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잠긴 문

문을 열고 자는 습관

by 이도연 꽃노을






자고 일어나면 밖에서 잠겨 있던 문 속에서 나는
새장 안에 갇힌 듯 답답하고 무서웠다.

"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습관이 지금도 남아있는 게 있을까요? "


" 네. 방문을 닫지 않습니다. 아이에게도 방문을 닫지 말라고 해요. "


" 아이 한 테요? "


" 네...."





할머니의 외출



할머니와 내가 살던 방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작은 방에 빛은 충분히 들지 않았고 4살이었던 나에게는 창문은 너무도 높은 위치에 달려있는 것만 같았다. 창호지가 발라있는 문을 열어 방을 나서려면 높은 문지방을 넘어야 했다. 문지방은 넘어서면 아궁이에 솥단지가 놓여있고 똑같은 높이로 연결된 시멘트 바닥에 할머니 플라스틱 슬리퍼가 놓여있다. 앞이 막히고 보라색 슬리퍼가 문 앞에 놓여 있는 날은 할머니가 어딘가 외출을 한 날이었다.


할머니 슬리퍼를 신고 부엌을 지나쳐 나무 프레임에 두꺼운 비닐과 프레스 된 솜 천으로 되어있는 물을 열면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무 문 프레임이 세월에 뒤틀려 문과 잘 맞지 않아서 보이는 틈에는 꽉 잠긴 자물통만 보였다. 어린 나는 그 잠긴 문을 열려고 애쓰다가 할머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한 참을 울어도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으면 울다 지쳐서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이불을 덮고 등을 벽에 기대로 앉았다. 작은 아이가 앉아서 바라보는 천장은 높아 보였고 집안의 집기들은 나를 공격해 올 것처럼 무서운 느낌을 받았다. 굳게 닫혀있던 할머니의 자개장롱에서도 뭐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한쪽에 쇠 쟁반에 올려진 쇠주전자와 컵도 왠지 내가 더 혼자 남겨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 떠오른 생각들이 무서워서 다시 한번 눈물 콧물을 다 빼고 울면서 할머니를 불러봐도 아무도 내게 와 주지 않았다. 남는 건 하도 울어서 벌겋게 부은 두 눈과 딸꾹질하듯 흐느끼는 내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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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참이 지나고 부엌에서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그리곤 나의 이름을 부르고 울어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보고 약간은 짜증스러운 듯 이렇게 말하셨다.


" 할머니가 매일 너만 쳐다보고 어떻게 있냐? 볼 일이 있으면 나가야지, 느그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너를 데리러 올랑가 나도 모르겠다. "


4살 아이였어도 그것이 공포에 떨고 있던 나를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렇게 몇 번은 더 할머니는 밖에서 문을 잠고 나를 안에 남겨둔 채 외출을 하셨다. 나는 어른이 돼서도 할머니가 그때 무슨 볼일을 보러 나가신 것인지 물어본 적이 없다.


그 당시 할머니 연세가 40대 밖에 안되셨으니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집에서 손녀만 보살피고 있는 것이 무료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문을 잠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은 원망스러울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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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잠글 수도 없는 문인데도 나는 방문을 열고 잔다. 닫힌 문을 보면 그때 어릴 때 그 좁은 집에 혼자 남아서 울어도 아무도 반응을 해주지 않았던 무서움의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그리고 초등 4학년인 아들이 잘 때는 쓰레기도 버리러 나가지 않는다. 깨어있을 때 어디에 가는지 알려주고 언제 올 것인지 말해주고 아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고 외출을 한다. 볼 일을 보러 가면서도 한참 동안 아이를 혼자 남겨 두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아들은 4살이 아니고 4학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게 그렇게 생긴 집에 갇힌 트라우마는 40대인 지금도 내 아들을 양육하는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뉴스에서 영유아를 혼자 집에 두고 나갔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화가 난다.





어렸을 때 경험은 생각보다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내 삶의 전반적인 것들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내 아이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난 두렵다.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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