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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Sep 07. 2020

11. 급식 메뉴를 보고 결석하던 때

유치원을 다닐 적에

 


  나를 학교에 보내는 과정은 나 자신은 물론이고 부모님은 물론 선생님까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다행히 모두를 힘들게 하던 이런 성격은 조금 나이를 먹고 덜해졌지만, 꽤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새로운 환경에 나를 내보내는 것은 커다란 과업이었다. 아직까지도 학생인 입장에서 내가 학교에 다닌 햇수는 내 짧은 인생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긴 시간 중 어떤 순간부터 어떤 구성으로 시작해야 할지 고민스럽지만, 시간이 흐른 순서를 따라 천천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내가 노출된 사회는 유치원이었다. 사실 유치원을 다니던 시기는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다. 그 시기에 유치원에서는 뭘 배웠는지, 나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심지어는 유치원 때 어울리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확실한 것이 있다면 유치원이 아주 지루했다는 것과 그런 유치원에 지독하게 가기 싫어했다는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던 이유도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도 없는데 왜 가야 하느냐"라고 자주 주장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여느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공룡을 가장 좋아했다. 공룡 사전을 보면서 공룡 그림을 따라 그리고 내용을 필사해 나만의 공룡 사전을 만들기도 했고, 고생물학자가 꿈이라고 말하거나, 부모님을 졸라 경상남도 고성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며 하고 싶어 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유치원처럼 관심이 없거나 하기 싫은 일은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내가 유치원에서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자유시간에 메모지를 가져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옮겨 적을 때였다. 공룡만을 좋아하지 않고 과학과 수학에 대해서 폭넓게 호기심을 가지고 좋아했던 나는 다른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혼자서 책을 읽고 알게 된 것을 그렇게 정리해보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때 나와 비슷하게 과학을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는데, 나는 부모님께 "오직 그 아이만이 말이 통한다"라고 이야기했었다. 지금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내 오만함에 내가 놀라겠지만 그때의 나는 단순하고 순수하게, 말 그대로 오직 그 아이만이 내가 원하는 주제로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이 통한다'라고 표현했다. 이 아이는 이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나를 제외하고서는 교육청 영재교육원에 합격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나는 유치원을 빠지기 위해 정말 갖가지 핑계를 붙였을 테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물론이고 부모님마저도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는 핑계는 '오늘 나오는 급식 메뉴가 맛이 없어서'였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최대한 가지 않으려는 나를 잘 구슬리고 설득해서 보내기 위해 어머니께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다. 같이 유치원까지 걸어가고, 다시 걸어오고, 늦게 등원하더라도 토끼풀 사이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잘 달래기도 하셨다. 


  비록 '나'라는 의식이 있었는지조차 불분명했을 유치원 시절이었지만, 이때 보였던 나의 패턴은 이후에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나는 지루하고 할 것 없는 학교를 싫어했고 부모님은 어떻게든 학교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셨다. 어떤 학원에 보내더라도 내가 그 학원과 학원 선생님, 아이들 등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는 갖은 노력을 들여야 했고 어찌하여 내가 적응하더라도 걸핏하면 가지 않으려는 나를 달래셨다. 아마 이 시기 내가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은 영재성과 더불어 미약한 수준의 발달장애를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시의 경험과 생각은 잘 기억나지 않고, 유치원을 다닌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차라리 유치원 대신 집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경험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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