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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명찬 May 11. 2016

뻔한 얘기더라도

어른을 위한 우화

          

평범히 사는 그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어느 무림고수의 손에 귀한 자식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무림고수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기에 그의 원한은 뼈에 사무쳤다. 용서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밤낮으로 분노의 칼을 갈았다. 세월이 흘러 그는 마침내 원수를 물리칠 필살기를 터득했다. 그는 그날로 보따리를 쌌다.



복수를 하러 가는 여정은 힘겨웠다. 도적과 강도떼, 요괴, 사막 바람, 폭풍우 등등,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궁극의 필살기 덕에 본인 뿐 아니라 여러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어느 때는 한 마을 전체를 구하기도 했다. 영화 주인공처럼 죽을 고비에서도 벗어났고, 이겨냈다. 알고 보면 복수가 아직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무림고수의 집에 당도했다. 하지만 무림고수는 없었다. 어린 아들만 남겨놓고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는 허탈함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며칠 밤낮을 미친 사람처럼 저자거리를 헤맸다. 그런 다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곳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손에는 원수 아들의 손이 쥐어져 있었다.



이제 은밀한 복수가 시작됐다. 원수 아들을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자신을 능가할 만큼 잘 가르치고, 잘 먹이고, 충분히 상대가 되고도 남을 때 상대해서 죽인다는 계획이었다. 그의 작전대로 원수 아들은 지혜롭고 늠름하게 잘 자랐다. 동네의 자랑이자 젊은 처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그즈음, 그는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그 사이, 복수라는 것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의 아들이 된 원수 아들은 두 아버지가 저승에서도 흡족해할 만큼 세상을 돕는 의로운 사람으로 훌륭하게 살았다. 그의 본의는 알 길이 없고, 제법 통쾌한 복수였다.



*

부디 기억해 주세요.

복수는 남의 것. 사랑은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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