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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l 17. 2021

팔월


 내가 살던 마을이 있었다.


 팔월이 오기 전에 생각할 것들이 많았다. 무더위가 한층 심해질수록 내면은 점점 건조해졌고, 다시 폭우가 쏟아지면 내면은 물속처럼 아득해졌다. 여름의 날씨처럼 마음도 오락가락했다. 내가 살던 마을을 찾은 날도 그랬다. 폭염, 소나기, 먹구름, 사이사이 햇살이 비추던 날이었다.  


 엄마를 떠나보내던 팔월의 날씨도 그랬다. 모든 것이 변하는 시간에 맞서 여전히 건재한 산이 눈앞에 뚜렷이 서 있다. 까마득히 오랜 날, 여름처럼 싱싱하고 푸르던 시절, 굵은소금 같이 거칠고 쓴 시련이 어린 숨을 죽이고, 기진맥진한 육체와 영혼에 쓰라린 상처를 남겼던 그날의 일을 산은 기억하고 있을까. 엄마의 뼛가루를 뿌리고 돌아오던, 폭우도 함께 울었던 그날을.


 마을버스에서 내려 내가 살았던 마을을 더듬어 올라갔다.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곳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거나 옛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바뀐 일대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은 산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몇십 년 전 내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바로 뒤가 산이었다. 산이었지만 정식으로 출입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래서 산의 둘레는 늘 철조망으로 쳐져 있었다. 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입구는 한참을 걸어 돌아가야 있었다.


 기억은 일탈이라는 형태를 띠었을 때 조금 더 많이 뇌리 속에 박히는지 모르겠다. 호기심이 한창 많았던 어린 시절, 자주 친구와 함께 철조망 사이를 뚫고 산으로 올라갔다. 무지와 혈기는 어떤 면에서 많이 닮았다. 무작정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도 무엇에 홀린 듯 계속 올라갔다. 그러다 옷에 흙을 잔뜩 묻혀 돌아오는 날은 엄마에게 꾸중을 듣곤 했다.


 그렇게 산에 오르는 게 익숙해질 무렵 우리는 우리의 보물을 산으로 가져가 땅을 파서 묻곤 했다. 나는 주로 종이 인형들과 옷이 담긴 작은 종이 상자를, 친구들은 딱지나 유리구슬 같은 것을 묻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평소보다 더 높이 올라갔고, 마침 시야가 툭 트이는 지점까지 왔을 때 아래 펼쳐진 그림 같은 집들을 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사는 곳이었다.


 처음 생명이 주어지듯,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각자의 몫으로 부여받는 순간 상대적으로 길고 짧음을 느끼며, 불가사의한 시간의 의미를 깨닫는다. 저 산을 보는 순간, 이 마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물리적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과거시간만이 내 안에 침투하여 나를 미소 짓게 하고 또 가슴 아프게 했다.


 산을 바라보며, 많은 시간들이 저 산속에 흡수되고 또 앞으로 계속될 거라 생각했다. 산이 존재하는 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사연을 품은 채 의연하고 장대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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