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이해되지 않는 삶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수요일 아침 난 심리 센터로 간다. 이젠 제법 익숙해지고 편하고 심리 센터가 좋다. 아니 이 세상 누군가는 나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후련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처럼 울어보고 화도 내보고 나를 알아가면서 심리 상담 선생님과는 충분한 라포가 형성이 되어있다. 우리 엄마랑 비슷한 나이인 듯한 선생님께서는 마치 엄마가 위로해 주듯 나의 주름진 과거와 생각들을 다리미 질로 팍팍 펴주는 느낌이 났다. 심지어 우리 엄마랑 성함이 같으셨다. 성만 다른 선생님께 마치 그때는 어려서 하지 못했던 말을 하면 엄마에게 하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오늘은 선생님 보다 내가 먼저 센터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잠시 센터 유리문 반대편 벽에 기대어 있다가 나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난 평화주의자인데.. 때로는 쌈닭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모두 다 상대방이 부당하거나 제대로 일 처리를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떤 강도로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냉정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쌈닭같이 굴었다.
쌈닭은 아닙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직장에 취업한 나는 드디어 성공을 했다고 생각을 했다.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이 정도 내가 이루었으면 대단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뿌듯했다. 하지만 회사에 취업을 하고서도 나의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누구보다 돋보이고 싶었고 누구보다 일찍 승진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L기업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는데 내 마음에는 또다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같은 기수의 신입사원보다 고가를 잘 받고 빨리 승진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처럼 일을 했다.
회사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 힘이 들었다. 나와 같은 팀이 되는 상대의 행동이나 실적이 나한테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더 이상 나만 잘하면 되는 일이 아닌 게 되어 버리게 때문이다. 앞만 보고 가도 까마득한 조직 생활에서 난 하루도 나의 실수는 물론 다른 사람의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실수를 하면 자책을 넘어서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남의 실수는 조금 나의 실수보다 너그러운 듯해도 맘 속에서는 저게 왜 안돼? 왜 열심히 안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하는 불만 섞인 짜증이 올라왔다. 나의
꿈의 직장 L사에서 나는 내가 뼈를 묻을 곳이라고 생각했다. 막 신입사원이 된 나는 다른 데로 이직을 한다던지 퇴사는 꿈도 꾸지 못했을 때이다.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났고 나의 노력에 업혀 갈려고 하는 직원들을 혐오했다. 물론 겉으로 내색하거나 말은 할 수 없지만 난 그들이 이해가 안 갔다. ' 기왕 하는 김에 최선을 다하면 안 되나? '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내가 월급을 주는 오너처럼 월급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고가도 잘 받았고 그 덕분에 직급이 높은 상사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점점 내 주변에 사람은 없어져 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자초한 외로움에 매일이 지옥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들어온 대기업인데 하면서 혼자 외로운 사투를 버렸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악만 남아서 난 더 완벽함을 꿈꾸었고 그럴 때마다 나 자신도 내 성격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일단 시작한 이상 일을 폭주는 멈출 수 없었고 일에 중독된 사람처럼 일을 했다. 어쩌다 휴일에 집에서 쉴라고 하면 괜스레 불안했다. 나만 가만히 서있고 도태되는 느낌이었다. 이미 나의 열정은 강박으로 바뀌고 나를 갉아 먹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상담 선생님이 도착을 하셨다. 그날은 사회인이 돼서 나는 어땠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았다.
"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하면 화가 났다고요?"
" 네, 실수마다 성격은 틀리겠지만 꼭 어이없는 실수들을 할 때 한심해 보였어요. "
" 그럼 본인이 실수를 할 때는 어땠나요? "
" 전 제 실수도 잘 못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심하게 자책하고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일을 했죠.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러면 그럴수록 직원들은 저를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아요..."
상담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깨달았다.
'왜 그러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저런 사람들은!...' 하고 생각했던 것이 그들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가령 그것이 아이가 아파서라던지 다른 큰일이 그 사람 인생에 불어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컴퓨터나 로봇이 아니어서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에 가깝게 일을 해야 내가 처지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은연중에 또다시 내가 있고 싶은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로 버려지거나 내쳐지지 않을까 하는 무의식의 불안과 두려움이 항상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나는 완벽에 가까웠으나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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