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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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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23. 2022

아무 것도 아닌, 그저 바라보기

커피 일기

오늘의 향은 샌달 우드.

연기와 향이 주는 고요함을 경험한 후 무언가에 끌리듯 충동구매를 했고, 그중 샌달 우드 향을 꺼냈다. 10여분 동안 고요한 공간에 퍼지는 매캐한 탄내를 맡으며 타들어가는 인센스를 바라보면 아무런 생각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 그저 멍한 체로 바라보게 될 뿐이다.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 그리고 현실과의 괴리감 사이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은 그저 생각에 그칠 뿐이고, 생각을 더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자꾸 이곳에 머물러있다.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나도 그렇게 우직하게 이곳에 있다.


멍청한 건지 순박한 건지 끈기인지 모를 그런 꾸준함으로 제자리걸음을 걷다가 인센스콘을 알게 된 후 단 10분 동안은 생각하기를 멈출 수 있게 되었다.  만질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연기와 향은 지금 여기, 이 시간에 집중할 매개체가 되었다. 생각 따위 잠시 내려놓고, 연기가 흐르는 모습을 그저 바라본다. 인센스 콘 전부가 하얀 재로 변하기 전까지 은은한 연기를 꽃피운다. 작은 불씨까지 모두 태우고난 후에야 비로소 연기 뿜어내기를 멈춘다. 하나의 콘은 나에게 생각을 내려놓은 시간을 제공하고 약간의 재로 탈바꿈한다. 향은 내게 멈출 시간을 제공한다.


창문을 열지 않으면 머릿속이 지끈거릴 만큼 코가 매울 만큼 알 수 없는 기운이 가득 차지만, 이내 창문을 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산뜻한 바깥공기와 조화를 이룬다.


당장 해결된  아무것도 없지만, 당장  해결해야  문제도 아니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이대로 놓아둔다. 모든  해결하며  수는 없다.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포기, 적당한 포기와 내려놓기도 지금 내게 필요한 무엇이 아니었을까.


향을 피우기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하며 보낸 이 시간 전부가 아름답고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사라져 버린 연기 때문일까, 은은하게 남은 향기 덕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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