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세포 같은 건 없어진 지 한참 지난 줄 알았는데 반짝이는 마음이 생겼다. 마흔에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으로 두근거릴 줄 몰랐다. 가사와 육아에 찌든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듯, 비슷한 듯 지루하게 반복되던 나의 일상에 설렘이 찾아왔다. 기대하지 않던 평범한 어느 여름날 우연히 내게 찾아온 이 두근거림은 2~30대의 풋풋하고 예쁘기만 하던 연애와 다른 결인 건 분명하다.
긴 시간 동안 홀로 살면서 길들여진 각자의 삶의 방식이 익숙한, 나이 든 사람의 연애는 단순하지가 않다. 어릴 때보다 정교해진 안목으로 상대방을 향한 기준이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 같은 게 생겼지만, 이런 마음도 곧 사라질 연기처럼 보장되어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할 뿐이다. 나의 설렘의 크기가 상대방의 그것과 같지 않음도 알고 있다. 설렘과 삶은 별개다.
급하지만 티 나지 않게, 괜찮은 척, 어른인 척, 성인의 연애를 흉내 내는 중이다. 뭘 모르던 어린 시절이라면 용감하고 즉흥적이고 열정적으로 사랑했을 텐데 막연하게 행복한 결말을 꿈꾸기엔 이미 알고 있는 게 많다. 우리는 서로 살아내야 할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다. 내겐 빚이 있고, 우린 서로의 삶을 지켜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더 아쉽고 더 서운하다. 감사하지만, 밉다. 그 사람 덕분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행복하지만, 자신이 없다. 내가 그를 얼만큼 감당할 수 있을까.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지. 속상한 마음도 허전함도 배가 되었다.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마흔쯤 되면 최화정 언니나 이소라 언니처럼 뭐든 다 아는 노련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나의 서툶은 나아진 게 없다. 여전히 장거리는 힘겹고,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고, 확인받고 싶다. 흔들거리는 철부지 감성은 나이 든다고 해서 단단해질 수 없는 건가 보다.
한 달에 한번, 분기에 한번 마실까 말까 하던 맥주를 요즘엔 자주 마신다. 맥주 한 캔이면 해결할 수 없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이 사라진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고민의 무게를 잊는다. 덕분에 오전의 무기력이 더해졌고 커피 없인 깨울 수 없다. 이젠 빈 속에 커피를 들이켜도 가슴이 벌렁거리지 않는다. 대신 속이 쓰리고 피부 탄력이 줄었고, 몸이 무거워지고 있다. 특히 배, 배가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만, 카페인과 알코올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요즘 나를 채우는 건 커피, 맥주, 소화제, 약간의 감정 기복이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