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고 다니는 아이
거세게 비가 내릴수록 나는 비를 맞았다
마치 나 스스로에게 형벌을 주듯이
" 엄마한테 회사에 가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나요? "
" 아니요. 어렸지만 엄마가 회사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울지 않았어요. 묻지도 않았어요."
" 그럼 도연씨 마음은 어땠나요? "
" 심통을 부리거나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니까 저는 저에게 화풀이를 했던 같아요. "
" 어떤 식으로 본인에게 화풀이를 했죠?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
" 엄마가 누굴 시켜서 우산을 가져다주어도 우산 안 쓰고 비 맞고 집에 가는 거요."
" 왜 그랬을까요? "
"내가 기다린 것은 우산이 아니라 엄마였으니까...."
나는 다시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에게 말하는 대신 내게 형벌을 주었다.
투둑투둑 비가 내리는 날 학교 1층 실내화 갈아 신는 현관에는 우산을 가지고 학교로 아이를 마중 나온 엄마들과 그 엄마들 중에서 자기 엄마를 찾으려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80년대 국민학교 시절을 보낸 내게는 날씨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겨서 가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때 TV는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나면 화면 조정 방송 소리가 TV 중계의 끝을 알리던 시절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맞벌이를 하셨지만 비 오는 날 우산만큼은 꼭 챙겨 주셨다. 비가 오면 엄마는 일하다가 점심을 거르고 푸른색 비닐에 대나무로 만든 비닐우산을 사서 학교 수의 아저씨에게 맡겨 놓곤 했다. 그러면 수의 아저씨가 내가 하교할 때면 우리 반이 있는 근처로 가져다주셨다. 때로는 학교로 향하는 같은 학년 다른 아이 엄마에게 부탁을 하셔서 내게 우산이 전달되게 하셨다. 어떻게든 우산은 내게 전달이 됐지만 나는 우산을 들고 엄마와 아이들이 빗속으로 멀어져 가는 것을 한 참 보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면 비가 그칠까 싶어서 실내화 주머니는 머리에 받쳐 쓰고 있는 아이들이 몇몇 남았다.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모르는 애들한테 엄마가 보내온 우산을 주곤 했다. 나를 필요 없다면서 주고 얼른 뒤도 안 돌아보고 빗속을 걸었다. 집에 돌아오면 낮이어도 밖이 어두워서 집안도 어두웠다. 젖은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연탄보일러 옆에 세워서 말리고 뜨거운 물이 끓는 솥에서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퍼가지고 와서 대충 머리만 감았다. 비를 맞아서 추운 나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번쩍번쩍 번개 치는 것이 무서워서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전기가 갑자기 나가버린 날도 있었다. 그럴 때는 저번에 쓰고 남은 하얀 양초를 성냥으로 책상 밑에 켜고 무서움을 달랬다.
한 밤 중이 되면 엄마가 돌아오시면 위험하게 촛불을 켜고 있었다고 엄마의 쓴 잔소리가 나의 잠을 깨웠다. 그때서야 뭔가 기억이 난 듯 나는 일어나서 연탄보일러 옆에 세워둔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가지러 간다. 그렇게 잊어버린 날에는 한쪽만 열기가 닿아서 반대편은 아직 덜 말랐지만 앞면은 살짝 커피 물처럼 타기 직전의 흔적이 남는다. 실내화가 천과 고무로 만들어져 있어서 고무가 눌어붙은 냄새도 났다. 엄마도 피곤하신지 우산은 잘 쓰고 왔는지 낮에 사준 우산은 어디 있는지 물을 여유는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입이 댓 발 나와서 엄마를 등지고 잤다. 엄마는 지금도 맞벌이하면서도 비 오는 날에 나에게 어떻게든 우산을 챙겨 주었던 이야기를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종종 하신다. 사실 그날 난 우산을 쓰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지금도 말하지 않는다. 몇 반 인지도 모르는 아이한테 멀쩡한 우산을 주고 비를 쫄딱 맞고 다녔다는 것을.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난 그 시절 그때로 기억이 돌아가 있다. 나는 그때 왜 엄마가 맡겨둔 우산을 다른 친구에게 양보를 하고 빗속을 걸었을까? 그 어린 시절 나는 빗속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어쩌면 나에게는 비를 막아줄 우산보다 나는 맞아줄 엄마가 더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엄마가 준 우산 대신 비를 맞고 온 사실을 알아주기라도 바라듯 일부러 더 천천히 빗속을 걸어왔다.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괜히 심통 부리고 비를 맞고 집에 왔으면서도 한 번도 엄마한테 불평을 한 적은 없다. 엄마를 미워하는 대신 난 그 상황에 처해진 나를 미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 그래서 저는 비가 오면 그때 생각이 나요. 자주 비를 맞고 왔었거든요. 엄마는 퇴근하시고 오셔도 엄마가 맡겨 놓은 우산을 받았냐고 확인하거나 묻지 않으셨어요. "
" 그랬군요... "
" 저는 아이가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았으면 우산을 가지고 간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살지만 나와 같이 그런 감정을 아이가 느끼는 것이 싫어서 마중을 갑니다. 그런데 아들은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실내화 주머니를 머리에 쓰고 집으로 가버려요. "
우리 집은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후문에서 불과 1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비가 갑자기 와서 우산을 못 챙겨간 날이면 나는 우산을 들고 아들에게 달려간다. 아들은 멀리서 친구들과 신나게 실내화 주머니로 장난치면서 하교를 한다. 얼른 가서 우산을 씌워주면 금방 갈 건데 뭐 하러 왔냐는 아들의 푸념 섞인 말이 들린다. 그럴 때면 나는 또 한 번 상처받은 아이가 돼서 거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누굴 위해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온 것일까? 아들과 비슷한 나이의 상처받은 내 내면 아이가 거기에 서있다. 여전히 우산은 있지만 엄마는 없다. 나는 내 내면 아이를 토닥여서 집으로 같이 우산을 쓰고 온다.
비가 오는 날은 엄마가 더 그리운 날이었다.
우산보다 나는 엄마를 기다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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