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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Mar 08. 2023

만남

시절인연

    퇴근시간 5분 전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나오는 길에

"어머! 맞네!"하고 가까이 다가와서 나를 와락 안았다. 팀장님이셨다. 작년 7월에 퇴사한 사무실에서 내가 제일 존경하던 팀장님이었다. 둘째 아들이 일곱 살이었다. 직장 어린이집에서 제일 늦게까지 남아있는 걸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그때 첫 만남도 화장실이었는데, 바로 "몇 살이야?"라고 먼저 말을 걸어준 분이었다.


친근감이 온몸에서 뿜뿜 나오는 이미지일 뿐 아니라 일처리도 잘하시고, 자신의 팀원을 챙기는 분이었다. 우리 옆 팀이었는데, 큰 건이 있을 때는 점심시간에 따로 모여서 팀워크를 돈독하게 다지고, 중요한 순간에는 부하직원을 실드 쳐주는 그런 분. 평소에 상상하던 상사의 이미지였다. 안타깝게도 우리 옆팀이었다.


퇴사할 때, 긴 카톡을 드렸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때는 이 회사에 다시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6개월이 지났다. 이곳에 학생상담센터가 있는데 수련상담원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 고민했다. 주변 동기들과 의논을 했다. '나는 왜 다시 이곳으로 가고 싶은가?' 


공간과 사람이 좋았다. 특히 나를 특별히 챙겨준 두 분이 계신데, 두 분 다 옆 팀이었다. 한 분은 그만두기 전에 1시간 산책하면서 내 마음을 돌리려고 애써주셨고, 한 분은 진심으로 마음이 닿았다고 느껴졌다. 특히 화장실에서 만나거나 지나가면서 말을 걸어줄 때였다. 오히려 동료들은 거의 떠오르지 않고, 이 두 분만 가슴속 깊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다시 만난 게 아닌가? 

사실 건물이 다르면 거의 볼 일이 없는데, 이 팀장님께서 2월 1일 자로 발령이 나서 상담실 바로 옆 사무실로 오신 거다. 2월 1일에 화장실에서 언뜻 나를 봤는데, 인사를 안 하더란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 홈페이지에서 직원명단을 검색해도 없어서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러다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고.


그것도 손잡고 건물 밖 베란다고 데리고 가셔서 10분 정도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꼭 함께 밥을 먹자고 말이다. 나만 그분을 그렇게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도 나를 인상적으로 느끼고 있었구나 싶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단어가 맞긴 한가보다. 상담실은 정각에 문을 닫아야 하기에 아쉽게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몰랐고, 나를 이렇게 반겨주실 줄 몰랐다.


언제 점심 데이트 할 수 있나?


2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있다. 4년 전에는 지금 아파트 옆 동에 살았었다. 그때 아래층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지냈다. 이사 나올 때 인사들 못 드리고 나와서 문 앞에 딸기 한 상자를 두고 이사를 왔다. 그 다음날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이 아파트에 오래 살았지만 이사 나갈 때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이라고 꼭 밥을 사야겠다고 연락이 오셨다. 당시 논문을 쓴다고 정신이 없어서 같이 먹자고 막연하게 약속만 하고 연락이 자연스레 뜸해졌다. 


우리는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도 많았다. 할머니도 아침에 강가에서 걷기 운동을 하시고, 당시 나는 공부하기 위해서 매일 운동을 했었다. 그렇게 길에서 할머니와 자주 만났다. 논문이 끝나고 조금 여유 있을 때 길 가다 마주쳤는데, 할머니께서 꼭 밥을 사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돼지갈빗집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며칠 전에도 언제 점심 데이트 할 수 있는지 문자를 보내주셨다. 아드님은 한 분 있으신데 서울에 있어서 일 년에 몇 번 본다고 하셨다. 내가 나이가 들면 저분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 분이었다. 기타 가방을 메고 다니실 때도 있고, 수영하러 가실 때도 있고 한동안 안 보실 때는 여행을 갔다 오실 때였다.


사실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는 이웃사촌이다.  

사는 공간은 참 신기하다.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이렇게 연결감을 느낄 수도 있구나.



그때 00가 있어 좋았어.


둘째가 돌 무렵에 이 동네로 이사 왔다. 연고가 없는 곳이었다. 시댁과 친정에서 적절히 먼 곳에서 살고 싶어서 정한 곳이다. 그렇게 8년째 살고 있다. 학부모 대상으로 하는 부모교육을 들으러 갔다가 NVC를 알게 되었다. 우리 연습모임은 생긴 지 5년째이다. 수요일 저녁 8:30-10:30은 고정스케줄이다. 우리 연습모임 하는 날.


요즘은 '수치심 권하는 사회' 함께 읽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20대, 30대, 40대, 50대 어떤 인연들이 있었나 회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언니들은 연습모임을 5년째 함께하고 있기에 끈끈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한 분씩 이야기했다. "나의 지금은 이 연습모임이 있어서 좋아. 그대들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나는 2년 쉬었다 다시 왔기에 그분들의 연결감을 따라갈 수는 없다. 앞으로는 계속 이 모임을 참여하고 싶다. 이 속에 있으면 돌봄 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친밀감을 느낀다. 말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이 모임은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바꾸어놓았다. 


여기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여성이다.

가족이 아닌, 그렇다고 회사도 아닌, 느슨한 연대감이 있는 인연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

마치 편의점에서 뜨끈한 군고구마를 샀을 때 느껴지는 그 온도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달콤함에 기대치도 있고, 따뜻해서 좋기도 하다.


이런 인연들이 쌓여서

과거와 다른 내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과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믿을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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