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선택한 오히려 느린 삶
나는 손이 빠른 편이다. 반복 작업이나 집안일은 후다닥 훽- 하고 끝내버린다. 손에 딱딱 떨어지는 맛이 재밌기도 하고 시간을 아껴 좀 더 쉬려고 하는 선택이다. 특히 쌓여있는 설거지, 빨래 개기, 요리에 대해 그랬다.
잽싸게 할 일들을 끝내고 나면 개운할 때도 있지만 분주함의 여파로 피곤해질 때도 있다. 빠르게 하려고 하니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배터리가 순식간에 닳아버리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를 꽤 오래 기다리는 나를 발견했다. "어, 나 쫌 기다리는데?" 여유가 넘친다. 테니스장을 구경하는 바다, 멀리 가서 앉아있는 바다, 다시 일어나서 걸어 올 바다에게는 정해진 시간이란 게 없다. 그가 하고자 하는 타이밍에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종종 집안일을 해치우다 지쳐버린 밤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래서 얼마나 더 쉰다고. 뭐하며 쉰다고.'
바다가 잠 들고나서 아주 느린 손길로 카레를 만들었다. 삭삭삭 벗기던 감자 껍질을 스윽스윽. 탁탁탁탁 썰어내던 당근을 토각토각토각. 훽훽 저었던 수프를 느릿느릿. 습관처럼 빨라지는 손놀림을 붙잡으며. 마치 바다를 기다릴 때처럼 콧노래 부르며 설거지도 했다.
과정에 분주함이 없으니 요리다운 요리를 하는 기분이었다. 들이는 시간만큼 정성이 흐른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한 그릇을 뚝딱.
일, 육아, 사랑, 쉼. 어쩌면 해결하고 싶었던 분주함은 맡게 된 역할의 개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속도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안일은 사랑을 싣고.
거기에도 사랑을 담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