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년 만의 임신
드디어 임신
우여곡절 끝에 공황장애를 치료하고 단약을 하고 결혼 6년 만에 기다리던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 요란하게 하던 중 공황장애를 한 차례 겪고 난 후라 임신이 되고 8주가 다되어서야 임신사실을 확인했다. 한 1년 동안은 베란 테스터기도 사용하지 않았고 생리를 하지 않던 첫 달에도 스트레스 때문에 좀 늦어지나 보다 하고 임신 테스터기를 해보지 않았다. 워낙 실패를 많이 겪었던 터라 내가 만들어 놓은 희망고문에 낚이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산책과 반신욕 정도는 루틴이 되어 있었지만 예전의 아이방을 만들던 호들갑은 온데간데없었다. 두 달째 생리가 없자 어느 정도 기대를 했지만 일이 일비 하기 싫어서 임신테스터기를 사고 남편한테는 말하지 않고 나 혼자 테스트를 해보았다. 소변에 닿자마자 선명하게 두줄이 나왔다. 너무 빨리 반응해서 나는 임신테스터기의 오류인가 의심스러웠다. 네이버 임신 출산 육아 카페에서 아침 첫 소변이 임테기 할 때 정확하더라는 말이 생각나서 다음 날까지 기다렸다가 첫 소면으로 테스터기를 또 해보았다. 남편과 나는 너무 얼떨떨하고 기뻤다. 역시 임신은 맘을 편히 갖고 맘을 내려놓았을 때 생긴다는 선배 맘들의 말들이 맞았다.
쌀집 체중계와 수동 혈압계가 있는 미국의 개인 산부인과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임신 8주 정도는 되어야 첫 진료를 해 준다면서 몇 주 정도 생리를 하지 않았냐며 간호사가 여러 차례 확인을 하고 예약을 잡아주었다. 남편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코리아 타운 근처 외곽에 있는 H 산부인과로 향했다. H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한국 이민자이셨고 경력이 오래되어서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인들 사이에서 꽤 평판이 좋은 산부인과였다. 그래서 난 임신을 첫 준비하던 3년 전부터 그 산부인과를 찜해놓고 임신만 되기를 기다렸다.
병원입구는 우리나라처럼 자동 문도 아니고 예약한 사람만 벨을 눌러서 확인을 하고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2층 소아과 맞은편에 위치한 산부인과에 들어서니 미소가 환한 중년의 간호사가 나를 맞아 주셨다. 말하는 억양에서 영어 발음이 많이 묻어 나왔지만 한국말을 잘하신다는 생각만으로도 반가웠다. 간호사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시고 나는 진료실에 들어가기 위해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내가 어릴 적 쌀집에서 본 저울이 보였다. 가로로 놓인 막대 눈금자가 있고 국자처럼 생긴 곳에 추를 올려 넣으면서 쌀의 무게를 재던 저울말이다. 간호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그 저울로 안내하고 내 체중을 쟀다. 그런 체중계를 쓰는 이유는 조금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300KG 가까이 육박하는 미국 산모도 있기 때문에 그런 저울로 재고 있다고 간호사가 말했주었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작은 방에 의료용 침대 하나와 한구석 모퉁이에 세면대와 탁자가 있었다. 벽은 시계도 없고 몇 개의 임신 관련된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7평 정도 되는 진료실이었는데 분위기는 완전 시골 과학실 같았다. 한국 산부인과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초음파 기계나 다리는 올려는 의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순간 이런 데서 어떻게 아이를 낳지?라고 생각 하는 순간 백발의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검은 고무펌프가 달린 수동 혈압계로 내 혈압을 쟀다. 마지막 생리일을 물어보시곤 플라스틱으로 만든 원형 휠의 무언가를 돌리시더니 아이가 나올 예정일이 언제쯤 될지 알려주셨다. 한국 산부인과를 생각하고 첫 진료를 갔던 우리 부부는 낯선 의료 풍경에 서로 할 말을 잃은 듯 조용했다.
초음파를 해 보자시던 의사 선생님은 진료실을 나가 어디선가 바퀴가 달린 이동식 초음파 기계를 가지고 오셨다. 철재 프래임에 안전하게 나름 고정을 시킨 초음파 기계를 보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모니터가 옛날 9비트 모니터 같은 크기였고 외관의 낡음 정도도 시골 읍내애 있는 전파상에서 주어온 듯한 아주 빈티지한 모습이었다. 전원을 켜고 예열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의사 선생님 말에 잠자코 기다렸지만 과연 저 기계로 8주가 된 우리 아이를 볼 수 있을지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께서 내 배에 젤을 바르고 손잡이가 있는 막대를 휘휘 저으며 젤리곰 같은 우리의 태아를 보여주셨다. 예상했던 대로 픽셀이고 해상도가 너무 낮아서 선명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보이긴 했다. 다음 진료일을 잡고 나오면서 남편과 나는 병원을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곳에서 아이를 출산했다던 한인들과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그 과학실 같은 개인 병원의 비밀이 조금 풀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개인병원이 모두 그런 수준으로 장비를 갖춰 놓고 정기 체크업을 한다고 했다. 임신 18주 투명대 검사, 기형아 검사 또는 출산 등 특별한 경우에만 수술과 검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큰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를 그때 서야 전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출산까지 초음파를 두 번 밖에 못 봤으며 3D 초음파는 꿈도 못 꿨다. 3D 초음파를 보려면 사비로 별도로 약 70만 원 정도를 내고 개인적으로 서비스해 주는 곳을 알아봐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개인병원 의사 선생님은 태아에게 초음파 소리가 안 좋다는 말기도 했고 미국은 의료보험시스템이 우리와 달라서 불필요(?)하게 초음파를 보는 것은 과잉 진료라서 의료보험에서 혜택을 주지 않고 개인 병원원에서 특별한 사건 사고가 없이는 초음파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청결하고 첨단기술의 산부인과가 부러웠지만 미국 법이 그렇다니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애틀랜타에서 아이를 낳은 지인은 그 주의 법은 쌍태아나 제왕절개를 하는 고위험 산모들만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나머지는 집에서 산파와 낳는 주법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모든 게 앞서 나갈 줄 알았던 미국에서 아이 낳기란 주마다 법도 다르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자연분만으로 순산만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커졌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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