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리라 믿었던 것들
우울증에 걸린 후,
우울은 바람처럼 언젠가는 지나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힘든 시기일 뿐이라고,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생각하려 애썼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알게 됐다.
우울은 오히려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나를 지나치는 감정이 아니라,
내 안에 머무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나는 알고 있다.
우울증은 불치병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치료할 수 있다고,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그 말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정말로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나아지지 않는 나를 매일 바라본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침이면 일어나는 게 두려워졌고,
밤이면 내일이 오는 게 버거워졌다.
작은 기쁨 하나에도 괜히 마음을 열었다가,
조금의 상처에 금세 다시 닫아버리기를 반복했다.
행복은 멀리서 손짓했지만,
내 손은 항상 허공을 쥐고 있었다.
희망은 때때로 찾아오곤 했다.
"곧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더 힘내자."
하지만 그 말들은,
언젠가부터 나를 위로하는 대신 나를 더 깊게 찔러왔다.
희망을 품을 때마다,
잡히지 않는 행복을 바라볼 때마다,
점점 초라해지는 나를 마주해야만 했다.
우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조금 나아진 듯하면 다시 깊어졌고,
조금 웃을 수 있을 것 같으면 다시 무너졌다.
나는 그것을, 단순히 불운이라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저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도 알고 있다.
우울증은 불치병이 아니라는 것을.
다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데는 매일 작은 전쟁이 필요하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