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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25. 2018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회풍자 소설로서 「유토피아」는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거기엔 저자의 진솔한 생각이나 주장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곳곳에 현실에 대한 풍자와 역설이 가득해 함축된 의미나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해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책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없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향이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사람들은 줄곧 꿈꾸어 왔다는 것이 매우 역설적이다. 16세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유명해지면서 유토피아는 이상향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 반대의 의미로 디스토피아, 과학의 이상향인 테크노피아 등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 말들 속에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유토피아가 황당무계하고 공허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설의 의미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유토피아는 현실 비판과 성찰의 준거가 될 수 있다. 유토피아는 현실사회를 비추어 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바람직한 사회라는 거울 앞에서 현실의 부조리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이상 사회를 제시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논리구조를 따르고 있다. 책은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클로저 운동으로 많은 농민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일자리를 얻지 못 해 빈민으로 몰락하는 상황을 묘사해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다. 제 2권에서는 유토피아라는 섬에서의 이상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의 순서로 보면 당시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그 다음에 대안으로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어는 제2권을 먼저 쓴 다음에 나중에 제1권을 완성했다. 모어는 이상 사회라는 거울에 비추어 영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유토피아」에서 거울 역할을 해야 하는 유토피아가 이상적이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책에는 어느 정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곤 있지만 모순도 많다. 유토피아는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집을 짓고, 같은 일을 하며 사는 곳이다. 게다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하면서 노예와 용병을 인정하고 그것을 적극 활용하는 제국주의적 태도가 나타난다. 이처럼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내용의 유토피아는 이상세계로서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토머스 모어라는 작가는 당시 유머와 풍자의 대가였다. 이에 걸맞게 <유토피아>는 풍자와 역설이 넘친다. 어느 대목에선 신랄하게 비판하다가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연관된 민감한 부분에선 분명하게 나타내지 않고 모호한 풍자와 역설로 빠져 나간다.

「유토피아」는 가공인물을 등장시켜 사회를 비판한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그리스어 어원의 이름들을 붙여준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름을 통해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허구적인 가공의 장소와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작가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면서 빠져나갈 구실을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어는 당시 인클로저 운동의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뿐만 아니라 왕들의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행동들, 즉 침략 전쟁을 일삼는 습관과 교묘하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방식을 풍자하고 있다. 결국 <유토피아>는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저자 자신도 안전한 방법으로 사회를 비판, 풍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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