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나는 프랑스 여행을 갈망했다. 파리는 물론이고 프랑스 곳곳을 구경해보고 싶어서 도시 버킷리스트를 쭉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리스트 중에서 반 고흐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 아를,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없었다. 내가 고흐 그림을 좋아하지 않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미술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어떤 화가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고민도 없이 고흐라고 대답할 것이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밝고 따뜻한 색감이 내 마음까지 비춰주는지 그 앞에 서면 온기가 느껴진다. 구불구불한 붓 터치를 보면 내 마음도 그림 결을 따라서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고흐를 좋아한다. 하지만 고흐가 활동했던 도시의 여행 후기를 보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자들이 찍어온 사진에 담긴 마을 모습과 고흐 그림에 담긴 풍경이 비슷한 듯 많이 달랐다. 분명 같은 장면이지만 그림으로 보는 게 훨씬 예쁘고 아름다웠다. 막상 현장에 가서 그림보다 덜한 풍경을 보면 환상이 깨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를이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일부러 갈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런 반면에 꼭 가보고 싶은 프랑스 화가 마을이 있었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이다. 모네는 살아생전에 화가로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많은 작품이 고가에 판매되었고, 그는 멋진 2층 집에 넓은 마당을 가꾸며 살 수 있었다. 마당에 그는 꽃의 정원과 물의 정원을 만들었다. 꽃의 정원에서는 지금도 수십 가지 꽃을 만나볼 수 있다. 색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던 모네는 꽃밭을 만들 때부터 꽃의 색감과 높낮이, 꽃이 피는 계절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눈에 보기에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정원 같지만, 사실은 그의 깊은 고민과 완벽한 계획의 결과였다. 그렇게 꾸며진 그의 정원은 사진으로만 봐도 천국 같아 보였다.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마치 성지처럼 다가온 장소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 때 지베르니에 꼭 가보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파리 근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자니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나는 소그룹 한인 일일투어를 알아봤다. 다행히 원하는 날짜에 지베르니에 가는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투어 코스는 지베르니에만 들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 다 둘러볼 수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지베르니, 베르사유 궁전 투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나는 의도치 않게 반 고흐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방문하게 됐다.
별 기대 없이 방문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발을 내딛은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고흐의 그림에서 봤던 교회를 지나서 언덕으로 몇 걸음 올라가자 드넓은 밀밭이 펼쳐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탁 트인 광경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6월의 밀밭에는 푸른 바람이 일렁거렸다. 밀밭을 따라 잠시 걷다가 고흐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에 도착했다. 고흐는 그와 한평생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를 위로하고 응원했다던 동생 테오와 나란히 묻혀 쉬고 있었다. 고흐의 슬픈 영혼을 대변하듯 이 날따라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고흐의 묘지에 들렸다가 마을로 내려오던 중, 나는 돌담가에 핀 꽃에 눈길이 갔다. 초록 줄기에 둥글고 커다란 하얀 꽃 여러 송이가 피어있었다. 탐스럽고 아름다워 보이는 꽃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하고 외롭게 생을 마감했던 고흐의 인생 스토리가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순간이었어서 그랬나 보다. 그 꽃의 이름이 궁금했지만, 개인 투어가 아니어서 내 뜻대로 시간을 쓸 수 없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핸드폰 카메라로 후다닥 꽃 사진만 한 장 남겨왔다.
투어 차량에 탑승하자마자 기사님은 서둘러 지베르니 모네의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지베르니의 집 앞 정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았다. 정원에 한가득 꽃이 피어있는데 그 규모와 가짓수가 엄청났다. 한 시간 남짓 모네의 정원에서 꽃 향기에 취해 시간을 보내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은 씁쓸했다. 자꾸만 고흐 마을에서 이름도 모른 채 그냥 지나쳤던 꽃에게 마음이 쓰였다. 어쩌면 상반된 두 미술가의 인생에 내 기분이 이상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후대에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두 미술가, 모네와 고흐이다. 그러나 살아생전 두 사람의 인생은 참 달랐다. 그런데 난 두 미술가가 각각 말년에 보낸 마을을 반나절 동안 둘러보고 있다니, 촉박하게 진행되는 나의 여행 일정이 원망스러웠다.
후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것이 큰 복이겠지만, 살아생전에 나의 존재와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죽은 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이 무슨 소용일까 싶고, 인생이 참 허무하다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고흐 마을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그 마을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고, 찬란했지만 쓸쓸했던 그의 인생에 마음이 헛헛하다 못해 아려왔던 것 같다. 자살했다는 이유로 마을 교회에서 장례식이 진행되지 못하고, 그가 생을 거두기 전 머물렀던 작은 여인숙 1층 식당에서 장례식이 치뤄졌다는 이야기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여행은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끝내 이 꽃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던 중, 이 꽃과 똑같은 모양의 핑크색 꽃을 보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핸드폰 잠금 화면을 풀고 꽃 검색을 해봤다. “내가 오늘은 너의 이름을 꼭 알아볼게.” 요 며칠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속으로 꽃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 꽃의 이름은 ‘접시꽃’이었다. 막상 이름을 알고 나니 언젠가 도종완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를 들어본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느 계절에 볼 수 있었는지 그동안 관심이 없었다. 여태껏 살면서 한 번도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던 접시꽃이다. 그런데 이 꽃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는지, 며칠 후 나는 신라시대 문인 최치원의 시에서 또 접시꽃을 만날 수 있었다.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최치원 선집, <새벽에 홀로 깨어>를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기로 했는데 그중 하나의 시가 ‘접시꽃’이었다.
최치원의 <접시꽃>
적막한 황무지 한 모퉁이에
다복하게 꽃피어 가지 휘었네.
매화비 맞아 향기 그치고
보리바람결에 그림자 비스듬하네.
수레 탄 이 뉘라서 보아줄까?
벌과 나비 떼만 날아든다네.
천한 땅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리니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것 슬퍼할 만하군.
접시꽃, 매화비, 보리 바람. 아마도 접시꽃은 아주 오래전부터 6월 이맘때가 되면 곳곳에 피는 꽃이었나보다. 6월의 정취가 가득 담긴 아름다운 문장에는 멀리 당나라 유학 시절, 이국 땅에서 외로이 보내던 최치원의 쓸쓸한 마음이 느껴진다. 최치원은 접시꽃이 다복하게 피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외따로운 자신의 처지를 왜 접시꽃에 비유했을까? 아무 말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꽃의 가치를 남들이 몰라주는 게 서운했을까? 프랑스 여행 중 들었던 고흐의 인생 이야기까지 오버랩되며 내 머릿 속에는 생각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서 독서 모임 중 이 시에 대해 멤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접시꽃과 무궁화를 착각하곤 한다는 것이다. 독서모임 멤버 중 한 명은 접시꽃을 보며 아이에게 우리나라 꽃, 무궁화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러고 얼마 후 다시 생각해보니 무궁화는 나뭇가지에 피는데, 파랗고 기다란 줄기에 나란히 줄지어 피는 접시꽃의 모습이 무궁화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날은 중학생 아이들이 접시꽃 앞에서 ‘무궁화’를 가지고 삼행시를 짓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 학생들도 접시꽃을 무궁화와 착각했나 보다.
꽃만 떼어놓고 언뜻 보면 접시꽃과 무궁화가 참 닮기도 했다. 둘 다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떤 꽃은 한 나라의 국화로 지정되어 온 국민이 알아준다. 반면에 어떤 꽃은 사람들이 이름도 알지 못 하고, 심지어 다른 꽃과 착각하기까지 한다. 살다 보면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일어나기도 한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은 대다수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싶다. 때로는 뛰어난 재능이 있고 충분히 노력했지만 약간의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경우도 있지 않았나 싶다. 마치 고흐의 인생처럼….
후대에, 또는 시간이 많이 흐르고 유명세를 탄 뒤에 누군가의 가치를 인정해주기보다는 당장 내 주변의 귀한 존재를 알아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상대방의 이름을 알아주고, 그 사람의 작은 노력도 귀하게 여겨야겠다. 곁에 있는 사람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를 살리는 큰 힘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접시꽃, 네 이름은 내가 평생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