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시 맞겠지
"내가 바다 봐줄 테니까 둘이 바람이라도 쐬고 와~집에만 있으면 힘들어."
어머님께서 주신 기회! 남편과 데이트 나가기 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청바지 입기를 시도했다. 청바지를 워낙 좋아해서 임신 후에도 다시 입었으면 했다. 아끼는 마음처럼 차곡차곡 쌓아 둔 청바지를 잠깐 쳐다보다가 그나마 허리가 넉넉했던 두벌을 꺼냈다.
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발을 넣어 바지를 끌어올리는데 역시 허벅지에서 딱 걸려 올라갈 기미가 없다. 허탈해. 골반이 벌어져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기대하다니. 아직 운동도 못하고, 회복될 시간도 아니었는데. 하는 수 없이 임신 때 입었던 바지를 편안하게 올려 입고 나갔다.
산욕기 5주 차, 골반은 벌어져 있고 무릎과 손목, 손가락 관절 불편함도 여전하다. 잠이 부족하니 몸을 더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에너지를 더 쓰면 더 피곤해질게 뻔해서 몸을 사렸다. 스트레칭만 겨우 하고 틈 날 때마다 잠을 잤다. 환자의 느낌이 남아있달까.
항상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조급한 마음이 문제다.
오늘 멀리서 온 친구를 배웅하며 아쉬운 마음에 집 앞에 나갔다. 친구가 택시를 타고 떠났고, 눈앞에는 보란 듯이 장관이 펼쳐져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어마어마한 초록의 물결이 내 마음도 흔들었다.
”오늘은 산책을 해야겠다! “
한 발짝만 나서면 마실 수 있는 칠보산의 싱그러운 공기. 오래된 아파트의 특권, 잎이 무성한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잔뜩 누릴 수 있었는데. 몇 걸음 걷지 않고 자연의 기운을 누리며 몸이 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몸이 굳어있던 게 아니라 마음이 굳어있던 거였다.
그놈의 청바지는 언제쯤 맞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다시 입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편 말대로 바지야 다시 사면된다는 마음으로 잠깐 잊어보기로 했다.
통이 넉넉한 바지가 유행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바지 타령 그만하고 이제 슬슬 몸을 움직여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맞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