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일까 여행일까

가을 초입의 단상

by 윤사강

며칠 째 잠을 설치고 있다. 허리가 아파서, 서럽게 우는 꿈을 꿔서. 이유는 다양하다. 홀로 잠에서 깬 새벽이면 수직으로 낙하하는 빗소리를 듣는다. 건조하고 가벼운 공기의 무게. 바스락거리는 이불. 불면으로 한참을 고생하던 시절부터 새벽은 늘 똑같았다. 뻐끔뻐끔. 금붕어라도 된 냥 가만히 숨을 쉬어보았다. 입안이 혀로 가득 차는 것을 느끼면서. 가득 찬다는 표현보다 조금 더 가득 차오르는 듯한 그런 느낌. 어느 아이돌의 가사를 빌리자면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한다지. 왜 가을의 초입에서 자꾸 한 여름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지 알 수 없다.


그 해의 여름에는 어느 유명한 정치인이 죽었고 뉴스에서는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라며 떠들어댔다. 매년 가장 더운 여름을 맞이하고 기록적인 폭염은 반복되는데 왜 항상 기록적인 폭염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언어의 세계는 참 알 수가 없다. 도시는 시끄럽고 이렇게 복잡한 곳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시를 쓴다. 언어는 죽지 않는다. 시로 쓰려다가 실패한 이 문장들도 이렇게 재활용이 되는 걸 보니 말이다.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동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아이스크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다. 병동에서 갓 퇴원을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툭하면 아이스크림을 밥 대신 먹고는 했다. 차갑고 단 것은 마치 위로 같았다. 병동에서 S가 종종 나누어 주던 화이트 초콜릿으로 뒤덮인 아이스크림을 나는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그는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해서 저녁이면 그의 소설을 필사하곤 했다. S의 글은 어느새 다자이 오사무를 닮아 있었다. 나는 그가 빌려준 <만년>을 다 읽지 못했다. 다 읽을 새도 없이 그가 퇴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디선가 여전히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필사하고 있을까. 여행 같던 몇 개월이었다. 실로 여행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다신 돌아갈 수 없으며 두고두고 추억이 되었으니 말이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한 나는 폐쇄병동에 입원했던 경험 따위를 여행에 비유해야만 한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어차피 여행을 갈구하는 타입도 아니었으니. 다만 어디 내어놓기 좋은 경험담이 아닐 뿐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그때의 기억으로 두고두고 살게 된다던데. 병동의 기억을 파먹으며 여름을 내내 보내는 나도 제법 여행자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흔히들 삶을 여행에 비유한다. 그만큼 비슷하고 분리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내겐 늘 여행이 주는 기억보다 삶이 주는 기억이 더 인상적이었다. 엄마 아빠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슬프게도 가족들끼리 유럽에 갔던 기억보다 병동에 입원했던 기억을 더 자주 돌려본다. 삶은 긴 여행이라지. 이건 여행의 일부에 불과한 걸까. 과연 우리는 삶일까 여행일까.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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