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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같이함께

딸과 함께 독서토론

함께 읽기 첫 번째, 클로버

by 스타티스

올해 중학교 2학년 큰아이는 또래에 비해 스마트폰을 늦게 접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가서 사주려고 했는데, 4학년 담임선생님께서 2학기 학부모 상담에서 말씀하셨다.

"어머니, 다른 아이들과 교류를 위해서 스마트폰이 필요합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건 어머님 고집입니다."

그때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책 읽는 환경에만 조성하는데 집중했지 또래들과 소통에서 소외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이후부터는 어떤 걸 선택할 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책 읽기와 관련해서는 핸드폰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하긴 했다. 스마트폰이 있기 전까지는 심심하니까 책을 읽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때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놀이터 또는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눈높이 센터에 들러 공부하고,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오곤 했다. 연말이 되면 책을 많이 빌린 세 집을 선정해서 상품권을 주는 행사를 했다. 우리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아파트 알림판에서 우리 이름을 발견하고 기뻐하곤 했다.


또 큰아이를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 공부를 하지 않았었다. 당시 조기교육에 회의감을 느꼈었던 터라, 아이를 놀게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부부가 둘 다 같은 생각이라 아이가 한글을 자연스럽게 깨치게 두었다. 마침 유치원도 글자공부보다 자연체험, 다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곳이라 산책을 공부보다 더 많이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책을 읽어주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글자를 알게 된 이후로 각자 읽기 시작했다. 아이가 고학년 이후로 함께 읽은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이후로 내가 바빠져서 정신이 없기도 했었다.


이제야 여유가 생겨서 아이와 함께 읽기를 신청했다.


11월 5일 토요일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Zoom으로 10명이 모였다. 독서토론 리더 선생님 한 분, 네 엄마와 다섯 아이였다. 나에겐 다소 늦은 시간이라 내가 잘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시작하고 10분 즈음 지나자, 피곤함을 정말 잊어버릴 만큼 즐거움이 올라왔다.





주제 책은 제15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클로버'였다. 큰아이는 책 읽는데 시간이 다소 걸리는 편이다. 초등학교 4,5, 6학년 동안 국어시간을 온 책 읽기로 했었다. 한 권을 정해서 꼭꼭 씹어 넘기는 읽기였다.


중학생이 되어 방학숙제도 느리게 천천히 하는 편이었다. 나는 급하게 뭔가를 휘몰아치듯 해치우는 편이라 아이가 불편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개학 하루 전날까지 반도 못 읽은 적 있다. 나는 아이에게 화를 냈고, 아이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 이후로 아이와 책과 관련한 뭔가를 강요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1년이 지나니 뭔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아닌가?

'저렇게 책을 안 읽어도 될까?'


중2니까 책보다는 스마트폰, 카카오톡보다는 인스타 그림 DM으로 또래와 소통하느라 바빴다.


나중에 후회할 거 같아서 아이에게 슬그머니 이렇게 있다고 블로그에 올라온 엄마와 함께하는 독서토론 포스팅을 공유했더니 흔쾌히 같이 하자고 했다.


오랜만에 청소년 소설을 읽으니, 얼마나 재미있던지 2시간도 되지 않아 다 읽었다. 아이는 며칠 째 붙잡고 있었다. 속으로 답답했다. 은근 잔소리했는데, 아이는 알아서 한다고 했다. 그렇게 투닥거리다 토요일 오후 9시가 되었다.


두근두근 아이와 함께 하는 첫 독서토론이었다.

첫 질문은 '별 다섯 개 만점에 몇 점을 줄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 모녀는 성향상 둘 다 외향형이라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도 자유롭게 말하는 편이었다. 참가 어머님 중 한 분이 먼저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음 내가 발표를 했다. 이후 큰 딸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깜짝 놀랐다.


'그동안 내 성향을 아이에게 강요했었구나. 아이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는데.'


아이는 내 생각보다 더 깊었다.

책 토론 논제는 총 7개였고, 순서에 따라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진행하는 선생님께서 자연스럽게 중간에 이어 주시고 해서 1시간 37분이 어떻지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11시가 다되어 마치기 직전에 한 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세 어머님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내 아이가 이렇게 깊게 생각하는 줄 몰랐어요."

나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도 또 참여하고 싶어요."

"오늘 독서토론에 별점을 매긴다면 별 다섯 개 만점에 열개를 주고 싶어요."

참여했던 중학생 J님의 말이었다.


독서토론을 마치고 바로 다음 일정이 잡혔다. 중학생들의 기말고사 기간을 고려하여 12월 24일 밤 9시 30분으로 결정되었고, 벌써 다음 책도 선정되었다.


다음 책을 바로 주문했다. 이번에는 사계절출판사 수상작이다. 진행 선생님께서 창비와 사계절출판사 선정작들의 차이점도 중간 살짝 설명해주셨는데, 다음 책도 기대된다.

새로운 사람들과 책을 통해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내 아이는 내가 잘 안다고 착각했었다.

온라인 독서토론으로 만난 내 아이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아이였다.


하긴 한 집에 있다고 얼굴 보고한 게 아니라 각자 책상에서 따로 접속했으니, 온라인 세상의 내 아이는 다른 사람이었지.


깊어가는 토요일 밤

혼자보다 같이 가 재미있는 이유를 또 하나 찾게 되었다.

보물찾기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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