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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May 09. 2019

#5. 로션 끊기에 실패했다.

초보 지구특공대의 일기 

땅 불 바람 물 마음 




한 인간이 1년에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아니 1년까지 가지 않아도 그냥 내가 한 달 동안 버린 것들을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마어마하다. 내가 사는 작은 빌라 단지에서만도 3일이면 쓰레기 모이는 곳이 절반 넘게 차기 시작하는데, 이 지역, 이 나라, 각국의 모든 쓰레기들이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생각하다 보면 지구가 지금까지 견디고 있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불필요하게 재구매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나 환경오염 물질을 줄여나가는 중이다. 쉽지 않지만 하나씩 줄여나가다 보면 왠지 달라진 생활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그 뿌듯함에 가속도가 붙어 다른 도전을 좀 더 쉽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다.  


꿀은 유리병에 든 것만 사서 먹기 시작했고, 되도록이면 종이팩이나 종이로 포장된 우유와 버터를 사 먹는다. 휘핑크림은 종이팩에 포장된 크림을 사서 만들어 먹고, 사워크림은 집에서 발효시켜 먹는 밀크 키퍼로 대신한다. 김치는 두-세 포기씩 담가 먹고(냉장고가 작다;), 야채와 과일은 웬만하면 낱개로 비닐봉지 없이 사거나, 생분해 비닐에 포장되어 있는 유기농 제품을 사 먹는다. 그래 봤자 가짓수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최근에는 유기농 농장에서 일하는 하우스메이트 편에 매주 필요한 야채를 직원 할인가에 구매하거나, 직접 금요일마다 시내의 유기농 가든에 자원봉사를 나가는 날 밭에서 조금씩 얻어오고 있다. 제철 유기농 야채의 신선함과 싱그러움이란!! 또 비닐 포장되고 보존제가 들어간 빵을 대신하기 위해 직접 굽기 시작한 사워도우나,  유기농 야채로 직접 만들어 먹는 페스토, 음료 마니아지만 거지인 나를 위해 집에서 만들기 시작한 콤부차, 워터 키퍼, 진저 버그 등등.. 쓰레기를 줄이다가 나를 신세계로 이끌어 준 것들도 많다. 




몸에 쓰이는 것 중 제일 먼저 쉽게 줄였던 건 린스다. 여기 미용실 가격이 비싸기도 비싸지만 워낙 게을러 한국에서도 일 년에 한 번 파마를 할까 말까 한 나는 미용실을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머릿결이 크게 상할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린스를 끊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일랜드에 온 후로 바디 세정제는 비누로 대체했다. 비누는 올리브로만 만들어진 가장 저렴하고 심플하고 종이 포장된 올리바라는 비누로 정착. 샴푸까지 끊어보려 몇 번 비누로 머리를 감아 봤지만, 도저히 심하게 빠득빠득 해져서는 머릿결 사이로 손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조만간 식초와 에센스 오일을 섞어 린스 만들기에 도전해 봐야겠다. 사실 샴푸와 비누를 만들어 써보는 것도 고려했으나, 비누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기본 화학품 한 가지가 무조건 플라스틱 통에 담겨 판매된다. 그러면 굳이 배송까지 시켜가며 집에서 만들어 쓸 이유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화장을 완전히 끊으니(비비까지 끊기는 심리적으로 복잡하고 긴 여정이었지만) 그에 따른 세정제까지 자연히 필요가 없어졌고, 많은 플라스틱들이 줄었다. 세수는 비누로 하고, 잔여 화장을 지우기 위한 스킨도 필요 없어졌다. 이제 몸과 관련해서 우리가 구매하는 플라스틱은 로션과 샴푸뿐.. 로션도 오가닉 제품을 쓰긴 하지만 화학품이 여전히 꽤 많이 첨가되어 있다. 학교 친구 올리브가 신박하게도 얼굴에 코코넛 오일만 바르고 다니기에(심지어 참기름도 가끔 바르고 향이 너무 좋다고 한다..) 나도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로션 끊기를 시도해 봤다. 얼굴이 좀 건조해지며 주름이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얼굴에 뭐가 올라오는 건 줄어들었다. 물을 최대한 많이 마시며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었는데, 정원에서 흙을 만지고 일한 지난주 금요일에 고난이 찾아왔다. 마른 흙을 하루 종일 만졌더니 손이 거칠거칠 트기 시작하더니, 특히 설거지할 때 세제가 많이 닿는 손톱 가까운 부분에 살이 마구 일어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에서 키우는 알로에를 잘라서 바르고 꿀 약간을 섞어 팩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에는 남편이 쓰는 알로에 크림과 로션을 다시 집어 들었다. 로션을 바르니 바로 피부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지만, 분명히 뭔가 자연물질이 아닌 것이 몸으로 들어오는 기분도 더욱 분명하게 느껴졌다. 좀 더 나은 대안이 필요하다. 며칠 전 친구 올리브가 캐스터 오일이 꽤나 촉촉(축축..)하고 엄청나게 강력하더라는 새로운 정보와 누군가가 또 시어버터가 그리 좋다 했으니 오일의 종류를 좀 공부해봐야겠다. 


이 밖에도 줄이고 있는 것들이 꽤 많지만, 그럼에도 버려지는 것이 여전히 많다. 간소한 삶, 자연적 삶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 이것을 원할 수 있음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에 버린 것이 결국엔 다 나에게로 돌아오고, 자연으로 더 가까워지는 삶이 결국엔 나를 치유한다는 것을 깨닫는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줄이고 잃어야 해서 괴로운 부분 말고,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더 많은 즐거움들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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