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슬픔은 어디에 있습니까
폐쇄병동에 있던 시절 친애하던 J와는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마른 몸에 하얀 피부, 검은 머리. 게다가 비슷한 체형을 가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매 혹은 쌍둥이냐는 질문을 받고는 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보다도 닮은 건 우울이었다. 그녀의 슬픔은 내 것과 많이도 닮아 있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가 닮은 건 외모가 아니라 우리가 짓는 표정일지도 모른다고.
나의 외모는 유난히 아빠를 닮았다. 특히 흰 피부와 코 끝의 모양이. 아빠는 간혹 혼자 캔맥주 내지는 막걸리, 가끔은 소주를 마셨다. 아무도 없는 식탁에 홀로 앉아 술을 홀짝거리는 뒷모습은 마치 고단한 슬픔 같았다. 그럴 때면 그 중력을 나눠가질 자신이 없어 방문을 조용히 닫고는 했다. 내 방에서는 술잔을 기울이는 뒷모습만 보이기 때문에 나는 아빠가 어떤 표정으로 술을 마시는지 영영 모른다. 물론 언젠간 알게 될 수도 있겠지. 그 슬픔의 표정을.
늘 궁금했다. 엄마 아빠가 짓는 슬픔의 표정도 나의 것과 닮았을지.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나의 슬픔과는 다르게 그들의 슬픔은 그리 자주 볼 수 없었으니까. 아마 필사적인 숨김이었겠지. 그래서 늘 알고 싶었다. 엄마 아빠는 어떻게 울음을 삼켜내는지. 또 그런 밤들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성인이 된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줄곧 목구멍이 뻐근한 날들이 많았다. 아니, 스무 살이 넘자 본격적으로 울음을 참아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젠 스물보단 서른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물기를 자주 쏟으며 산다. 나는 내 감정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어린 어른인데 어떻게 엄마와 아빠는 내년 나의 이 나이에 결혼을 해서 나를 낳고 살았던 걸까. 같은 나이로 비교해도 엄마 아빠가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슬픔도 유난히 잘 참을 수 있게 된 걸까. 나와 동생을 키워오면서 무수했을 고단한 순간들은 다 어떻게 견뎌낸 걸까.
내게는 슬픔의 집약체 같은 시절이 있다. 몇 해전의 여름, J와 함께하던 시절. 내 모든 슬픔은 그곳에 있고 또 그곳에서부터 왔다. 엄마 아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을까. 모든 것이 비롯되었고 또 모든 것이 흘러 들어가는. 슬픔의 고향 같은 곳.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삶 전체가 슬픔의 고향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부모가 되어도 어쩌면 알 수 없을지도 모를 일. 당신의 슬픔은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