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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04. 2018

혼의 슬픔이 젖어들던,  한강의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를 읽게 된 것은 맨부커 상을 받은 한강의  또다른 작품 「채식주의자」를 읽고,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적한 대로 이 책을 읽고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의 생각과 행동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왜 그토록 육식을 거부하고 혐오했는지, 사람의 손과 팔 다리가 어떻게 타인을 무자비하게 해칠 수 있는지, 그녀가 왜 자꾸 가슴을 드러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한 동안 멍한 상태로 느낌을 정리할 수 없었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이 너무 강렬하고 생생해 읽는 내내 경악과 전율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은 후 감상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소년이 온다.」가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한지도 반년이 지났고, 내가 책을 읽은 지도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5월이 성큼 다가오는 소릴 들으면서,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거리를 걸으면서 왠지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고 헛헛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애처로이 때를 기다리며 슬픔에 젖어 있던 나의 활자들을 마침내 풀어놓았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18부터 열흘 간 발생했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전개과정에서 겪은 참상과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치유되지 않은 아픈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서술자의 다양한 시점 변화를 통해 무자비하고 잔혹한 힘에 무기력하게 당했던 인물의 극단적 고통, 공포, 아픔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아수라장이 된 도시의 처참한 상황을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1장 ‘어린 새’에서 화자가 부르는 ‘너’는 동호이다. 까까머리에 이제 막 변성기가 시작된 15살 소년, 어린 그가 왜? 수많은 시신이 즐비해 있는 곳에서 시신처리에 관한 일을 하고 있을까, 보통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화자는 마치 불가사의한 일을 이해시키듯 ‘너’의 생각, 행동 하나하나를  세세하고 꼼꼼하게 서술하고 있다. ‘너’에 대한 표현이 너무 애틋하고 측은해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고 먹먹하게 만든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정미누나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가 엉겁결에 시위대의 맨 앞에서 행진하게 된다. 그때 총소리가 나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동호는 정대의 손을 놓쳤고, 얼마쯤 가서 돌아보니 군인들의 총에 쓰러진 정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충격으로 동호는 현실을 부정하며 정대가 죽었다는 사실을 마치 타인에게 들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결국 자신만 살고 그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정대의 시신을 찾아 여기저기 전전하다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 합동분향소로 오게 되고 그곳에서 일손을 돕는다.

동호는 하얀 무명천으로 덮인 시신들의 신상을 기록하고 유가족에게 확인시키는 일을 한다. 시취를 견디면서 어린 ‘너’는 시신 머리맡 흔들리는 촛불을 보고 죽은 이의 영혼이 어린 새가 되어 날아간다고 느낀다.


2장에 ‘검은 숨’은 정대가 혼이 되어 일인칭 시점으로 말한다. 군용트럭에 실린 수많은 육체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운반될 때 정대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본다. 피를 너무 쏟아 습자지처럼 얇고 투명한 자신의 얼굴이 낯설기만 하다. 빛이 없는 어둑한 공터에 아무렇게 버려져 쌓인 시신들 사이로 가냘프고 부드러운 무엇들이 어른어른 서로의 그림자를 어루만지는 장면, 소리 없이 아우성대는 영혼들의 넋두리,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어지러웠다. 

이야기가 순전히 소설 속 허구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특별한 해, 유난히 잔인했던 군부 독재자와 집단 최면에 걸린 사람들에 의해 자행됐다는 비극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3장 ‘일곱개의 뺨’에서 다시 돌아온 화자는 담담히 그녀, 은숙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때 현장에서 시민군과 함께 동분서주 닥치는 대로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돕던 수피아여고 푸른 하복을 입었던 여고생은 그 후 작은 출판사에 근무하게 된다. 당시 서슬이 퍼런 독재정권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체제적인 표현의 자유를 일절 불허했다 . 그녀가 다니는 출판사가 당시 불온서적이라 일컫는 책을 번역해 출판하려할 때 검열 받는 과정에서 권력의 부역자는 번역자의 행방을 대라며 뺨 일곱 대를 때린다.


그녀는 맞은 뺨 한 대 한 대를 잊기로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재의 신체적 고통이 사라질수록 과거의 상처는 더 선명하게 부각되며 고통이 배가된다. 그녀는 동호를 비롯해 무고하게 죽어간 많은 영혼들을 생각하며 살아있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먹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육식을 거부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 ‘채식주의자’의 핵심을 관통하는 식이거부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정신은 병들고 이미 죽었는데 육체는 살기위해 먹어야 하는 모순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보고 광주에서 일어난 끔찍한 참상은 영원히 끝낼 수 없는 비극이라는 절망감엄습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결코 그 전의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자조가, 현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정지된 어둠의 시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밀려 왔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다른 이의 말을 통해 김진수의 영혼이 어떻게 파괴되어 갔는지, 우울과 고통의 그늘 속에서 어떻게 삶을 마감했는지 밝혀진다.

고문은 한 인간을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파멸시킨다. 자신의 육체를 혐오하게 만들고, 동물적 본능을 자극하여 비이성적이고 비굴한 정신적 타락을 부추긴다. 육체의 약점을 이용해 고통의 극단을 경험하게 하고, 최소의 음식만을 제공하여 서로 짐승처럼 다투게 들어서 결국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권력에 굴복하게 한다. 그 일을 겪은 후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우지만,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상처에 김진수는 자살하고 만다.


마지막 장 ‘꽃핀 쪽으로’를 읽으면서 마음으로 울었다. 모든 부모의 심정은 똑같을 것이다. 동호를 잃고 넋이 나간 어머니의 절규, 넋두리는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탐욕스런 어른들, 권력의 이데올로기, 빗나간 역사의 비극으로 인해 희생된 해맑은 우리의 아들, 딸들을 생각한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라졌다. 다시 살려낼 수 없는 존귀한 생명들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책의 에필로그까지 다 읽고 나니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혼신을 다했음이 느껴졌다. 광주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수많은 자료를 찾고 현장 답사하 증언자를 찾아 녹취를 하는 등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자세하고 생생히 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의 냘픈 모습에서  그처럼 격렬한 감정의 압박을  견낼  힘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불가사의 했다. 그녀의 강인한 정신의 단면을 보게 된다.


하지안 소설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역사의 현장을 형상화하여 참혹한 상처의 흔을 찾고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며, 슬픔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학은 상처 받은 이들에게 위로 뿐 아니라 용기와 희망도 줄 수 있어야 한다. 인물의 아프고 절망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고통을 극복하고 치유해 나가는 모습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심란했다.


불행한 역사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일 수 있는 이들도 용서하고 따뜻하게 보듬어서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정신의 성숙함도 필요하지 않을까?  타인과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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