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들의 비교가 멈추었다.

상처받은 나의 내면 아이와 화해하고 생긴 일들

by 이도연 꽃노을
나는 아들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아들과 나의 어린 시절을 매일 비교하고 있었다.





난 했는데 넌 왜 안 되지?



10살 아들이 등교 전 밥을 먹고 있다. 다 먹은 후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아들은 다시 등교준비를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매일 보면서 매일 똑같은 레퍼토리로 잔소리를 한다.


" 호림아,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워야지. "


" 엄마가 해줘. 귀찮아 "


" 몇 살인데 엄마가 대신해 줘. 벌써 10살인데. 엄마는 5살 때부터 엄마가 차려먹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했는걸? "


............


" 5살보다 2배나 많은 나이인데 아직도 그걸 못해? 해야지. "


하기 귀찮다는 아이의 손에 아이가 먹은 식기들을 들게 하고 싱크대까지 데리고 가서 물에 한 번 헹궈서 설거지 통에 넣게 한다.


" 엄마는 맨날 엄마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더라. "


아들은 내 손에 이끌려 식기를 치운 게 못 마땅한지 볼맨 소리를 한다.


" 설거지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네가 먹은 것은 네가 넣으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

뭔가 듣기 싫은 듯 아들은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니다.

양말을 신는 아들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 입은 대빨 나와있다.


" 아침부터 어른한테 무슨 예의 없는 행동이야. 엄마니까 식사하고 나서 예절을 알려주는 거지 "


아들은 더 듣기 싫은지 책가방을 매고 실내화 주머니를 들을 때 나는 아직 잔소리가 남아 있다는 듯 뒤돌아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의 뒤통수에 대고 외친다.


" 그렇게 게으르고 하기 싫으면 밥도 먹지 마. 밥은 왜 먹니? "


씩씩 거리다 내 방에 들어오 감정들이 조금씩 수 그러 든다.


그러다 문득 내 마음에도 '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한테 너무 심했나? 학교 갔다 오면 말해도 될 것을...'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밀려온다.


그런 저런 생각이 들다가도 ' 아니지, 아이를 가르쳐야지. 버릇이 없거나 예의 없이 크면 안 되니까.'


anna-niezabitowska-z0puO1Tn_w8-unsplash.jpg







엄마의 변화



나는 매일 매 순간 나도 모르게 아들과 나의 어렸을 때를 비교하고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30년이 훨씬 넘은 옛날인데 굳이 현재를 살고 있는 아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 난 했는데, 왜 얘는 안 하지? '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내 아이의 성장 속도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나의 모습과 아이의 모습을 본 아들 친구 엄마들은 애들 다 그런다면서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그럴 때 내가 빠지지 않고 하는 한 마디가 있다.


"요즘 애들은 너무 버릇없이 커는 같다고. 눈치도 없다니까? 자기 거 자기가 해야지. 누굴 시켜... "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모두 집에 안 계셨기에 내가 다 챙겨야 했다. 내가 혼자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특수한 상황에 놓였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아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나와 아들과 비교를 한다.

심리 상담을 하고 내면 아이를 만나고 나서부터 그런 생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 호림이는 예전에 내가 살던 시대에 사는 아이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호림이에겐 엄마 아빠가 잘 보살 피고 있다. 혼자서 밥을 차려먹고 혼자서 설거지를 하고 혼자서 집을 지키는 환경에서 자라지 않는 아들이 나의 어린 시절과 같은 행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불쑥불쑥 나의 상처받은 나의 5살 내면아이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아들을 질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등교해야 하는 아이를 굳이 먹은 식기들을 손으로 들고 물로 헹구게 시킨 것이 미안해졌다. ' 자기가 우려 나와서 하는 일도 아니고 엄마 어렸을 시절과 비교하는 엄마의 잔소리에 못 이겨 바쁜 등교시간에 꾸중만 잔뜩 들은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나 스스로 깨닫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아이에게 나의 어렸을 때 시대 배경이나 가정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라떼' 시전을 펼치며 아이와 대립했던 것이다. 물론 아이는 교육을 받고 예절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자꾸 지금 살고 있지도 않은 엄마의 내면 아이와 비교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라디 못하고 상처받은 나의 내면 아이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알려 줄 수 있는 방법은 많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를 양육해 온 지난 10년이 왜 힘들었는지 이해가 됐다. 아이 또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식사 시간이 돌아오고 남편과 나와 아들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식사를 했다. 아이는 또 잊은 듯 식사만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나는 잠시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오롯이 느껴본다. 그리고 그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이 다 지나고 난 뒤, 아들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 호림아, 호림이가 먹은 식기가 아직 남아있네. 호림이가 싱크대에 갔다 넣어주면 엄마가 설거지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아들은 장난감은 가지고 놀다가 나를 힐 끗 본다. 그리고 일어나서 그릇들을 싱크대에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물로 한 번은 헹구지 않고 대충 설거지 통에 넣는다. 다시 불러 세워서 물로 한번 헹궈야 설거지할 때 그릇이 잘 닦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는다.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장난감을 다 가지고 놀았는지 아들은 어느새 설거지를 하는 내 옆에 서서 설거지를 하는 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아들이 먹은 밥공길을 씻었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 내가 물로 헹구고 잘 담가 놓지 않아서 잘 안 닦이나 봐. 다음번에는 물로 잘 헹궈야지. "


긴 잔소리로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들과 매일 조금씩 사이가 좋아지고 있다.



annie-spratt-ja_hJ4uG-JU-unsplash.jpg




자녀와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면
내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