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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진 Jul 08. 2024

그 손에 돌았던 따뜻한 피를


 몹시 궁금하면서도 문비는 물어볼 수 없었다. 생모와 함께였던 단 일주일. 그 시간 동안 생모가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심했을까 봐서,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을까 봐서, 볼 때마다 유전적인 결함만을 상기하며 절망했을까 봐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절망이 아니었을까?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 것이.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만 그런 생각이 질긴 잡풀처럼 무성하게 자라났다. 그렇게 우거지고 뒤엉킨 풀숲으로 머릿속이 뒤숭숭했다. 


 스님이 주는 감기약을 한 번 더 먹고 문비는 그만 쉬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가 쓰는 방으로 건너갔다. 문비는 방문을 살짝 열어둔 채 무릎을 세우고 바깥을 향해 앉았다. 


 눈은 송이가 조금 가늘어지고 기세가 약해지기는 했으나 꾸준히 내리고 있었다. 암자에서 새어나가는 불빛이 닿는 곳은 푸른 기가 서린 순백이었고 먼 산과 하늘은 칠흑이었다. 흑과 백 사이로 어린 새가 잃어버린 솜털 같은 눈이 희끗희끗 낙하했다. 


 스님과 공양주 보살에게 듣기로 이설은 자주적이고 활동적이며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봉긋하게 솟기 시작한 배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선언처럼 힘주어 여러 번 말했다던가. 


 잘 키울 거라고. 나를 엄마로 선택해준 이 생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결과적으로 이건 어디까지나 아이에게 유전적인 결함이 있으리라는 선고를 받기 전의 다짐이었겠지만. 


 한 번 들은 것은 어지간히 긴 내용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암기하는 명석함을 이설이 가졌었다고도 스님과 공양주 보살은 입을 모았다. 그리고 두 노인은 주거니 받거니 이설에 대한 소소한 기억을 불러냈고, 문비는 저녁 내내 귀 기울여 들었다. 


 지금 문비는 홀로 앉아 이설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찬찬히 되짚고 있다. 


 이전의 문비에게 생모 이설은 자신이 엄마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천명하는 누군가에 지나지 않았었다. 문비의 삶에서 이설은 납작하고 생명력 없는 종이 인형 같고, 겉도는 설화 같았다. 


 그랬었는데. 


 언젠가 들었던 동화 인어공주 낭독 녹음본의 목소리, 주민등록증에서 본 사진, 미완성으로 남은 아기용 뜨개옷, 스님과 공양주 보살의 온기 어린 반추……. 거기에 시나브로 조응한 문비의 감정이 더해지면서 이설은 입체적이고 생기 어린 존재로 변모하고 있었다. 


 다만 문비는 혼돈스러웠다. 문비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이 명료해지기를 원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생모가 자신에게 끝내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롯해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방 안 공기가 싸늘해져 어깨가 선득한 것을 느낀 문비가 방문을 닫았다. 이불을 몸에 감고 핸드폰을 꺼내 저녁 무렵에 받은 영상 메시지를 열었다. 


 오래된 다리에 하르르하르르 눈이 쏟아지고 깨금이가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영상이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천방지축 강아지로 되돌아간 듯 장난치고 재롱부리는 깨금을 보며 은성과 라한이 웃고 있을 터였다. 


 여기 저기 뛰어다니던 깨금이가 다리 저쪽에 선 외등을 향해 뛰었다. 외등이 영상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반짝 하고 등에 불이 켜지고 주변이 연한 온색으로 밝아졌다. 기막힌 우연에 은성의 목소리가 와아 하고 감탄했다. 


 외등의 불빛에 물든 눈발 속에서 깨금을 사이에 둔 은성과 라한이 손을 흔드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영상과 함께 온 문자 메시지에는 ‘지금 당신도 아름다운 눈을 보고 있기를, 어디에 있든 따스하고 환한 빛의 곁이기를, 그리고 당신에게 단 하나의 결핍이 있다면 그게 나이기를.’ 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지된 화면을 문비는 손끝으로 가만히 어루만졌다. 불 켜진 외등이 등대 같았다. 어쩌면 누군가의 웃음기 가득한 맑은 눈이. 


 다음날 오전은 발목이 푹푹 빠지고도 남게 쌓인 눈을 치우는 일로 암자의 세 사람이 다함께 바빴다. 아침에 그친 눈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지만 하늘은 몰려드는 구름으로 칙칙했다.  눈은 그리 오래지 않아 또 내릴 것이었다. 


 “이번처럼 며칠에 걸쳐 눈이 오기로 되어 있을 때는 가급적 자주 마당과 지붕의 눈을 치워 주어야 한단다.” 

 공양주 보살이 강조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붕이 파손되거나 마당을 점령한 다락같은 눈 때문에 곤란해지거든.”


 정오가 가까워서야 암자의 지붕들과 마당 전체가 말끔해졌다. 점심을 먹고 나니 눈이 다시 오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추워졌다 싶더니만 과연 자잘한 가루눈이었다. 


 “혹시…… 깊은 상심 때문이었을까요?”


 뜬금없는 문비의 질문에 스님과 공양주 보살을 서로 시선을 마주치더니 똑같이 문비를 건너다보았다. 


 “무슨 얘기니, 아가?”


 모감주나무의 까만 열매를 꿰어 염주를 만들던 스님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제…… 그분…….”


 저를 낳아준 엄마, 라는 말이 안 나와서 문비는 더듬거렸다. 


 “설이? 설이가 아팠던 거?”


 “네.”


 “글쎄다.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구나.”


 스님의 대답을 들은 문비의 시선이 공양주 보살에게로 향했다. 양은밥상에 팥을 펴놓고 고르던 공양주 보살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문비는 수긍한다는 뜻으로 잘게 머리를 주억거리고는 자신이 쓰는 방으로 건너갔다. 그러고는 이설이 남겨 놓은 점자책을 꺼냈다. 


 자세히 보니 정식 출판본이 아니라 개인이 제작한 책이었다. 세계 명작 시리즈에 속해 있는 소설 두 권과, 시집 한 권, 벨칸토 발성법에 관한 책 한 권이었다. 


 문비는 소설 한 권을 펼쳤다. 점자를 잘 아는 문비였지만 손을 사용한 촉독은 해본 적이 없었다.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과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대치했다. 문비는 감았던 눈을 뜨고 책을 던져 버렸다. 


 방바닥에 떨어진 책을 서글픈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문비가 그것을 도로 집어 들었다. 무릎 위에 펴고 손을 얹었다. 오래 전 그 점자 위를 지나갔을 손을, 그 손에 돌던 따뜻한 피를, 그 손이 지녔던 체온을, 문비는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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