 반에서 제일가는 개구쟁이이다. 예쁜 옷은 구겨지고, 멋진 코는 수시로 뭉개지며, 얼룩으로 지저분해져 가던 넨디는 슬픔에 빠진다. 뽐내던 자신이 후회스럽다.
넨디를 찾는 토샤의 알림장을 모른 척하던 개구쟁이는 갑자기 넨디를 돌려준다. 토샤의 작은 친절에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지나버렸지만 넨디는 필통으로 돌아온 것이 너무 기쁘다.
이 작품에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에피소드 중 하나일 뿐이다. 자칫 고루할 수 있는 교훈들은 세밀하고 쉬운 묘사로 온갖 필기구가 즐거움의 척도이던 나이를 복기시킨다. 구시대의 동화인 만큼 만들고 가꾸는 즐거움에 관한 묘사도 빼곡하다. 극 중 어린이들은 찰흙인형뿐 아니라, 냅킨에 수를 놓고, 선인장을 가꾸고, 손수 만든 책갈피와 종이 사슬을 주고받는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압지만큼 오래전 일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즐거움은 형태를 달리해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꼭대기의 별로 빛나는 것은 너무나 즐겁다. 미슬토 없이도 나누는 키스와 흥겨운 술렁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는 흥분을 더한다.
그러나 함께 올려다보는 풍경이야말로 기적의 한 순간이지 않을까?
@출처/
Plastusiowy Pamiętnik, Maria Kownacka, 1936, 일러스트 Zbigniew Rychlicki
Plastusiowy Pamiętnik (Nasza Księgarnia, 1984, 일러스트 Zbigniew Rychlicki)
新しい世界の童話, ネンディのぼうけん (学習研究社, 1968, 번역 우치다 리사코 内田 莉莎子, 일러스트 야마와키 유리코 山脇 百合子)
메르헨 전집 30/55, 넨디의 크리스마스 (동서문화사, 1982, 번역 김계동, 일러스트 야마와키 유리코 山脇 百合子)
@이미지 출처/
http://mojeksiazeczki.blox.pl/2011/10/Plastusiowy-pamietnik.html
https://twitter.com/ninikatu/status/937104941914603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