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아빠
내 아이보다 내가 더 어렸을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다녔던 치과가 있다. 4살차이인 아빠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여의사선생님이자 내 남동생 친구의 엄마.
이제는 나의 아이도 같은 치과에 데리고 다닌다.
그래서 우리가족의 사정을 조금은 많이 아신다
아빠가 암환자라는 것도.
어제 치과에 가서 진료를 보는데 나에게는 관심이 없고 우리 아빠의 안부를 묻느라 바쁘셨다. 감사하게도 많은 걱정과 위로를 해주셨다.
그러다 몇 기인지 물어보셨고
나는 잠깐 망설이게 되었다.
아빠가 몇 기인지 모른다.
부모님이 알려주지 않으셨다. 처음부터.
아빠는 암이 다른 곳에 전이되고 나서야 발견하게 되어서 좋지 않다고만 들었었다.
그래서 몇기인지는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몇 기인지 중요하지 않지 라고 하시며 아빠가 운동도 하고 긍정적인 분이셔서 잘 이겨내실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아빠는 현재 항암제를 중단한 상태다.
안좋았던 신장이 항암제때문에 더 나빠져 신장투석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고 해서 항암제를 중단하게 되었다.
원래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 아빠는 암 진단을 받은 후로 직접 유튜브로 요리방법도 찾아 암에 좋다는 음식을 만들고 믹서기에 갈아 주스도 만들어 드신다. 몇 달 전부터는 요리학원도 다니고 계신다. 운동도 아침,점심,저녁으로 밖에서도,집 안에서도 매일 같은 시간에 열심히 하고 계신다.
그런 아빠의 노력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드시고 계셨던 혈압약,당뇨약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수치가 좋아졌다.
아픈 곳 하나 없는 나보다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지내는 우리 아빠.
분명 아프고 힘들텐데 내색 한번 없이 언제나 괜찮다고만 하는 우리 아빠.
그래서 우리가 자꾸만 아빠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것 같다.
식사 후 씽크대에 식기가 쌓이는 게 싫어서 바로바로 설거지하고, 음식물쓰레기와 분리수거도 양이 얼마나 많든 혼자 정리하고 버리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보고 직접 재료 손질부터 요리까지 하고 세탁도 도맡아 하는 우리 아빠.
물론 몸이 아프니 가끔 아빠가 짜증을 낼 때도 있다. 그러면 짜증이나거나 화가 나는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아빠가 항암제를 바꿔야 해서 입원할 때도 있고
검사하러 갈 때도 있고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도 있고 그럴때마다 나는 병원에 혼자 덩그러니 입원해 있을 우리 아빠 생각에 눈물이 난다.
내가 고맙다고만 말해도 언제나 낯간지러워하며 당연한건데 뭐가 고맙냐고 하는 우리 아빠.
아빠가 입원할 때마다 나는 아빠가 낯간지러워 할 문자를 한통씩 보낸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아빠가 검사할 때 무서워할 것 같아서
[아빠 혹시 검사하는게 힘들면 그냥 집에 와도 돼.]
[아빠 내가 상상도 못할 만큼 몸도 아프고 힘들텐데도 여전히, 아니 아프기 전보다도 더 열심히 운동하고 집안일도 하고 건강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삶의 의지가 큰 아빠를 보면서 나는 진짜 너무너무 많이 배우고 있어...
아빠 나도 아빠처럼 꼭 열심히 살게.
나는 아빠가 너무 존경스러워.
사랑해 아프지마 아빠. 잘자.]
죽음은 무섭고 두렵다.
그렇지만 태어난 모든 것은 죽기 마련이고
그 죽음이 언제가 될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암환자인 아빠보다도 교통사고로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너무 슬퍼하지만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지 않으면 밑도 끝도 없는 슬픔이 몰려오기만 할테니까.
대신 순간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싶어서 휴대폰에 자동통화녹음도 해놓았다.
우리 아빠 목소리, 우리 가족들 목소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울 땐 언제든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시시콜콜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던 우리를
회상하며 그때의 평범한 행복 끝자락을 잠시나마 매만질 수 있도록.
말도 안되는 욕심이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지만 않는다면
언제나 내 마음 속에서는 살아 숨쉬겠지만.
눈으로 보고
냄새도 맡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
그런 시간이 무한했으면 하는...
이혼하고 힘들어했던 나에게 아빠가 보여줬던
라틴어 carpe diem 처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작고 큰 행복들을
순간순간 감사해하고 행복해하며 살아가야지.
나의 삶의 본보기같은 우리 아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