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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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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Sep 20. 2021

오늘의 커피


연애세포 같은 건 없어진 지 한참 지난 줄 알았는데 반짝이는 마음이 생겼다. 마흔에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으로 두근거릴 줄 몰랐다. 가사와 육아에 찌든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듯, 비슷한 듯 지루하게 반복되던 나의 일상에 설렘이 찾아왔다. 기대하지 않던 평범한 어느 여름날 우연히 내게 찾아온 이 두근거림은 2~30대의 풋풋하고 예쁘기만 하던 연애와 다른 결인 건 분명하다.




긴 시간 동안 홀로 살면서 길들여진 각자의 삶의 방식이 익숙한, 나이 든 사람의 연애는 단순하지가 않다. 어릴 때보다 정교해진 안목으로 상대방을 향한 기준이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 같은 게 생겼지만, 이런 마음도 곧 사라질 연기처럼 보장되어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할 뿐이다. 나의 설렘의 크기가 상대방의 그것과 같지 않음도 알고 있다. 설렘과 삶은 별개다.


급하지만 티 나지 않게, 괜찮은 척, 어른인 척, 성인의 연애를 흉내 내는 중이다. 뭘 모르던 어린 시절이라면 용감하고 즉흥적이고 열정적으로 사랑했을 텐데 막연하게 행복한 결말을 꿈꾸기엔 이미 알고 있는 게 많다. 우리는 서로 살아내야 할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다. 내겐 빚이 있고, 우린 서로의 삶을 지켜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다.


그래서  애틋하고  아쉽고  서운하다. 감사하지만, 밉다.  사람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행복하지만, 자신이 없다. 내가 그를 만큼 감당할  있을까.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지. 속상한 마음도 허전함도 배가 되었다.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직   없다.


마흔쯤 되면 최화정 언니나 이소라 언니처럼 뭐든 다 아는 노련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나의 서툶은 나아진 게 없다. 여전히 장거리는 힘겹고,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고, 확인받고 싶다. 흔들거리는 철부지 감성은 나이 든다고 해서 단단해질 수 없는 건가 보다.




한 달에 한번, 분기에 한번 마실까 말까 하던 맥주를 요즘엔 자주 마신다. 맥주 한 캔이면 해결할 수 없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이 사라진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고민의 무게를 잊는다. 덕분에 오전의 무기력이 더해졌고 커피 없인 깨울 수 없다. 이젠 빈 속에 커피를 들이켜도 가슴이 벌렁거리지 않는다. 대신 속이 쓰리고 피부 탄력이 줄었고, 몸이 무거워지고 있다. 특히 배, 배가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만, 카페인과 알코올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요즘 나를 채우는 건 커피, 맥주, 소화제, 약간의 감정 기복이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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