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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슈슈 Oct 07. 2018

선-생-님- 저,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

나도.

-

다른 반 5학년 아이가 입원을 했다.

놀다가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아이에게 편지를 써주기로 했다.



-

"5학년 오빠가 팔이 부러졌어요. 어서 빨리 나아서 건강하게 돌아오라고 응원의 편지를 써주어요."

일곱 살 아이들은 어쩌다 팔이 부러졌는지 묻다,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걱정하다, 자신의 병원 무용담을 꺼내며 우쭐해했다. "내가 그때 병원에 가서 일주일을..."


"자자, 편지를 씁시다요."

"근데 뭐라고 써요?"

"음.. 뭐.. 오빠, 팔이 부러져서 많이 아프죠? 빨리 돌아와서 함께 공부해요. 뭐 이렇게 쓰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사각사각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교재를 둘러본 뒤, 아이들의 편지를 건너다보았다. 아뿔싸.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글씨체로 같은 내용을 쓰고 있었다. 내가 불러준 예시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 오빠, 팔이 부러져서 많이 아프죠? 빨리 돌아와서 함께 공부.... -


"얘, 얘들아! 내용이 너무 똑같으면 좀 웃기지 않을까??? 이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써요~~~"

부지런히 움직이는 고사리 손을 멈추기 위해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아이들은 싱긋 웃더니만 정말로 손을 멈췄다. 

"무슨 말을 써야 될지 모르겠어요."


다시 고사리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기 위해 나는 다급히 외쳤다.

"그, 그, 그림을 그려도 좋아요~!"

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색연필을 꺼냈다.



-

잠시 뒤, 소근소근 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 사랑에 빠질 것 같아."

'뭐라고??? 얼굴도 모르는 오빠에게 위문편지를 쓰다가 사랑에 빠진 거야???'

놀라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더니 예쁘고 뽀얀 여자아이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지, 지금 뭐, 뭐라고 했어요???"

아이는 꼭 자기처럼 뽀얀 웃음을 가득 지으며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대답했다.


"선-생-님- 저,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

아이는 자기가 쓰던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에는 색색깔의 하트가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아! 하트를 자꾸 그리니 마음에 사랑이 생겨날 것 같다는 거였구나.

"어, 그, 그래. 하트가 너무 예쁘다 하.. 하하.."

나는 멋쩍게 웃었다.


-

하얀 종이에 들쭉날쭉한 크기로 그려진 글씨들, 색색깔의 조그만 하트들,

편지를 숨기는 수줍음, 편지 내용을 몰래 전하는 소곤거림, 다 쓴 편지를 쑥_ 내미는 씩씩함, 

그 사이사이를 채운 웃음소리들.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서

"얘-들-아- 선생님, 사랑에 빠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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