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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Nov 16. 2018

의심이 열어주는 문

알렉산더 테크닉 학교 이야기 


이번 주는 학교의 open week. 학생이 아닌 사람들이 탐험을 오는 주간이다. 조용하게 지나간 open week도 많은데 이번주는 유난히 새로운 사람들이 복작거렸다.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는데 나도 어느덧 벌써 5학기 째. 10학기에서 절반이나 왔다니. 그렇지만 배울 수록 모르겠는 알렉 너란 놈.. 이 생각 저 생각이 많다. 수련 3년을 마치면 알렉 선생이 되어 티칭을 할 수 있어야 할텐데, 딱히 제대로 똑부러지게 알게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으니 자꾸만 걱정과 불안이 번갈아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그렇지만 동시에 한편으론 몸으로 알듯 말듯 감지되는 것들이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함을 느낀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머리 속으로 암만 부정한다 해도 하루 하루 학교에서 보내는 날들이 몸 어딘가에는 쌓이고 있는 것일테다. 머리와 몸의 배움의 감각이 이리도 서로 다른 것이 재밌다. 생각해 보면 나의 몸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자연이 만들어 낸 우주의 일부인데, 몸의 지혜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지. 


며칠 전에는 '의심' 을 주제로 수업을 했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다양하게 해석되고 다양하게 가르쳐진다. 몸으로 시작하여 존재의 감각과 사용에 대해 끝도 없이 우물을 팔 수 있는 힘을 가진 철학론(?)이자 실용기술(?)이기에.. 아주 오랫동안 알렉을 가르쳐 온 선생님들 조차 자신감이 없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고 리쳐드는 말한다. 의심은 나쁜 것일까? 좋은 것일까? 각자 무엇에 대한 의심을 하는지 적다보니 끝도 없다. 둘 씩 짝을 지어 핸즈온(Hands-on : 상대가 몸의 상태를 인지할 수 있도록 손으로 가이드를 주거나, 감각정보를 전달하는 알렉의 기법) 실험을 하라는 숙제. 


세 번의 핸즈온을 진행하는데, 1) 강한 의심의 마음을 품고, 2) 강한 확신에 가득차서, 3) 의심과 확신의 중간 지점에서 진행을 한다. 난 짝꿍이 없어서 리쳐드와 같이 짝이 되었는데, 리쳐드한테 핸즈온을 받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 아주 흥미로웠다. 의심의 마음을 품은 손은, 이 인간이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스스로 전혀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 손을 받으니 무언가 불안해진다. 확신이 가득한 손은 명확하고 분명하지만, 내 몸의 소리에 별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 명확하게 가려고 하지만, 나의 이야기와는 별개의, 그만의 이야기와 속도만을 고집하고 타협할 마음이 없다. 거부감이 올라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심과 확신의 가운데에 있는 손. 신기하게도 분명히 어딘가로 향하긴 하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에게 분명히 공간을 내어주는 손. 혼자 달려가지도 않고, 갈지 말지 주저 앉지도 않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빈 공간. 내가 리쳐드에게 핸즈온을 할 차례가 되어서, 의심과 확신의 중간이 대체 뭔지를 물었다. "의심은 나쁜 게 아니야. 너무 확신에 차서 정해두지도 말고 문을 열어두는 거야. 언제나 작은 의심을 품고,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가보는 거야. 그리고 어디로 가든 결국 모든 건 괜찮을 거라 믿는거야." 


리쳐드에게 세 번의 핸즈온을 했는데, 리쳐드는 셋 다 다 좋았다며 말인지 방구인지 싱긋 웃는다. 내 비누방울 같은 자존감을 잘 아는 웃음이다. 의심은 아무리 떨쳐내려도 떨쳐내기가 어려운 놈인 만큼, 조금의 의심은 언제나 좋다니 맘이 놓인다. 그럼에도 믿음, 은 늘 어렵지만, 리챠드 선생님의 저 해맑은 웃음을 떠올리면 왠지 정말 다 괜찮을 것도 같다. 상담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기억이 난다. 본인의 상담 선생님이 자신에게 해주신 말이라고 하셨다. 현란한 기술이나 대단한 정보가 아니라, 정확히 지금의 "나" 만큼을 줄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이 충분함을 믿으라고. 핸즈온이고 뭐고 다른 건 다 못해도, 진심으로 온전한 나로 존재하고픈 마음, 그리고 온전한 당신으로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강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그거면 되는 것으로 하자. 조금의 의심을 품고. 문을 조금 더 열어 두어본다. 



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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