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내면 아이와 나의 아들은 함께 자라고 있다

상처받은 나의 내면아이와 아들을 동시에 양육하는 엄마

by 이도연 꽃노을



나의 내면 아이의 상처가 치유될수록
나와 나의 아이와의 관계도 회복되었다.





나의 내면아이와 아들을 동시에 양육하는 엄마



내겐 이제 양육해야 할 아이가 한 명 더 생겼다. 나의 10살 난 아들과 내 무의식 속에 살고 있는 5살의 나의 내면아이이다. 예민한 기질의 아들 때문에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나의 일상에 봄이 왔다. 번아웃과 깊은 우울에 빠져서 살던 나를 구한 것은 ' 나 '였다.


정답은 가장 가까이 내 무의식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나의 곁을 지켰다. 단지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인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결혼을 하고 내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끝까지 인지하지 못했을 일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점점 내 마음엔 알지 못할 우울이 쌓였다. 나는 그것이 산 후 우울증 일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키운 지 10년이 다 되도록 나는 더 답답하고 수령에 빠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들과 관계를 나빠지고 있었다. 번아웃까지 와서 힘든 몸과 정신을 부여잡고 내가 손을 내민 곳은 심리 상담 센터였다. 처음엔 효과가 있을까? 무엇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는지 조차 몰랐다. 특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심리 상담은 곤역 그 자체였다.


유난히 어렸을 적부터 수요일을 좋아하던 나는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있는 심리 치료 시간 때문에 수요일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1회기당 십만 원씩이나 내면서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싫은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난의 감정과 성격 그리고 나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었기에 몇 달을 견뎠다. 몇 달이 지나자 나도 모르게 어딘가 모르게 내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늘 불에 달군 돌덩이 하나는 짚어 삼키고 있던 것 같은 나는 점점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한 마법처럼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었다. 그 시절 그 공간에 홀려 남겨둔 나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더 늦기 전에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 상담 선생님과 존브레드 쇼의 책한 권으로 나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시점쯤 드디어 나는 아직 5살에 머물러 있는 나의 내면 아이와 재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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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것이 나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



나는 나를 무척이나 아낀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자존심도 셌고 누구보다 앞서 가고 싶었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그 삶 속에는 내가 없었다. 내 삶 속에 주인공이 내가 없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언제부터 잘 못 되었는지 어떻게 나를 다시 되찾아야 하는지 막막할 때 나는 전문가의 힘을 빌렸다. 그리고 나의 우울과 무기력의 근원은 나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늘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던 내게 평온이 찾아오고 아들과의 사이도 좋아졌다.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엄마의 모습보다는 아이를 마치 나의 경쟁 상태처럼 생각하고 아이와 나를 비교했었다. 내 무의식 속에 아주 옛날부터 살아보던 나의 내면 아이는 그렇게 자신을 찾아와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나의 내면의 신호를 읽기 못했다.



나의 내면 아이와의 재회는 쉽지 않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는 그 아이를 찾아냈고 화가 많이 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나의 내면 아이도 이제 나와 같이 호흡한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과 나의 내면 아이를 동시에 키우고 있다. 양육할 아이가 한 명이 더 늘어났음에도 나는 덜 힘들어졌다. 내면의 나의 욕구와 채워지지 않은 결핍들을 하나씩 채워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듣지 못했던 위로와 공감의 말도 썩 많이 늘었다. 아들도 엄마의 변화가 느껴지나 보다. 아들의 예민은 가라앉았고 나와 아들은 공동의 취미를 갖게 되었다. 바로 달팽이를 키운 것이다. 나는 내가 그렇게 달팽이 집사가 될 줄 몰랐다. 그리고 더더욱 알지 못했던 것은 내가 그렇게 달팽이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나는 매일 저녁 아들과 달멍을 한다. 아들과의 대화도 늘고 아들과 함께 좋아하는 게 생겼다는 것이 기쁘다. 아들과 나의 달팽이 키우기 취미는 취미 이상이다. 아들을 다시 마주하고 아들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고 나는 다시 아들에게 엄마로서 아들에게 필요한 사랑과 공감과 인정을 주기 시작했다.



나의 내면 아이와 다시 조우를 하고 나는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뿐인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나는 오늘도 아들의 과자를 먹는다. 마치 내 안에 5살 아이가 그때 먹지 못했던 과제를 먹듯이. 나는 오늘 나를 위해 선물을 샀다. 매일 아들과 남편을 위해서 돈을 쓰던 짠순이는 내가 좋아하는 트롤비즈의 골드 참을 샀다. 70만 원이라는 거금이 나갔지만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그 골드 참은 내 목에 걸려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골드 참을 보며 나는 다시 내가 빛남을 느꼈다. 잃어버린 나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나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었음을 느낀다. 정말 어느 육아 서의 제목처럼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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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이 버겁고 내가 나를 모르는 것 같을 때
나는 당신의 내면 아이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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