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006. 사랑의 매

매를 한 대도 안 맞고 자란 어른이 있을까?

매 맞기의 달인이었던 난 결단코 그런 어른은 없다고 맹세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기 전의 학교란, 매 순간 매를 맞을까 봐 긴장해야 하는 곳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참 다양한 이유로 맞았다. 아니, 선생님들은 참 다양한 이유로 때렸다. 지금은 학교에서 여러 가지 학습 준비물을 거의 다 준비해주지만 그때는 달랐다. 단소를 안 가져온 날에는 단소로 맞고, 리코더를 안 가져온 날에는 리코더로 맞았다. 리코더와 단소는 불어서 소리를 내는 관악기인데, 내가 잘못을 불고 있었다. 연주해야 하는 악기 대신 맞는 내가 소리를 내는 기이한 장면이었다. 그때는 안 가져온 물건이 그대로 체벌 도구가 되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도 단소가 제일이었다. 때리기 귀찮은 선생님들은 손 들기, 의자 들기, 엎드려뻗쳐, 앉았다 일어서기 등의 체벌을 시켰다. 우리가 잘되라고 혼내시는 거라는데 잘 되고 싶진 않고 그저 맞기 싫어서, 혼나기 싫어서 잘못을 기억하게 됐다. 그런데 그게 사랑의 매라신다.


사랑의 매. 사랑의 매는 뭔가 이상한 표현이다. 하얀 얼룩, 까만 우유처럼.

매를 맞으며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아, 기억난다.

혼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했었나 보다. 눈물 콧물 쏙 빼며 엄청 울었기 때문이다.

양 손바닥을 내밀고 매를 맞을 때 잘 맞으면 팍 팍 소리가 나다가 잘못 맞으면 틱 소리가 나는 빗자루.

맞아봤다면 그 느낌 알지 않는가.


맞다보니 너무 아팠을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엄마가 때리던 매를 잡아버렸다. 처음이었다. 엄마는 하염없이 우셨다. 맞은 건 난데, 내가 엄마를 때린 것처럼 엄마는 계속 울면서 나를 안으셨다. 왜였을까.

아, 기억났다.


울기 시작한 건 우는 엄마를 본 뒤였다는 것을.

날 아프게 했던 것은 매가 아니라 매를 때리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사랑의 매.

아마도 사랑의 매라 불리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고 매에 담긴 부모의 마음을,

사랑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기 때문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픈 매는 부모님의 눈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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